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공감과 거리 먼 광복절 경축사

입력 2016-08-1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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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 기념식에서 알맹이 없는 낭독문으로 감흥 없는 박수를 받았다. 경축사는 애국심과 분발, 배려를 호소하며 자기비하와 정쟁 중지를 촉구하는 내용이었지만 새로운 대안 제시나 감동적인 메시지는 역시 없었다. 박수는 많았던 것 같은데 대체로 ‘영혼 없는 박수’로 보였다.

2013년 취임 후 네 번인 박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특이한 점은 전임 대통령들과 달리 과거사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라고 규정하면서도 그 성취 과정에 대한 고찰과 반성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과거사의 문제점으로 친일과 독재를 지적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친일은 거론하지 않았지만 독재에 대해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 두 가지를 다 언급하지 않고 있다. 산업화와 ‘한강의 기적’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민주화’라는 단어는 거의 들을 수 없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8월 15일의 의미를 두 가지로 나누었다. “오늘은 광복 71주년이자 건국 68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이라는 첫머리의 언급은 작년 경축사에 숫자만 하나씩 더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2013년에 ‘정부 수립 65주년’, 2014년엔 ‘정부 수립 66주년’이라고 했다가 지난해부터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바꾸어 말하고 있다. 올해에는 ‘건국’이라는 단어를 세 차례 언급했다. 8·15는 광복절이면서 건국일이라고 계속 말하고 있는 것이다.

건국의 기점을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가 아니라 1948년 정부 수립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표면화한 것은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이었다. 정부 수립 60주년 광복절 행사를 앞두고 건국절 제정론이 제기된 것이다. 그 뒤 이 문제는 뉴라이트 등 보수층이 꾸준히 제기했고 건국절 제정 법안까지 국회에 제출했다가 철회한 상황인데, 박 대통령은 건국절 제정론에 다시 힘을 실어주었다.

야당과 진보 역사학계가 정면으로 반대하는 문제다.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일이 되면 일제 치하 임시정부의 의미는 퇴색하게 되며 이는 대한민국 헌법정신과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전문에는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돼 있다. 1948년 7월에 제정된 제헌 헌법도 기미(1919년)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다면서 이제 국가를 ‘재건’한다고 명기한 바 있다.

건국절 주장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48년 정부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싶은 세력의 평가”라며 “건국은 광복에 따라오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광복절의 의미를 스스로 깎아내리면서 건국절로 바꾸겠다고 하면 상하이 임시정부나 일제에 저항해 싸운 시기는 무엇이 되겠느냐”며 건국절 개명 움직임을 비판한 여당 의원(원희룡)도 있다.

12일 김영관 전 광복군동지회 회장은 대통령의 면전에서 건국절 제정 주장을 강하게 비판하고, “헌법에 위배되고 실증적 사실과도 부합되지 않는 역사왜곡이며 역사의 단절을 초래할 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박 대통령은 미리 작성된 경축사를 사흘 뒤 예정대로 읽었다.

건국절 제정 논의는 우리 헌법과 역사 해석을 스스로 부정하는 소모적인 주장이다. 친일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보수층이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 생각과 시도는 교과서 국정화, 대책 없는 불통의 애국심으로 이어진다.

박 대통령은 이번 경축사에서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감옥에서 유언을 했다고 사실과 다른 말을 했다. 청와대는 연설 직후 실수였다며 뤼순 감옥이라고 정정했지만, 이런 역사적 사실도 틀리는 경축사로 어떻게 공감과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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