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준섭의 중국 경제인열전] 중국 근대의 현대적 상업가, 광동십삼행의 오병감(伍秉監)

입력 2020-04-1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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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도서관 조사관

청나라의 전성기였던 건륭제(乾隆帝) 시기, 영국 메카트니 경이 청나라 건륭제에게 무역을 제안했을 때 건륭제는 “우리에게 없는 물건이 없다!”며 한마디로 거부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중국이 이때 보여준 이 사건을 지극히 우매한 ‘우물 안 개구리’의 대표적 사례로 이제껏 배워왔다.

세계 중심(中心) 국가 중국과 그 몰락

하지만 이러한 ‘상식’과 ‘조롱’이 반드시 타당한 것은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들은 잘못된 정보에 속한다. 오히려 당시 청나라의 국력은 대단히 강력한 수준이었다. 건륭제 시기 청나라의 제조업 총생산량은 동 시기 모든 유럽 국가의 제조업 총생산량보다 5%가 많았고, 영국보다는 정확히 여덟 배나 많았다.

당시 청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총 GDP의 3분의 1을 점하고 있었다. 이는 오늘날 미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오히려 높은 수치이다. 즉, 당시 중국은 ‘세계의 중심(中心)’까지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강력한 ‘지배적 국가’였던 것이다. 이렇듯 중국(中國)은 오랜 역사 기간 줄곧 그야말로 세계의 ‘중심 국가’로 군림해왔다.

그러나 아편전쟁에 이르렀을 때 이미 중국의 국력은 쇠락의 길로 곤두박질쳐 허장성세, 그야말로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국난의 위기에서 크게 활약하여 세계적인 대부호로 부상했던 중국의 대상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오병감(伍秉監; 1769-1843)이라는 인물이었다.

광동십삼행의 전성시대

오병감의 선조는 일찍이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초기 복건성(福建省) 천주(泉州)에서 광동성(廣東省)의 광주(廣州)로 이주하여 무이산(武夷山)에서 차(茶) 사업을 하였다. 이들은 당시 외국인과의 비단과 도자기 교역을 허가받은 소수의 중국 상인 중 하나였다.

그의 부친은 1783년 광주에 이화행(怡和行)이라는 상점을 설립하고 상업에 나섰다. 그리고 오병감은 부친의 사업을 이어받아 사업을 크게 키웠다. 그는 청나라의 유일한 대외무역 창구였던 ‘광동십삼행(廣東十三行)’의 중심적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 광동십삼행이란 실제로는 하나의 체계이고, 이름 그대로 정확히 열세 곳의 상점이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많을 때는 수십 곳의 가게가 번성했고, 적을 때는 단 네 곳만 있은 적도 있었다.

광동십삼행은 이 무렵 청나라의 대외무역 특권을 모조리 독점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외국상인들이 차와 비단 등의 중국 물건을 구매하거나 혹은 서양 물건을 중국에 판매할 때는 반드시 이들 광동십삼행을 통해야 했다. 이렇게 하여 점차 광동십삼행은 그간 청나라의 양대 상인 조직이었던 안휘성(安徽省)의 소금상인 및 산서성(山西省)의 진상(晋商)을 앞질러 강력한 거대 상업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세계 최고의 갑부, 다국적 재벌로

오병감은 서양 각국의 중요 고객들과 모두 긴밀한 관계를 맺어 이들 서양 상인들을 기반으로 하는 무역으로써 커다란 부를 쌓았다. 1834년 이전에 오병감과 영국 상인 및 미국 상인들 간에 매년 이뤄진 무역액은 이미 백은 수백만 냥(兩:화폐 단위로서 냥이 원(元)으로 바뀐 것은 최근세사인 1933년이었다)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동인도회사의 은행가로서 동시에 최대 채권자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이 무렵 그의 명성은 서양에도 널리 알려져 ‘세계 제1의 대부호’로 칭해지기도 하였다.

오병감의 부는 국내에 부동산과 차 농장, 점포 등을 보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바다 건너 멀리 미국의 철도와 증권 교역에 투자하였고, 심지어 보험업무 등의 분야에도 관계하였다. 사실상 이미 세계적 범주의 다국적 재벌이었다.

▲오병감에게 고용된 영국인 화가 조지 치너리가 1830년에 그린 오병감의 유화 초상화.
▲오병감에게 고용된 영국인 화가 조지 치너리가 1830년에 그린 오병감의 유화 초상화.

미국 친구의 차용증서를 찢어버리다

이 무렵 미국 보스턴 출신의 한 미국 상인이 오병감과 동업을 하였다. 그는 일찍이 오병감에게 은 7만2000냥의 빚을 졌었다. 하지만 사업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빚을 갚을 능력이 없어졌고 나중에는 미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되었다.

오병감이 이 사실을 알고는 사람을 시켜 차용증서를 가져오라고 하더니 미국 상인에게 “당신은 나의 첫 외국 친구요. 당신은 가장 성실한 사람이고, 단지 운이 나빴을 뿐이오”라고 말하면서 그 증서를 찢어 버렸다. 그러고는 “우리들 사이에 이미 차용증서는 없으니 언제든지 미국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흔쾌하게 선언하였다. 이러한 오병감의 통 큰 행동은 해외까지 그의 명성을 크게 드날리게 만들었다.

사실 그의 재산은 엄청난 규모였다. 1834년에 자신들이 추계한 통계를 보면, 그의 재산은 은 무려 2600만 냥으로서 당시 세계 최고의 갑부였다. 광주 시내를 관통하는 주강(珠江) 강변에 지어진 그의 호화저택은 마치 소설 ‘홍루몽’에 나오는 주인공의 호화롭던 대저택 ‘대관원(大觀圓)’과 능히 비길 만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러나 오병감 개인이 향유했던 이 부귀영화도 국가가 봉착한 대위기와 결코 분리될 수는 없었다. 1840년 아편전쟁이 발발했고, 청나라는 세계의 새로운 패권국가로 부상한 영국의 포함을 앞세운 공격 앞에 속수무책, 백전백패로 궤멸 상태였다. 아니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청나라 군대는 전쟁을 수행할 능력은 물론 애당초 싸울 의지조차 전혀 없었다.

이러한 국난의 위기에서 할 수 없이 상인들인 광동십삼행이 무력한 국가 대신 팔을 걷어붙이고 중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청나라가 영국군에게 600만 냥의 거금을 배상하기로 했는데, 광동십삼행이 3분의 1을 지불하기로 했다. 이 중 오병감이 가장 많은 110만 냥을 갹출하였다. 2년 뒤 아편전쟁에서 중국이 참패하고 배상금 300만 냥 중 오병감 혼자서 100만 냥을 기증하였다. 실의에 빠진 이 해에 오병감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한때 천하를 주름잡고 군림했던 광동십삼행도 급속하게 몰락하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십삼행들이 청나라 정부의 착취로 인하여 도산하였고, 특히 외세의 강압에 밀려 중국의 여러 항구가 개항함에 따라 그간 광동십삼행이 누려왔던 무역독점이라는 커다란 권한도 사라졌다. 더구나 제2차 아편전쟁 뒤 큰 화재가 발생하여 한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광동십삼행 거리는 한순간에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렸고, 그 뒤로는 두 번 다시 재기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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