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폭염에 ‘전기료 폭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과 관련해 “현재 상황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ㆍ국민의당의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압박에 사실상 난색을 표하면서 전기료 누진제 개편안을 둘러싼 여야 간 공방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은 9일 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지금도 가정용 전기요금은 원가를 다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전력 대란 위기가 현존하는 상황에서 여름철 전력수요를 낮추려면 누진제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요금을 적게 내게 하고 있고 여름철에는 전력 피크 때문에 누진제를 만들었는데, 누진제를 완화할 테니 전기를 많이 쓰라는 구조로 갈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채 실장은 또 “작년 8월 기준으로 6단계 가구의 비중은 4%에 불과하며 4단계 이하에 대해서는 원가 이하로 공급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국민 대다수에게 징벌적으로 전기요금을 물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6단계 가구는 월평균 19만 원 정도 요금을 내게 된다. 대부분 가구는 대체로 4단계에 해당하며 월평균 340∼350㎾를 쓴다. 이 가구들의 요금은 월 5만 원 정도다.
우리나라 주택용 전기요금은 2007년부터 현재까지 6단계의 누진요금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요금제 구간(주택용 저압 전력 기준)은 1단계(사용량 100㎾ 이하), 2단계(101~200㎾), 3단계(201~300㎾), 4단계(301~400㎾), 5단계(401~500㎾), 6단계(501㎾ 이상)로 구분된다. 최저구간과 최고구간의 누진율은 11.7배다. 구간이 높아질수록 가격 또한 몇 배씩 뛰어오르는 구조다.
채 실장은 누진제 개편 타당성과 관련해서는 “누진제를 완화하면 전기를 많이 쓰는 사람은 요금을 경감받게 되고 전기를 적게 쓰는 사람에게서 요금을 많이 걷게 돼 부자감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전력소비가 적은 소비자에 대해선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측면에서 누진제를 개편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택용 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60% 수준으로 국제적으로도 과도한 수준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누진제 때문에 전기요금 폭탄을 맞을까 두려워 에어컨조차 못 켜는 가정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에어컨을 합리적으로 사용할 때도 요금 폭탄이 생긴다는 말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라며 “에어컨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벽걸이형 에어컨을 하루 8시간 사용하거나 거실 스탠드형 에어컨을 하루 4시간 사용하면 월 요금이 10만 원을 넘지 않는다”며 “다만 에어컨을 두 대씩 사용하거나 스탠드형 에어컨을 하루 8시간 이상 가동하면 요금이 20만 원가량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채 실장은 주택용 대신 산업용 전기요금에 과도한 지원을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적극 반박했다. 그는 “주택용은 배전망 등 때문에 원가유발요인이 커 전체 원가의 92~95% 수준밖에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주택용에 비해 산업용의 원가가 더 적게 드는데 요금을 더 물릴 수는 없지 않느냐”며 반박했다.
이어 “지난 10년 동안 산업용은 76%를 올린 반면 주택용은 11% 정도 요금을 인상하는 데 그쳤다”며 “주택용에 요금을 징벌적으로 부과하고 산업용 요금은 과도하게 할인해 준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누진제 구간의 단계적 통합 등 대안과 관련해서 채 실장은 “1, 2단계를 통합해서 1단계 요금을 매기고 3, 4단계를 통합해서 3단계 요금을 부과하는 안으로 가자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적자요인을 더 발생시키는 것”이라며 “이로 인해 한국전력에 적자를 계속 강요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