[기자수첩] 슈뢰딩거의 고양이, 그리고 검찰 기자

입력 2020-09-01 06:00 수정 2020-09-01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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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용 사회경제부 기자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비판하기 위한 사고실험의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는 존재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간단히 부연하자면 한 상자 속에 고양이가 갇혀 있다. 상자 안에는 독가스가 가득 찬 병이 있고 그 위에 망치가 놓여 있다. 이 망치가 한 시간 안에 떨어져 병을 깨뜨릴 확률은 50%. 이 실험에서 상자를 열기 전까지 고양이는 삶과 죽음이 중첩된 상태로 남게 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보면 검찰 기자가 연상된다. 지금의 검찰 기자는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그런 존재가 됐다. 지난해 법무부는 수사공보준칙을 개정하면서 수사 담당자와 접촉을 막고 공보관을 통해서만 취재가 가능하게 했다.

당연히 검찰 기자들의 취재는 어려워졌다. 어떤 질문을 해도 "수사 중인 사안이라 답변할 수 없다", "공보관을 통해서 연락하라"는 답변이 이어진다.

게다가 법무부는 취재를 더욱 틀어막는 방안을 도입하려 했다. 검사와 기자의 만남에서 오간 대화를 기록하라는 것이다. 기자와 검사가 사무실이나 외부에서 만나면 소속과 이름, 날짜와 시간, 장소는 물론 대화 내용까지 적도록 했다. 기자가 질문한 내용과 검사가 답변한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적어 사후에 보고하는 방식이다. 검찰 안팎에서 반발하자 법무부는 이를 철회했다.

갈수록 검찰의 '깜깜이 수사'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특히 주요 사건을 포함한 대부분 사건에서 수사가 잘 되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상태다. 언론의 견제 장치가 힘을 잃고 있다. 청와대 하명수사 및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지난 1월 송철호 울산시장과 현 여권 인사 등 13명을 무더기로 기소했다. 그러면서 남은 수사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현재까지도 진척 상황을 알 길이 없다.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멈췄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검찰이 수사를 무리하게 끌고 가는 건지 감시할 방법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새 공보 규정이 검찰의 입맛에 맞는 '선택적 공보'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서울중앙지검은 '검언유착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한동훈 검사장의 물리적 방해 등으로 압수수색영장 집행에 문제가 생겼고, 담당 부장이 다쳐 병원 진료 중이라는 문자를 보냈다. 이후에는 정진웅 형사1부장의 입원 사진을 기자들에게 공개하기도 했다.

검언유착 의혹 사건은 간단한 사실관계조차 확인하기 힘든 사건이었다. 그러나 검찰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한 검사장의 소환 불응, 휴대전화 비밀번호 협조 거부 등 사실상 수사를 생중계했다. 한 검사장은 즉각 "공보준칙을 위반하는 발언을 했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착한 피의사실'과 '나쁜 피의사실'이 구별되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지금까지의 검찰발(發) 피의 사실 기사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인권을 볼모로 선택적 공보를 하며, 취재 창구를 좁혀 언론의 감시 기능을 통제하는 게 정상인지 되묻고 싶다. 법무부가 관행 개선 명분으로 내세웠던 '검찰 받아쓰기'는 오히려 늘었다. 기자에게 질문을 할 수 없게 만들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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