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7대 어젠다] 재산 중 75% 부동산 ‘몰빵’…설익은 대출규제, 서민만 잡는다

입력 2018-10-0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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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전셋값 상승·규제완화 3박자 갖춰지자 빚으로 집 구매… 가계부담 9조 쑥

“전셋값 7000만 원 올려 달래요. 그래서 가진 거 탈탈 털어 집 샀어요. 절반 이상이 대출이에요. 은행 빚 값기도 벅찬데, 집값까지 떨어지면 정말 답이 없어요. 이 집이 우리 가족 유일한 재산이에요.”(서울 거주자 김모(37) 씨)

지난달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본 한 시민의 반응이다. ‘집에 저금한다’는 생각으로 올 초 무리해서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샀는데, 이번 대책에 혹시라도 집값이 떨어질까 봐 걱정이 태산이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김 씨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는 게 문제다. 저금리ㆍ전셋값 상승ㆍ규제 완화 3박자가 갖춰지자 사람들은 집을 사기 위해 은행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그 결과 가계부채가 1500조 원.전 세계에서 빚 느는 속도가 가장 빠르다. 정부가 부랴부랴 각종 규제를 내놓으며 진화에 나섰지만, 넘쳐나는 유동성을 타고 흐르는 투기 수요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미친 집값’은 내성을 키워갔다.

9·13 부동산 대책이 ‘독해졌다’란 평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수요는 물론 돈줄까지 꽉 막았다.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집으로 돈 버는 시대를 끝내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너무 급했던 탓일까? 벌써부터 잡음이 새어 나오고 있다. 부자는 물론 서민들마저 볼멘소리다.

◇韓 부동산 쏠림, 美의 ‘2배’= 한국의 부동산 몰빵은 숫자로 증명된다. 한국은행의 ‘2017년 국민대차대조표’에 따르면 국민 순자산(자산-부채)은 1경3817조5000억 원에 달한다. 가구당 재산으로 따져보면 3억8867만 원이다. 이 가운데 75.4%(2억9380만 원)가 토지ㆍ건물 등 부동산에 쏠려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줄고 있지만, 여전히 프랑스(68.5%), 독일(67.4%), 일본(43.3%), 미국(34.8%) 등 주요 선진국보다 높다. 소위 부자로 불리는 금융자산 5억 원 이상 가진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쪽으로 치우친 자산 배분은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 내 돈이 아닌 은행 빚을 지고 사는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실이 지난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가계부채 1439조 원 가운데 65%인 938조 원이 주택담보대출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가 오르면 그야말로 도미노 파산이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어 기댈 곳도 없다. 한은은 시장 금리가 1%포인트(P) 오르면 가계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이자가 연간 약 9조 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한다. 특히 취약 계층에겐 독이다. 올해 초 시장 금리가 상승하자 저소득층이 자주 찾는 2금융권(저축은행ㆍ상호금융)의 1분기 가계대출 연체율이 각각 4.9%, 1.4%로 작년 말보다 0.4%P, 0.3%P 상승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집은 주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노후 대책을 넘어 부의 이전(증여ㆍ상속) 수단이다. 그런데 2025년 전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2030년이면 1700만 명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75세에 접어들면서 문제는 더욱 본격화할 수 있다. 인구구조 변화로 매물이 늘어나면 집 가치가 떨어져 ‘노후 난민’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한은은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향후 금리가 상승하면 소득 및 자산 대비 부채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가구를 중심으로 고위험가구 편입이 늘어날 것”이라며 “특히 소득 2~3분위 부채 가구 중에서 고위험가구가 가장 크게 증가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 독해진’ 대출 규제, 현장에선 혼선=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2주택자의 청약조정대상 구역이나 투기과열지구 같은 규제지역에서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1주택자도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예외를 인정받거나 이사를 위해 추가 대출을 받으려면 2주택자는 한 채를 당장 처분해야 하고, 1주택자도 2년 안에 팔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생활안정자금 규제 부분이다. 집을 담보로 빌리는 생활안정자금의 한도를 1억 원으로 묶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한도 2억 원의 절반밖에 안 된다. 의료, 교육 등 예외 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결혼과 같이 큰돈이 드는 일이 생기면 목돈을 구할 길이 없다. 은행에서도 사용처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로 관련 대출을 중단했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교수는 “주택담보대출은 물론 전세대출 역시 대부분은 생계형 대출”이라며 “규제가 강화되면 서민 경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여기에 이달부터는 금융당국이 정한 고위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도 적용된다. ‘규제 끝판왕’으로 불리는 DSR는 은행ㆍ카드사 등 금융회사에서 빌린 모든 빚을 합쳐 버는 돈으로 갚을 능력이 되는지 따져보는 제도다. 예를 들어 연 소득 5000만 원인 사람이 1년 동안 대출 원금과 이자로 갚아야 할 돈이 5000만 원이라면 DSR는 100%다.

당국은 이를 70∼80%로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부동산시장 상황에 따라 기준을 더 낮출 수도 있다. 선진국처럼 40%까지 낮출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전문가들은 DSR가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줄일 수는 있겠지만, 유동성이 풍부한 고소득층의 투기 수요까지 잡는 데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기회만 빼앗게 될 거란 지적이다.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은 상태”라며 “지금 규제는 서민들에게 타격이 가지만 중산층 이상 돈 있는 사람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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