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첫 번째로 문을 연 베트남 식당은 서울 충무로에 있었던 ‘한일식당’이다. 1977년 4월 개업한 이 식당은 인근에 한일은행 퇴계로 지점이 있었고, 이곳 행원들이 단골 고객이었다. 10평 남짓한 이 식당의 주메뉴는 월남국수와 월남만두였지만 족발이나 파전, 김치찌개, 냉면 등 우리 음식도 팔았다.
이 식당의 주인은 베트남 패망 당시 주월 한국대사
지난 8월 임시국회가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놓고 공전할 때, 유일한 국회 의사일정으로 진행된 것이 대법관 인사청문회였다. 이때 대법관 후보자는 30여년간 판사로 근무하고, 법원행정처 차장까지 역임했기 때문에 대법관으로서의 능력과 자질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었다. 다만, 또 판사 출신이 대법관으로 제청된 데 대해 ‘그들만의 리그’라는 청문위원들의 지적이 계속되었
인천 아시안게임의 개막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인천시가 2007년 4월 쿠웨이트에서 아시안게임을 유치할 때 나는 인천시 정무부시장으로 현장에 있었다. 그 당시 경쟁상대는 인도의 델리시였는데, 인도는 제1회 아시안게임 개최국인 데다가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에서의 영향력 또한 우리보다 커 인천시의 유치 성공은 만만치 않아 보였다. 게다가 정부는 평창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등 서유럽에서 연정(聯政)은 일반적 현상이다. 정당들이 이념·계급·종교·지역 등으로 분화되어 있어서 주요 이슈마다 정책이 다르고 유권자들의 선호도 다르기 때문에 주요 정당들조차 선거에서 과반수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연정이 거의 없었던 영국에서도 지금은 보수-자민당이 연합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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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최대의 해양 대참사는 독일판 타이타닉호로 불리는 여객선 ‘빌헬름 구스틀로프호’의 침몰이다. 이 배는 히틀러의 선심 정책으로, 독일 국민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바다여행을 할 수 있도록 1936년 2만5484톤, 2000석 규모로 건조되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병원선으로 쓰이다가, 독일 패망 무렵에는 피난민 수송선으로 사용되었다.
지난 3월 23일 국회 독일 연구모임 여·야 의원 3명과 함께 독일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분단과 함께 수출 주도형 경제 등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해왔다. 그러나 21세기가 되기 전에 통일을 이루었고, 금융위기 이후에는 유럽 최강으로 홀로 우뚝 서 있다. 그들이 어떻게 통일을 이루었고, 어떻게 강해졌는지 알아보는 것이 우리
율곡의 ‘10만 양병론’은 조선시대의 가장 정확했던 미래예측으로 거론된다. 임진왜란을 9년 앞둔 1583년, 병조판서였던 율곡은 경연(經筵) 석상에서 “나라의 세력이 극도로 부진하니 10년이 안되어 땅이 무너지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미리 10만의 군사를 길러서 도성에 2만, 각도에 1만을 두고, 무예를 훈련시켜 6개월마다 나누어 도성을 지키게 하였다가 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