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친일파 거두 등 '마땅히 죽여야 할 일곱 대상(7가살)'과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각 경찰서 등 '다섯 가지 파괴 대상(5파괴)'을 정했다.
1929년 해단하기까지 10년, 의열단은 크고 작은 34건의 의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유명한 김익상 의사의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이로써 1906년(광무10)에 일제가 한국을 병탄할 목적으로 설치한 감독기관으로서의 통감부는 통치기관인 총독부로 바뀌게 되었고, 다음 날인 8월 30일 조선총독부 관보 제1호에 강제병탄 사실을 게재하였다.
국치(國恥)! 나라를 통째로 빼앗긴 부끄러운 날이다.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우리 민족의 빛을 되찾는 광복(光復)을 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부끄러운 상처를...
1905년, 간지(干支)로는 을사년에 일제는 우리나라의 내정에 깊이 간여하기 위해 외교권을 박탈하는 조약을 체결하고 서울에 조선총독부의 전신인 조선통감부를 설치하였다. 사실상 나라가 일본에 넘어간 뼈아픈 조약이다.
그런데 이 조약을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을사보호조약’이라고 불렀다. 초,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을사보호조약’이라고 표기되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2015년 철거된 옛 국세청 남대문 별관 자리에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을 정식 개관한 데 이어 지상부 ‘서울마루’를 개장했다”며 “일제가 지은 조선총독부 체신국 건물이 있던 장소가 82년 만에 시민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 생모인 순헌황귀비의 사당 ‘덕안궁’으로 사용되던 옛 국세청 별관 부지에는...
105인 계단, 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 등 야외 기념시설을 스마트폰에 AR로 구현해 관람객들이 숨겨진 역사현장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백범김구기념관은 임시정부와 관련된 주요 기념시설을 MR로 구현, 별도의 장비를 착용하지 않고도 움직임 인식(모션인식) 방식으로 임시정부청사 내부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관람객 국적, 연령...
마침내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조선총독부를 폭파하고자 하니 비행기를 준비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비행기를 살 돈은커녕, 빌릴 돈도 없었다. 결국, 그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1932년 상하이 전쟁이 벌어지자 중국 측에서 일본을 상대로 맞서 싸웠다.
그리고 3년 후인 1935년 장제스의 부인인 송미령 중국항공위원회...
조선총독부 경찰이 ‘불령선인(不逞鮮人)의 소굴’이라 칭했던 숭실대는 시대적 사명감을 가지고 민족정신과 기독교신앙으로 무장한 수많은 항일 민족 운동가를 배출했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에서는 숭실 출신 독립유공자 발굴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했으며 현재까지 파악한 숭실 출신 독립유공 포상자는 총 84명에 달해 국내 대학 중 최대인원이다.
일제가 지은 조선총독부 체신국 건물(당시 조선체신사업회관)이 있던 장소가 시민문화 공간으로 재탄생, 82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서울시는 2015년 철거했던 옛 국세청 남대문 별관 건물 자리에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을 조성 완료하고 개관한다고 28일 밝혔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은 지상1층~지하3층 연면적 2998㎡ 규모로 조성됐다. 지상은 ‘비움을...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1책은 '광해군일기'로, 그 첫 면에 '이왕가도서지장(李王家圖書之章)', '무주적산상사고소장 조선총독부기증본(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등의 인장이 찍혀 있다. 이를 통해 전라북도 무주 적상산사고에 보관됐다가 일제감정기에는 이왕가도서로 편입된 실록임을 알 수 있다.
적상산사고본 실록의 발견으로 조선 4대 사고인...
의열단은 식민 지배자와 민족 반역자 처단, 조선총독부를 비롯한 식민지배 기관 파괴에 집중했다. 정규 병력으로 맞설 수 없는 일제에 대항해 무력 투쟁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이를 위해 의열단원 최수봉이 밀양경찰서를 폭파하고, 김익상과 이종암 등이 상하이(上海)에서 일본 육군대장을 저격하고, 나석주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졌다.
이 모든...
1930년대 서울 시내를 운행한 전차 381호(등록문화재 467호)가 복원됐으며,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부재가 과거를 곱씹게 만든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도 의미 깊다.
3월 1일부터 5월 26일까지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전-서울과 평양의 3·1운동'도 열린다. 3·1운동이 시작되고 기획된 서울, 서울과 함께 3·1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된 평양의 독립운동을...
하지만 최종심을 맡은 일제 조선총독부 고등법원은 상고를 기각했고, 1919년 6월 최종심에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조선총독부 판결문에는 간절했던 시민들의 독립에 대한 염원이 그대로 담겼다. 22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막하는 특별전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숭실대는 30일 "한국 대학교육의 효시가 되었던 숭실대학의 역사를 1897년 10월 창립부터 1938년 3월 폐교될 때까지 당대의 신문, 잡지, 조선총독부 문서, 선교사 기록 등을 참조해 편년체 형식으로 엮었다"고 알렸다.
주요 내용으로 학교 연혁과 각종 교육시설의 변화, 학사행정, 교수 및 학생활동, 민족운동과 폐교 문제 등을 수록했고, 관련 사진 290여...
그러나 재판부는 "당시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조사규정을 보면 일필지로 조사된 부분 중 일부가 도로나 하천으로 사용되지 않는다고 해도 이를 다른 필지로 나누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판단 아래 일필지로 조사하도록 했다"며 "해당 토지 전부를 하천이나 도로가 아니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토지조사사업 당시 실제 도로나...
내용은 발동선이 자망(刺網) 어선의 투망을 방해해 자망 어민들이 총독부에 진정을 내서 관리들이 현장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조선의 어부들은 일제강점기에 와서도 여전히 옛날 방식으로 고기를 잡았다. 조선 어부들은 무동력선으로 명태가 지나가는 길목에 그물을 놓는 방식(고정식 자망 어업)으로 명태를 잡았다. 명태잡이가 활발했던 함남 홍원군 삼호항의 경우...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5년 조선총독부에서 시멘트를 덧발라 응급 보수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1998년 구조안전진단 결과 문제점이 발견돼 이듬해 문화재위원회에서 해체·수리를 결정했다. 석탑 보수정비는 해체에만 꼬박 10년이 걸리면서 단일문화재로는 최장기간 체계적인 수리가 진행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석탑을 어떤 상태로 보수·복원할 것인가를 두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이 노래를 조선인의 황민화 정책을 위해 하루에 1번 이상 각 학교 조회시간, 일본 국기 게양과 경례 뒤에 반드시 부르게 했다. 이처럼 기미가요는 우리 민족의 가슴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곡이다.
SBS의 '평창 2018'는 오는 22일 열리는 방통심의위 소위원회 정기회의에서 기미가요 송출 건으로 심의를 받을 예정이다.
그러나 옹주는 조선총독부의 정책 때문에 6세가 되어서야 정식 왕공족(王公族)으로 등록되고 1921년 10세 때 ‘덕혜’라는 호를 받았다. 덕혜옹주가 8세 때인 1919년 1월 21일에 고종이 승하하였다.
10세가 되는 1921년 4월 1일 일본인 귀족 자제들을 위한 초등교육기관인 일출심상소학교(日出尋常小學校)에 입학하였다. 5학년 때인 1925년 3월 ‘황족은 일본에서...
주소란에는 '대한제국 경성부 조선총독부' '서울시 종루고 세종로 1번지 청와대' 등 황당한 내용을 적어 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진상조사팀은 일괄 출력물 형태 의견서 중 중복된 의견서를 제외한 4374명에 대해 무작위로 677명을 추출해 유선전화로 진위를 파악한 결과, 252명이 응답했다. 9명은 착신정지 상태였고, 26명은 결번이었다.
응답자 중 찬성의견서를...
망명 후에는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안기겠다는 목표로 비행사가 되고자 했다. 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항저우(杭州)의 홍다오(弘道)여학교에서 중국어와 영어를 공부하고 1923년 6월 상하이로 돌아와 비행학교 입학에 필요한 운전면허를 땄다.
여자라는 이유로 난위안(南苑) 및 바오딩(保定)의 항공학교 입학을 거절당하자 직접 윈난성(雲南省)을 찾아가 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