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인 소생의 딸 역시 일반 공주와는 다른 차별 대우를 받았다. 고려의 공주들은 거의 100%에 가깝게 근친혼을 하였다. 즉, 공주들의 결혼 상대는 대개 왕실내(王室內)의 남자들이었다. 그에 비해 궁인의 몸을 빌려 태어난 왕의 딸들은 일반 관인(官人)의 자제와 혼인하였다. 그리고 그녀와 혼인한 사람을 ‘나라의 사위’ 또는 ‘국왕의 사위’라는 의미로 ‘국서(國壻)’라고...
‘삼국사기’ 열전에는 지소부인이 아들 다섯 명과 딸 넷을 낳았다고 하였다. 딸의 이름은 남겨두지 않았으나 아들의 이름은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첫째는 이찬 삼광(三光)이고, 둘째는 소판 원술(元述)이며, 셋째는 해간 원정(元貞), 넷째는 대아찬 장이(長耳), 다섯째는 대아찬 원망(元望)이었다. 이 외에 서자인 아찬 군승(軍勝)이 있는데, 그 어머니의 성씨는 전하지...
도화녀(桃花女)는 신라 제25대 진지왕(재위 576∼579)과 제26대 진평왕(재위 579∼632) 대의 여성이다. 사량부(沙梁部)에 살던 서민의 딸로, 혼인하여 남편이 있었다. 매우 아름다워 당시 사람들이 도화랑(桃花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진지왕은 575년에 즉위한 지 4년 만에 정치가 문란해졌고, 음란함에 빠져 폐위된 왕이다. 도화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욕심을...
연제부인(延帝夫人)은 신라 제22대 지증왕(智證王·재위 500∼514)의 왕비이고, 제23대 법흥왕(法興王·재위 514∼540)의 어머니이다. 연제부인의 성은 박씨(朴氏), 아버지는 이찬(伊飡) 등흔(登欣) 혹은 검람대한한지등허(儉攬代漢漢只等許) 각간(角干)이다.
지증왕은 전대의 왕인 제21대 소지왕(炤知王·재위 479∼500)의 재종(再從) 동생이다. 지증왕의 즉위조에 따르면...
대령군부인 최씨(大寧郡夫人 崔氏·?~1316)는 해주 최씨로, 구재학당(九齋學堂)의 창시자 최충(崔冲)의 10세손이다. 아버지 최염(崔恬)은 동궁시독학사 지제고(東宮侍讀學士 知制誥),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는 모두 재상을 지낸 명문가였다. 어머니 역시 명문 남양 홍씨 출신 당성군부인(唐城郡夫人)이다.
최씨부인은 14세에 죽주(竹州·경기도 안성시) 출신인 행산...
정화택주 왕도인(靜和宅主 王道人·생몰년 미상)은 무인집정 최충헌(崔忠獻·1149~1219)의 세 번째 처이다. 최충헌은 처음 장군 송청(宋淸)의 딸과 혼인하여 2남 1녀를 낳았으나 송씨가 사망하였다. 그 뒤 최충헌은 장군 손홍윤(孫洪胤)을 죽이고, 그의 처 임씨(任氏)가 아름다운 것을 알고는 그녀와 혼인하였다. 다시 강종(1152~1213)의 서녀(庶女)와 혼인하니 바로...
만명부인(萬明夫人)은 신라 왕족 출신으로 진흥왕의 동생 숙흘종(肅訖宗)의 딸이다. 남편은 김서현(金舒玄)으로 멸망한 금관가야의 왕족 후예였다. 법흥왕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은 3명의 아들을 이끌고 신라에 귀부했는데, 둘째 아들인 김무력(金武力)의 아들이 김서현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서현이 길에서 만명을 보고 마음으로 기뻐하여 중매도...
좌지왕은 김질(金叱) 또는 김토(金吐)라고도 하는데, 아버지는 제5대 이시품왕(伊尸品王), 어머니는 사농경(司農卿) 극충(克忠)의 딸 정신부인(貞信夫人)이다. 407년 이시품왕이 세상을 떠나고 좌지왕이 즉위하면서 용녀를 왕비로 맞이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용녀가 왕비가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따르면 좌지왕이 용녀를 왕비로 삼고...
한씨 미녀(韓氏 美女)는 경기도에 있는 행주산성을 배경으로 전해지고 있는 설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삼국사기’에는 지리지(地理志)에서 한산주(漢山州)에 있는 왕봉현(王逢縣)을 설명하면서 한씨 미녀가 안장왕(安藏王·재위 519~531)을 맞이한 땅이라고 하였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는 보다 자세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지명은 보다 구체적으로 고양...
한편 MBC 새 수목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는 1970년대 중동의 한 작은 왕국으로 건너가 백작이 된 남자(최민수 분)가 딸 이지영(강예원 분)과 사위 강호림(신성록 분) 앞에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방송 2회 만에 최민수의 코믹 연기가 입소문을 타며,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방송은 매주 수, 목 밤 10시.
1487(성종 18)∼1557(명종 12). 조선 11대 왕인 중종의 비이다. 본관은 거창으로 아버지는 익창부원군 신수근(愼守勤)이며, 어머니는 청주 한씨 한충인(韓忠仁)의 딸이다. 슬하에 자녀는 없다. 할아버지는 신승선(愼承善)이다. 연산군의 부인 폐비 신씨와 아버지 신수근이 남매이다. 신수근은 연산군의 처남이며 중종의 장인이 되고, 폐비 신씨는 단경왕후의 고모가 된다....
은천옹주(銀川翁主· 생몰년 미상)는 고려 충혜왕의 제4비이다. 본래 상인(商人) 임신(林信)의 딸로, 단양대군(丹陽大君)의 여종이었다. 사기 그릇 파는 것을 생업으로 하였는데, 충혜왕이 보고 총애하였다. 1342년 은천옹주로 책봉되니 사람들이 ‘사기옹주’라고 별명을 지어 불렀다.
천민 출신이 어떻게 왕의 후궁이 될 수 있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경제에 대한...
딸 둘이 왕비가 되고, 딸 하나는 원의 고관대작과 혼인했으며, 그 자손들이 모두 높은 벼슬을 하여 가문의 성함이 고금에 비길 바가 없었다.
장녀가 원의 아홀대와 혼인한 데는 곡절이 있었다. 충렬왕이 공녀를 선발할 때 홍규의 딸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홍규는 딸을 빼내고자 권력자들에게 뇌물을 주었으나 여의치 않자, 딸의 머리카락을 잘라 버렸다. 제국대장공주...
고려는 1231년 몽골이 침입해 오자 이듬해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이후 40여 년간 항전하였다. 유례없이 긴 전쟁으로 국토는 황폐화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포로로 끌려갔다. 오랜 전쟁에 지친 양국은 화의를 맺고, 1270년 마침내 고려는 개경으로 환도하였다. 그러나 삼별초는 개경으로 오라는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항전을 시작하였다. 이 와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헌안왕은 응렴에게 맏딸과 둘째 딸 중 한 명을 택하라 하였다. 이에 대해 응렴의 부모는 어쩔 수 없다면 용모가 아름다운 둘째 딸에게 장가를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반면 흥륜사의 승려 범교사(範敎師)는 언니에게 장가들면 유익한 점이 세 가지 있고, 동생에게 장가들면 손해 보는 것이 세 가지 있다고 조언하였다. 이에 응렴은 언니인 문의왕후를 택하였다....
‘삼국사기’에는 파로가 딸 벽화를 소지왕에게 바친 일화가 나온다. 소지왕은 비처왕(毗處王)이라고도 하였는데, 자비왕의 맏아들이다.
소지왕이 재위 22년(500) 가을 9월에 날이군(捺已郡·현재 경북 영주)에 행차하였다. 당시 날이군은 신라의 최북방 요충지였다. 소지왕은 왕의 통치행위의 일환으로 군사와 정치적 목적에서 날이군에 행차한 것이었다. 소지왕이...
문정왕후(文定王后·1501~1565)는 중종의 세 번째 왕후다. 윤지임(尹之任)의 딸로 1517년 열일곱에 왕후가 되었다. ‘문종실록’에서 사관은 문정왕후에 대해 “천성이 강하고 사나우며 문자를 알았다”고 평했다.
중종에게는 3명의 왕후가 있었다. 그중 두 번째인 장경왕후의 아들이 중종을 이어 즉위했다. 곧 인종으로 불행하게도 8개월 만에 세상을 떴다. 이어 1545년 명종이...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1735~1815)로 더 잘 알려진 헌경왕후는 장조(莊祖·사도세자)의 비이자 정조의 어머니다. 아버지는 홍봉한, 어머니는 한산 이씨로 관찰사 이집(李潗)의 딸이다. 본래 세자빈이지만 고종 대에 ‘헌경왕후’, 대한제국기인 1899년에 ‘의황후’로 높여졌다.
1744년(영조 20) 동갑내기 사도세자와 가례(嘉禮)를 올리고 1752년 아들 정조를 낳았다. 하지만...
왕온은 옹주가 29세 때인 1310년(충선왕 2)에 사망하였는데, 당시 아들 셋과 딸 하나가 모두 어렸다. 옹주는 회안부원군(淮安府院君) 왕순(王珣), 창원부원대군(昌原府院大君) 왕우(王瑀), 낙랑군(樂浪君) 왕수(王琇)등 세 아들을 잘 가르치고 길러 모두 혼인시키고 손자도 8명이나 보았다.
그런데 하나 있는 딸이 충숙왕 대인 1314년에서 1323년 사이에 원나라에 공녀(貢女)로...
전쟁 종식을 위하여 몽골에 들어간 남편이 원세조의 딸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와 혼인을 한 것이다. 혼인한 지 14년 만에 두 번째 왕비를 얻은 셈인데, 고려 왕실은 애초에 다처제였으니 예전 같으면 별 문제가 안 될 일이었다.
문제는 원과 고려가 대등하지 않은 관계였다는 점이다. 이로써 원비(元妃)였던 그녀는 제2비로 밀려나게 되었으며, 겨우 16세에 불과한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