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27일에는 한스-디트리히 겐셔 전 서독 외교장관, 볼프강 쇼이블레 전 서독 내무장관(현 독일 재무장관), 로타르 드 메지에르 전 동독 총리, 라이너 에펠만 전 동독 국방장관, 루데비히 전 헬무트 콜 총리 경제보좌관, 글라이케 신연방주(구동독지역) 특임관 등 독일 통일 관련 인사 6명을 연쇄 접견할 계획이다.
주 수석은 “이번 독일 방문은 통일과 통합을 이뤄낸...
부시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서기장, 동서독 통일 당시 헬무트 콜 총리 세 사람이 독일 베를린에서 만나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콜 : “아무도 믿지 못한 통일을 이룬 것은 우리의 긍지다.”
아버지 부시 :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은 냉전을 끝냈을 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의 상흔도 지웠다.”
고르바초프 : “정치가가 아니라 국민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정치적 멘토였던 헬무트 콜 정권이 1998년 총선에서 패배하자 기민당의 사무총장이 됐다. 1999년 한해 동안 일곱 번의 선거 중 여섯 차례의 승리를 일궈 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메르켈이 2005년 말 집권할 당시 상황은 최악이었다. 독일은 장기간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10%가 넘는 실업률에 재정 악화, 빠른 고령화 등 심각한 구조적 문제로...
폰 클라이스트는 1998년 헬무트 콜 총리의 외교 정책 보좌관인 호르스트 텔트쉬크에게 자리를 넘겨줄 때까지 회담의 주재자로 활동했다. '뮌헨 안보 회담'을 이끌어 온 공로를 인정받아 1991년에는 미국 국방부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가장 높은 등급의 상인 '국방공로훈장'을 수상했다.
그는 '7월 20일' 작전 이외에도 자살폭탄 조끼를 입고 히틀러 암살을 시도....
독일 통일의 주역으로 평가받는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가 30살 연하의 새 아내에 의해 감금 상태에 있다고 3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그의 두 아들인 발터와 페터는 “아버지가 바깥세상과 거의 단절됐다”며“30살 넘게 나이차이 나는 두번째 부인 마이케 콜-리히터가 그를 가두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들은 오는 7일 재발간되는...
메르켈은 2000년 선거 운동 기금 모금 관련 추문으로 헬무트 콜 당시 당 대표와 그의 후계자로 지명된 현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이 타격을 입자 95.9%의 높은 지지율로 처음으로 당대표에 올랐다.
독일은 내년 9월 총선을 앞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메르켈이 이번 대의원 표결에서 압도적인 지지율을 얻으면서 정권 재창출과 3선 총리 등극에 청신호로 해석했다....
1989년 12월 고(故)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과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유럽 단일통화 도입과 독일 통일을 위한 담판에 나섰다.
먼저 손을 뻗은 쪽은 독일이었다.
통일을 추진하던 독일에게 프랑스의 동의는 필수였다. 굳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웃국가인 독일과 프랑스는 전쟁과 화해의 역사를 지속한 애증의 관계였다.
프랑스에게...
빌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 등 총 230여명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게이르 룬데스타드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은 27일(현지시간) AFP통신에 "항상 그랬듯, 전 세계 곳곳에서 추천을 받은 노벨평화상 후보들이 있다"며 "일부는 유명하고 또 다른 일부는 인지도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노벨위원회는 후보자...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가 앙겔라 메르켈 총리 등 후임자들의 외교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24일(현지시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이 세계 정치 무대에서 제 멋대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독일은 올해 서방 동맹국들의 노선에서 벗어나 비난을 받았다. 지난 3월 독일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에 대한 공습 결정에...
이듬해 헬무트 콜 전 총리에게 발탁돼 여성청소년부 장관, 환경부 장관 등을 맡았으며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이자 최연소 총리 자리에 오른 후 지난해 연임에 성공했다.
남성보다 과감한 결단력으로 우파의 집권을 이끌어 낸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금융위기를 무난히 넘긴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조용한 카리스마로 대연정을 이끌어 안정감과 냉철함을...
1990년 재무차관 재직 당시 마스트리히트 조약 협상에 참여하면서 헬무트 콜 전 총리가 가장 신뢰하는 금융·경제 자문관으로 부상했다.
1998년 유럽부흥개발은행장으로 부임하면서 국제 금융계에 이름을 알린 그는 2000년 5월 당시 사회민주당 소속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추천으로 독일 몫이던 IMF 총재에 올랐다.
그는 부친 사망 후 공장에서 일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