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새해 벽두의 불안, 그리고 혁신

입력 2015-01-0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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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새해 아침, 문득 20년도 더 된 일이 생각났다. 정확하게 말해 1992년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내던 중, 초기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을 알게 되었다. ‘모자이크’와 같은 범용 브라우저가 채 출시되기 전의 일이다.

일면 신기했고 일면 두려웠다. 분명 크게 쓰이게 될 텐데, 그렇게 되면 대학은 어떻게 변하고 교수는 어떻게 될까? 사업가라면 돈 되는 일이 뭘까 궁리했을 터인데, 하는 일이 교수라 기껏 생각하는 것이 그 정도였다. 어찌 보면 한심하고, 어찌 보면 당연하고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엉뚱한 일 벌이다 가산 탕진한 일은 없었으니까.

어쨌든 귀국 후 강의를 재정비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대학교재인 ‘한국지방자치론’을 쓰기 시작했다. 정보화가 되면 학생들부터 쉽게 교수들의 강의와 업적을 비교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강의 경쟁력이 없거나 이름을 얻지 못한 교수는 그야말로 등록금 축낸다는 소리나 들을 것 같아서였다.

책 집필도 정보화가 불러올 대중사회를 겨냥했다. 저자의 주장을 숨기지 않았고 문장은 쉽게 썼다. 심지어 맨 앞의 한 장(章)은 수필 형식으로 구성했다. 책의 크기도 키우고 표지 또한 그림을 넣어 컬러로 인쇄했다. 작은 판에 옆줄 한두 개 그어진 흰색 표지가 관련 분야 대학교재의 표준이 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책이 출판되자 주변 사람들이 걱정했다. “팔리기나 할까?” 그러나 초판 출간 3주일 후 책은 매진되었다. 찍고 또 찍고, 출판 첫 학기에만 3쇄를 찍었다. 2004년 공직에 매여 개정을 못해 스스로 절판할 때까지 이 분야에서 단단한 지위를 굳혔다. 당연히 저자로서의 인생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새해 아침, 왜 이 생각이 난 것일까? 혁신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모든 것이 요동을 치고 있다. 빠른 기술변화에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글로벌 분업체계, 또 커지는 환율 리스크에 저유가로 인한 시장변동 등 실로 감당하기 힘든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 양극화와 가계부채, 그리고 청년실업 등의 구조적 문제도 심각하다.

국가라도 믿을 만하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대통령부터 이미 정책역량과 지도력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 창조경제다 뭐다 하지만 구호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관료집단은 더 하다.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경제정책이라고 내어 놓는 게 돈 풀고 금리 내리고 부동산 부추기고 하는, 그야말로 빤한 것들이다. 산업구조조정과 노동구조 개혁을 말하지만 추진동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비전도 전략도 없다. 문제가 터지면 목소리를 높이는데, 그것도 문제를 풀기 위해 높이는 게 아니다. 문제를 무기로 삼아 상대를 찌르는 데 열을 올린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혁신, 즉 스스로를 변화시켜 역량을 강화하는 것 외에 뭐가 있겠나.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변화를 이해할 줄 알아야 하고, 혁신에 필요한 의지와 자원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사회 전체에 혁신의 바람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그렇다. 이 길 외에는 달리 뭐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혁신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혁신을 통해 스스로의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본다. 며칠 전에도 의료관광 코디가 되기 위해 의학공부를 시작하는 전직 고위 외교관을 만났다. 농사 경험을 살려 농산물 관련 인터넷 활동을 시작한 7순 노인도 보았다. 이 노인의 말이 재미있다. 나이 불문하는 인터넷 공간이야말로 노인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외국 관광객을 전문적으로 모실 목적으로 그 나라 언어를 공부하는 모범택시 기사에서부터, 업종전환을 꾀하는 기업인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는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 이들이 우리의 힘이요 경쟁력이다.

2015년 새해, 나는 무엇을 혁신할 것인가? 어떠한 혁신으로 나를 무장할 것인가? 담배를 끊을 것인가? 새로운 공부를 하고 기술을 익힐 것인가? 아니면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 있는 새로운 사업을 해 나갈 것인가? 모두들 좋은 답을 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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