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다문화 사회와 난민

입력 2014-11-1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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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국회의원ㆍ새누리당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로 문을 연 베트남 식당은 서울 충무로에 있었던 ‘한일식당’이다. 1977년 4월 개업한 이 식당은 인근에 한일은행 퇴계로 지점이 있었고, 이곳 행원들이 단골 고객이었다. 10평 남짓한 이 식당의 주메뉴는 월남국수와 월남만두였지만 족발이나 파전, 김치찌개, 냉면 등 우리 음식도 팔았다.

이 식당의 주인은 베트남 패망 당시 주월 한국대사관에서 구내식당을 운영했던 고티투홍씨(여·당시 30세)였다. 고티투홍씨가 우리나라에 입국한 것은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이 함락된 1975년 5월 13일이다.

이때 우리 해군은 상륙함정인 LST에 고티투홍씨 등 베트남 난민 1364명을 싣고 부산항에 들어왔다. 또 화물선인 쌍용호가 베트남 난민 216명을 해상에서 구조해 10일 뒤인 23일 부산항에 들어왔다. 이들 가운데 60%는 이후 미국 등 외국으로 이주했지만, 40%는 우리나라에 정착했다.

1975년 베트남 난민들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로 난민을 구조하고, 우리 사회로 통합시킨 경험을 안겨 주었다. 당시엔 의식하지 못했지만, 학계에서는 베트남 난민의 수용을 우리나라가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는 신호탄이 된 것으로 평가한다. 베트남 난민이 우리 사회에 들어오면서 대도시에 베트남 식당이 생기고, 드라마나 소설, 영화를 통해 이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소개와 조명이 이뤄졌다.

당시 우리 해군의 LST에 승선한 베트남 난민들은 ‘준비된 난민’이었다. 미국의 주도하에 베트남 전 참전국이 난민 수용에 나섰고, 우리도 그 일원으로 참여했다. 당시 미국은 미국 군속을 포함해 10만여명의 난민을 받아들였다. 우리나라에 온 난민 가운데 일부는 한국인 2세 등 우리나라와 연고도 있었다.

그러나 쌍용호에 승선한 난민은 사실상 보트피플이었다. 1975년 5월 2일 사이공 남쪽 해상을 지나던 화물선 쌍용호는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던 남베트남 해군 소속의 상륙정에서 군인, 군무원 등 216명을 구조하게 된다. 쌍용호는 이후 태평양 미군기지, 대만, 태국 등의 항구에 기항해 이들을 인계하려 했지만, 모두 거절당한다.

결국 우리 정부가 쌍용호에 귀국하라고 지시, 이들은 극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난민대우를 받게 되었다. 당시 태국 정부는 자신들의 항구에 정박해 있던 남베트남 난민선 2척도 본국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들은 귀국하느니 집단 자살하겠다며 소동을 벌였다. 이와 비교하면 우리 정부의 태도가 얼마나 포용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난민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무력 분쟁 때문이다. 최근 시리아 등 중동지역에서 난민이 대거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난민을 수용하는 국가에서는 언제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의 구호활동에 막대한 예산이 들고, 인원이 많으면 사회불안 요인이 될 것도 염려해야 한다. 특히 이들이 망명국에서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 노동시장과의 충돌도 우려된다.

우리나라는 1992년 난민 지위에 관한 국제협약에 가입했지만, 2000년까지 단 1명의 난민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75년 베트남 난민 수용 후 25년간은 사실상 난민 제로 시대였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을 받아 왔고, 여기에 따라서 지난해 7월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했다.

그러나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난민을 신청할 때, 이를 수용하는 난민 인정률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에 난민을 신청한 외국인은 1038명이었지만, 받아들인 사람은 3%에 불과하다. 난민의 처우개선과 인권보호를 위한 난민법이 시행됐지만, 아직도 정부가 난민 자체를 인권적 시각이 아니라 이주노동자 관리나 통제 관점에서 보고 너무 엄격한 잣대를 대고 있는 것이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170만명이나 된다. 과거 베트남 난민을 받아들여 우리 사회에 포용했듯이, 지금은 더욱더 열린 마음으로 난민을 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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