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식량이 공급되지 않아 아사자가 속출했다. 의욕에 찬 계획경제는 대실패로 귀결되었다.
전통적으로 베트남은 농업국가, 메콩강 하구 기름진 삼각주는 연중 4모작이 가능한 곡창지대다. 그런 나라에서 쌀이 부족해 굶어죽는 사람이라니, 통일정부는 긴장했다. 통일 후 10년이 지나도록 국민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정상적이라면 1980년 6차 당 대회 이후 1990년 안팎으로 7차 당 대회가 열려야 했는데 사회주의권 붕괴로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대규모로 아사자가 발생하는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당 대회를 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인민망에 따르면 현지 정부는 “등기와 심사를 거치지 않아 이미 철거했다”고 밝혔다.
동상이 설치된 허난성에서는 마오쩌둥의 경제 대책 ‘대 약진’ 실패로 많은 아사자가 발생했다. 한편, 강한 지도력으로 현대 중국의 주춧돌을 쌓아 올린 마오쩌둥의 평가는 중국 내에서도 갈려 이번 결정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해는 1월부터 가물어 냇물과 우물이 말라붙고 전염병이 만연한 데다 아사자가 속출해 사람고기를 사고팔기까지 했다고 한다. 충목왕 2년(1346)에는 왕이 친히 내전(內殿)에서 기우도량을 베풀었다.
조선의 왕들도 기우제는 자주 지냈지만 국가 차원의 기우도량은 없어졌다. 태종실록 5년(1405) 5월 2일에 “비가 조금 내렸다. 기우하는 법석(法席)에 백저포...
일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으로 수백만의 아사자가 발생하고 주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자 그 책임을 서관히 전 노동당 농업담당 비서에게 물었다.
서관히는 1997년 평양시민이 보는 앞에서 공개처형됐다.
이후 김정일은 서관히 사건을 기점으로 3년간 북한 전역을 광풍에 몰아넣은 '심화조사건'을 총지휘한 채문덕 당시 사회안전부...
이러한 애병운동은 북한 사회에서 대량 아사자가 발생하고 군인들까지 영양실조로 매일 죽어나가던 '고난의 행군' 시기 시작됐다. 특히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1997년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군 576군부대를 찾아 이 운동에 대해 "대단히 훌륭한 현상"이라고 치하한 후 '병사들을 위한 날' 운영은 전군에 고착화됐다.
북한의 올해 달력을 보면...
북한 서해안 지역이 5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달 말까지 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 이 지역의 강우량은 1962년 이후 최저치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이후 지금까지 평양은 2mm, 해주는 5mm, 신의주는 1mm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최현수 농업성 국장은 조선중앙통신에서 "나라의 동해안 지대와 북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