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예스맨’ 총재를 원한다?...성역 잃는 글로벌 중앙은행들

입력 2018-12-11 10:52 수정 2018-12-1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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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텔 RBI 총재, 모디 총리와의 갈등 끝에 전격 사임…선진국·신흥국 막론, 중앙은행 독립성 심각한 위협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전례 없는 고강도의 정치적 압박에 요동치고 있다.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파이터’이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경기부양의 주도자 역할까지 하면서 성역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이 중앙은행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조정하려 한다고 10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문제를 제기했다.

중앙은행이 받는 압박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바로 우르지트 파텔 인도중앙은행(RBI) 총재의 전격적인 사임이다.

파텔 총재는 별도의 유예 기간 없이 10일 즉각적으로 사임한다고 밝혔다. 갑작스러운 사임에 대해 그는 개인적인 사유라고만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의 대립을 사임 이유로 꼽았다. 모디 총리는 대출 조건과 통화정책 완화를 요구하면서 RBI의 독립성을 위협했다. 특히 내년 봄 총선을 앞두고 모디 정부가 선심성 정책 재원을 요구하면서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인도 여당 인도인민당(BJP)의 한 관계자는 “최근 가장 큰 쟁점은 RBI가 국고에 납입하는 잉여금에 대한 이견이었다”고 말했다. 파텔 총재는 시장의 유동성을 조정하고자 거액의 잉여금을 납입하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반면 모디 정부는 내년 4~5월로 예정된 총선을 압두고 선심성 정책에 사용하고자 잉여금 납입을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그 요구액은 3조6000억 루피(약 56조 원)로, 시장이 허용 범위로 봤던 1조~3조 루피를 훨씬 뛰어넘었다.

파텔의 전임자인 라구람 라잔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최우선시하면서 경기부양을 원하는 정부와 갈등을 빚은 끝에 2016년 9월 물러나면서 연임이 무산됐다. 라구람 라잔은 리먼 쇼크를 예견한 세계적인 석학으로 모디의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과 종교 갈등을 부추기는 여당의 행동을 비판해 사실상 경질됐다는 평가다.

모디는 후임에 ‘예스맨’으로 알려진 파텔을 기용했으나 그런 파텔조차도 정부의 강한 정치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물러나게 된 것이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미국 코넬대 교수는 “RBI가 독립성을 유지하기는 이미 너무 늦었다”며 “파텔의 사임은 모디가 중앙은행을 장악하기 위한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인도는 물론 신흥국 전반에서 중앙은행 독립성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헝가리는 법 개정으로 중앙은행 독립성 원칙을 훼손해 2012년 유럽연합(EU)과 갈등을 빚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중앙은행에 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라고 압박을 넣었다가 자국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를 잃게 했다.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에 미쳐가고 있다며 제롬 파월을 연준 의장으로 지명한 것을 후회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의 머빈 킹 전 총재는 마크 카니 현 총재가 영국의 EU 탈퇴인 ‘브렉시트(Brexit)’를 놓고 불필요하게 정부 비위를 맞추고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크리스티나 보디어 미시간주립대 교수는 “중앙은행과 정부의 충돌은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해당 국가의 전망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치고 자금조달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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