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배 칼럼] 원효대사가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더라면

입력 2016-06-0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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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고승인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젊은 시절, 당나라로 함께 유학을 떠났다. 길을 가던 도중, 원효는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유심(唯心)의 도리를 깨닫고 되돌아왔던 반면, 의상은 원래의 계획대로 유학을 떠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두 사람 모두 신라의 고승이 되었기에, 각자의 선택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라 고승들의 깊은 혜안을 현대에 살면서 경제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겠지만, 역사적 사실의 내용은 뒤로하고 이 두 고승의 선택을 ‘경제학’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원효와 의상의 개인적 선택은 당나라로 유학을 가느냐 안 가느냐의 문제였을 것이다. 경제학은 개인의 선택을 ‘선택에 따른 이익과 비용을 비교한 후 결정’하는 것으로 본다. 쉽게 말하면, 유학을 가는 것이 안 가는 것보다 좋다고 결정하면 유학을 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유학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원효와 의상은 둘 다 신라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사형제지간(師兄弟之間)으로 당나라로 함께 출발했으므로, 두 사람의 유학비용은 서로 비슷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당나라 유학의 이익 측면에서 볼 때, 두 사람 간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그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 경제학적 접근이 될 것이다. 유학의 이익을 평가함에 있어 원효와 의상 간의 차이가 발생한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원효는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반면, 의상은 그렇지 않았다. 유학의 주된 이익이 불교의 이치를 깨닫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면, 원효가 유학을 가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의상의 경우에는 여전히 유학의 이익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두 개인이 선택한 결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각자 합리적인 선택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좀 더 생각해 볼 점은, 유학의 이익은 개인이 유학을 가서 공부해 보기 전에는 정확히 그 결과를 모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개인이 주관적으로 유학의 이득을 기대한 후, 유학을 갈지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므로, 실제 유학의 이득 대신에 유학의 기대 이득이 개인의 선택을 결정하는 것이다. 가령, 깨달음을 얻은 원효가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더욱 깊은 이치를 터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아마 그는 고인 물에서 유심(唯心)의 도리를 깨닫고도 의상과 함께 유학을 갔을 것이다.

▲일본 교토의 고잔지(高山寺)에 있던 원효대사(왼쪽)와 의상대사 초상화. 지금은 교토 국립박물관에 대여돼 있다. 원효와 의상은 일본에 화엄종의 불법을 전해준 고승들이다.
▲일본 교토의 고잔지(高山寺)에 있던 원효대사(왼쪽)와 의상대사 초상화. 지금은 교토 국립박물관에 대여돼 있다. 원효와 의상은 일본에 화엄종의 불법을 전해준 고승들이다.

필자가 신라의 두 고승의 발자취를 부족하게나마 논의하는 이유는 비슷한 의사결정의 문제를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디 비단 해외 유학의 문제만이겠는가. 미래의 꿈을 키우면서 진로와 진학을 고민하고 있는 모든 학생도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선택에 따른 객관적 이익과 비용보다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받아들이는 주관적 이익과 비용이 그들의 진로 및 진학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와 관련된 해외의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경영대학의 로버트 젠센(Robert Jensen) 교수는 도미니카공화국의 남자 중학생 표본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연구를 진행하였다. 〈Jensen, Robert(2010). “The (Perceived) Returns to Education and the Demand for Schooling”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25(2), p.515~548.〉

먼저 남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통해 학생들이 주관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중·고등학교 교육의 이익을 측정했는데, 학생들의 주관적 기대이익은 도미니카공화국에서의 실제 현실에 비해 훨씬 작았다.

젠센 교수는 이런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의 이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제학 실험을 하였고, 교육의 이득에 대한 정보 제공의 효과를 실험군과 대조군의 평균 교육연수 차이로 측정하였다. 그 결과, 실험군에 속한 남학생들이 평균적으로 0.20~0.35년의 추가 교육을 받았다. 이 연구 사례는 학생들에게 객관적인 현실 정보 제공이 중요 정책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나라 초·중·고등학생의 경우, 진로와 진학에 대한 본인의 견해와 사회적 현실 사이에서 괴리가 클 개연성이 있다. 앞서 말한 도미니카공화국의 경우와는 반대로, 교육으로 발생하는 이익에 대한 주관적 기대가 지나치게 큰 학생과 학부모도 존재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진로 진학상담에 대한 관심이 많이 커지고 있는데, 개인의 주관적 견해와 사회의 객관적 현실의 차이를 줄이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진로와 진학에 관한 개인의 선택에서 중요한 점은 사람들의 선호와 능력이 다르다는 점이다. 원효와 의상이 다르듯이,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동일한 연령, 같은 학교,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개인의 이질성은 크다. 경제학에서 직업 선택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보고 있는 것은 직업별 개인의 기대 소득이다. 각 개인은 동일하지 않으며 비교 우위도 서로 다르므로 직업의 평균 소득 순위와 개인의 기대 소득 순위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A’라는 직업이 고소득 평균 직업이라고 하더라도 특정 개인이 본인의 적성과 능력을 무시하고 선택한 경우 고소득자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개인의 비교 우위에 따른 진로 진학은 합리적인 선택을 위한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학에서 개인의 이질성 못지않게 중요하게 회자되는 내용은 개인의 선택에 있어서 사회의 통념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로 진학으로 고민하는 청소년이나 대학생들은 또래 집단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다. 원효와 의상은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것이 아마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기 때문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높은 학업 성취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백인처럼 행동하는 것(Acting White)으로 보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백인보다 학업에 덜 열심히 한다고 분석하는 이론이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진로 진학이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특정 직업을 선택했을 경우, 미래에 실현될 개인의 소득이 현재 동일 직업의 평균 소득과 일치하리라는 법이 없다. 이와 같이 불확실성이 있을 때 선택에 따른 위험을 기피하고자 하는 것이 개인의 자연스러운 대응이고, 상대적으로 위험이 낮은 진로를 선호하는 것이 개인으로서는 최적의 행동이다. 어느 정도 위험 회피를 원하는지는 개인 간의 이질성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원효대사가 해골에 고인 물에서 득도(得道)하여 인생의 방향을 정했듯 우리나라의 젊은 학생들도 진로 진학의 선택에서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바란다. 학생 본인들의 탐색, 부모와의 지속적인 대화, 교사와의 멘토링을 통해 인생의 방향을 정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일조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훌륭한 정부의 교육정책이자 경제정책으로 평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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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 서울대 경제학부 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박사. 런던대 교수,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역임. 9월 미 콜롬비아대 교수 부임 예정. Fellow of the Econometric Society, 한국경제학회 청람상, 한경 다산 젊은 경제학자상 등 수상. 연구분야: 계량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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