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브렉시트와 우리의 정치

입력 2016-07-1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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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와대 정책실장

개인이든 국가든 의사결정능력이 곧 생존력과 경쟁력을 결정한다.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손해를 보거나 망하는 것이고,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면 그만큼 더 발전하고 성장한다.

이런 점에서 영국의 브렉시트를 보자. 이 나라의 의사결정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합리적 판단이 아닌 분노와 괴담 그리고 선동이 결정을 주도했다. 그래 놓고는 말도 안 되는 재투표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의사결정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인가? 영국 민주주의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그동안 그 민주주의가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나름 합리적이고 시의적절한 결정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게 그렇지 않게 된 것이다. 오랜 세월 우리에게 수많은 감동과 영감을 줬던, 바로 그 영국의 민주주의가 말이다.

먼저 영국 의회를 보자. 명실공히 최고 의사결정기구이다. 한때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 외에는 다 할 수 있다’고 했다. 당연히 영국 국민의 분노를 조절하는 결정들을 해왔어야 했다. 유럽연합(EU)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시의적절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국민에게 결정권을 던져 버렸다.

그래서 국민은 어떻게 했나? 과다한 이민자와 EU에 대한 불만과 분노, 그리고 온갖 괴담과 선동이 난무하는 가운데 자해에 가까운 결정을 하고 말았다. 대의민주주의에 이어 직접민주주의도 그 민낯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먼저 의회에 대해 물어보자. 다시 과거와 같은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까? 답은 부정적이다. 이미 의회라는 정치기구 내지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회는 기본적으로 대화와 타협의 장이다. 그 구성 또한 선거로 이뤄진다. 기본적으로 농경시대에 만들어진 제도이자 기구이다. 결정이 빠를 수도, 전문적일 수도 없다. 여기에 비해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문제도 대량으로 발생하고 그 구조도 복잡하다. 또 이 중 상당수는 해결에 전문적인 지식을 요한다. 의회의 소화능력을 넘고 있다는 말이다.

브렉시트 문제만 해도 이를 국민투표에 부친 캐머런 총리를 비판하는데, 이는 문제의 한쪽 끝만 보는 것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훨씬 더 깊은 곳, 즉 문제대응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의회 자체의 기능적 한계와 모순에 있다.

그러면 국민투표와 같은 직접민주주의는 희망이 있을까? 의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는 이 또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의회의 무능이 만들어 놓은 분노가 시민사회를 떠돌게 되고, 의회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신념과 이해관계가 이 분노를 파고 들고 선동을 하기 때문이다. 시민 개개인이 이 모든 것을 넘어설 만큼 이지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을까?

민주주의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하든 지켜내야 하기에 걱정을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국가의 결정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길이 없는 게 아니다. 자치와 분권을 바탕으로 시민들 스스로 담론 수준을 높여가며 참여하는 숙의민주주의 등 길은 분명히 있다. 길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기득권에 집착한 채 기존의 모순된 제도를 더 나쁜 방향으로 끌고 가는 자들의 힘이 강한 게 문제이다.

어느 나라 이야기냐?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다. 소선거구제를 비롯한 갖가지 모순된 제도와 문화로 의회는 천박할 대로 천박해졌다. 의사결정능력은 바닥, 국민의 불만은 높아만 간다. 그리고 그 속으로 갖가지 정치적 선동이 파고든다. 심지어 경박한 SNS와 모바일 문화가 ‘소통’과 ‘참여’라는 이름으로 정치를 교란시키기도 한다. 천박성과 경박성의 조합, 그래서 국정은 더욱 엉망이 된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죽이고, 참여의 이름으로 참여를 죽이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면서 국가의 의사결정능력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브렉시트보다 백배, 천배 더 무서운 결정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아니, 이미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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