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9월 20일 이인영-구한말 13도 항일의병군을 하나로 만든 조선 선비

입력 2016-09-2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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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명 편집부 차장

“동포들이여! 우리는 함께 뭉쳐 우리의 조국을 위해 헌신하여 우리의 독립을 되찾아야 한다. 우리는 일본의 잘못과 광란을 전 세계에 호소해야 한다. 간교하고 잔인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인류의 적이요 진보의 적이다.”

항일의병 관동창의대장 이인영(李麟榮, 1868.9.23∼1909.9.20)은 “국권을 되찾자”고 외치며 의병을 모집하고, 각국 영사관에 항일의병 투쟁의 합법성을 호소했다.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난 그는 학식 높은 유생으로, 향교에서 숙식하며 관리하는 대성전 재임(齋任)을 지냈다. 1895년 을미사변이 발발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제천전투에도 참전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경상북도 문경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을사늑약을 계기로 다시 의병을 일으키려 했으나,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뒤 고종이 강제 퇴위되고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 활동을 재개해 관동창의대장을 맡았다. 이어 전국 의병대장들의 만장일치로 13도 연합의병인 창의군 총대장으로 추대됐다.

13도 창의군은 경기도 양주에서 서울 진공을 개시해 1908년 1월 말 동대문 밖 30리 지점까지 진출했으나 역부족으로 패퇴해 서울 탈환에 실패했다. 진용을 재정비할 무렵 이인영은 부친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허위(許蔿, 1854.4.1~1908.9.27) 군사장에게 군무를 위탁하고 총대장직을 사임한 그는 “아버지 3년상을 마친 뒤 권토중래(捲土重來)의 세력으로 일본인을 소탕하겠다”고 말했다.

그 뒤 노모와 두 아들을 데리고 충청북도 황간군 금계동에서 숨어 지내다 일본 헌병에게 잡혀 경성감옥(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해 국권 회복은 물론 3년 종상(終喪)의 꿈마저 무산됐다. 항일의병의 구국혼을 기리는 13도 창의군 기념비가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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