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키워드] 뇌수술과 분변학(糞便學)--걸리버식 한국 정치 개선 방안

입력 2016-12-1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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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영국 어딘가에 살고 있던 걸리버의 후손이 조상의 업적을 기릴 겸 세계 여행을 떠나 그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1700년대 초반 여행을 떠났던 선조가 동양이라고는 일본밖에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던 듯 한국을 첫 여행지로 삼았다는데, 운이 좋아 그 여행기 초록(抄錄)이라는 걸 볼 수 있었다. (그의 선조 걸리버가 갔던 곳은 작은 사람들의 나라인 릴리퍼트, 큰 사람들의 나라인 브롭딩낵,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 라퓨타와 그 인근, 말[馬]들의 나라 휴이넘 등 4곳으로 일본은 라퓨타 여행을 마치고 들른 곳이었다. 걸리버 여행기는 4부로 짜여 있다.)

초록에는 새로운 문물과 경치 이야기는 없고 한국 정치를 많이 다룬 게 눈에 띄었다.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많이 담은 선조의 여행기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내가 가진 ‘걸리버 여행기(신현철 역, 문학수첩)’와 비교해보니 특히 3부 5, 6장과 매우 비슷했다. 아래는 내가 본 초록의 일부다.

한국 정당들의 싸움은 다른 곳에서 좀체 보기 어려울 정도로 격렬했다. 정당 안의 파벌 싸움도 이에 못지않았다. 탄핵된 대통령이 속한 정당에서는 대통령파와 비대통령파가 언제 한솥밥을 먹었냐는 듯 서로 물어뜯고 있었다. 한국인들은 ‘이전투구(泥田鬪狗)’, 즉 ‘진흙 밭의 개싸움’ 같다고 했는데 곧바로 핏불(Pitbull)이 연상됐다. 핏불은 구덩이(Pit) 속의 황소(Bull)가 아니라 테리어와 불독을 교배해 만든 개의 종자로 흙구덩이에 밀어 넣으면 죽기 살기로 싸우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게 아닐까 싶어서다.

이곳 정치인들의 싸움을 더는 보지 않으려면 할아버지가 세 번째 여행에서 만났던 의사의 처방이 가장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처방이다. “각 정당에서 백 명의 지도자들을 뽑는다. 그리고 머리 크기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짝을 짓게 한다. 그런 다음 외과 의사들에게 이들의 뇌가 거의 절반으로 나누어지도록 머리를 자르게 한다. 다음엔 잘라낸 머리를 반대편 정당 사람의 절반 남은 머리에 붙인다.” 의사는 “이렇게 하면 두 개의 뇌가 하나의 두개골 속에서 논쟁을 벌이고, 곧 서로 이해하게 돼 국민들이 오매불망 바라는 조화로운 사고와 중용이 생겨나게 된다”고 덧붙였다. 고도의 정확성이 필요하지만 요즘 한국 의사들 솜씨라면 시도해볼 만하다. 만에 하나 잘못돼 정치인들이 다수 죽더라도 늘 ‘대의(大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던 사람들이니 의사들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을 것이다.

두개골 절개는 너무 극단적이므로 문제의 정치인들이 의견을 발표하거나 변호하도록 한 후에 투표할 때는 자기 의견에 반대표를 던지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국회를 진정으로 국민들에게 이로운 기관이 되도록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매우 좋은 것 같았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초판. 그는 주인공을 저자로 소개하고 자기는 익명으로 남았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초판. 그는 주인공을 저자로 소개하고 자기는 익명으로 남았다.

일반적인 한국인들에 따르면 정치인들이 이렇게 늘 싸우는 것은 기억력이 짧고 무엇이든 쉽게 잊어버리는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내가 머물고 있을 때도 큰 실정을 저지른 대통령에 대한 처리를 놓고 자신이 금방 한 말을 뒤집는 정치인이 있었다. 탄핵해야 한다고 했다가 그냥 끌어내려야 한다는 등 이익에 따라 말을 바꾸는 건데, 이런 병에도 할아버지가 만났던 그 의사의 처방이 잘 들을 것 같았다. “말을 바꾸는 정치인을 만날 때는 알아듣기 쉽도록 말은 반드시 짧고 간단하게 하며 물러날 때는 그의 코를 비틀거나 배를 힘껏 걷어차고 양쪽 귀를 잡아당겨 기분을 나쁘게 한 후, 그것도 모자라면 핀으로 다리나 팔을 찔러서 들은 이야기를 잊지 않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한두 번으로는 고쳐지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최대 열 번 정도 이 처방을 계속하면 못된 버릇을 완전히 고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세 번째 여행에서 과학자들도 많이 만났다. 다 익은 오이에서 태양광을 거꾸로 추출해 내는 연구를 하는 사람, 얼음에 열을 가하여 화약으로 만드는 일에 몰두한 사람, 거미처럼 지붕부터 시작해 차차 아래로 내려와 기초를 만드는 아주 새로운 건축법을 고안하려는 사람 등등이다.

한국에 가보니 이 중에서 같이 왔더라면 싶은 과학자가 있었다. 사람의 대변을 다시 원래의 음식으로 되돌리는 연구에 처음 착안한 사람이다. 그는 원래 ‘분변학(糞便學 Scatology)’을 했던 사람이다. 분변학은 대변의 색깔과 모양, 냄새로 질병의 유무를 가리는 학문이다. 이 사람이 생각난 건 한국 정치인들의 말이 대변 못지않게 더러워 그들의 말을 어떻게든 다시 아름답게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분변학적 기법으로 정치인들의 말을 분석해 어떤 병이 들었는가도 알아보고 싶었다.

입에 들어가기 전 음식이 보기 좋은 것처럼 그들 머릿속에 들어가기 전 한국말 또한 정말 아름다운데, 정치인들 입에서 나오면 더럽기 짝이 없다. 특히 한 여성 정치인이 더럽고 험한 말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낼 때는 정말이지 ‘저렇게 해야만 큰 정치인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라는 의문이 절로 들었다.

참고로, 할아버지의 여행기를 책으로 만들었던 조나던 스위프트(1667~1745)는 당시 영국 정치를 혐오하는 글을 쓰면서도 분변학에 관심이 높아 할아버지의 여행기 원고에 나오는 분변에 관한 이야기는 빼놓지 않고 책에 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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