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좌우익 여성이 함께 조직했던 건국부녀동맹에 참여했으나, 찬탁과 반탁을 두고 분열하였다. 박승호와 박순천 등 우익 여성들은 1946년 4월 5일 독립촉성애국부인회를 발족시켰다. 이 단체의 회장에 박승호, 부회장에 박순천·황기성이 선출되었다.
1946년 11월 15일 대한여자국민당, 불교여성총연맹, 가톨릭여자청년연합회, 여자기독교청년회...
1915년 항일 비밀결사인 송죽결사대를 조직하였고, 1919년 3·1운동 때에는 평양에서 여성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잡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평양형무소에서 복역 중 신병으로 출옥하자 다시 비밀결사인 대한애국부인회의 결성에 참가하여 독립운동자금을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하지만 이듬해 일본경찰에 잡혀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1922년 가출옥한...
8·15광복 후에는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을 하는 한편 정계에 진출했다. 건국부녀동맹을 조직하였고, 1947년부터는 독립촉성애국부인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신탁통치 반대운동에 앞장섰으며, 1948년에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성운동 대변지’인 부인신문을 창간, 사장으로 5년간 활약했다. 정부수립 후에는 감찰위원이 되었고, 1949년 국민회 중앙총본부...
어머니가 난산으로 숨지기 직전이었는데, 캐나다 여성의료선교사 로제타 홀(Rosetta Hall)의 진료로 그를 낳았으며, 이후 온 가족이 기독교인이 되었다.
1915년 평양 숭의여학교를 졸업했다. 재학 중 비밀독립운동단체 송죽회(松竹會) 평양지회 책임자로 활동했다. 졸업 후 유치원 보모로 있다가 1918년 12월 일본으로 건너가 1920년 여자영학숙(女子英學塾)을 거쳐...
‘암탉’을 강조한 인선왕후의 캐릭터는 이렇게 형성된 것이 아닐까 한다.
‘암탉 운운’은 요즘 여성들에게는 그다지 듣기 좋은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인순왕후의 ‘암탉론’은 당시의 정치적인 역학관계 속에서 그녀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었는지 모른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카드뉴스 팡팡] '뜨거운 인물' 홍상수와 김민희, 그들의 작품세계
"감사합니다. 오늘 별처럼 빛나는 환희를 선물 받았습니다"
18일(현지시간) 한국 여배우 최초로 '베를린 여우주연상'을 받은 김민희가 울먹이며 말합니다.그리고 객석에서 옅은 미소를 띤 채 박수를 치는 사람은 바로 홍상수 감독이죠.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불륜 스캔들'의 두 주인공인...
인조에게 강빈은 정적일 수 있었다.
강빈은 다소곳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세자빈이었다. 다음 세대의 권력자인 세자와 세자빈은 현 왕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경계의 대상이 된다. 적극적이고 능력 있는 강빈은 시아버지 인조에게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강빈은 숙종 때에 복위되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참으로 긴 실랑이 끝에 겨우 어보가 인조의 손으로 넘어간 것이다.
흔히 인목대비를 광해군의 불쌍한 폐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 들어가 보면 그녀는 광해군의 실질적 정적이었으며, 또 인조반정에도 상당한 정치력을 발휘한 왕실의 만만치 않은 대비였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소혜왕후의 존재감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후 안순왕후는 소혜왕후와 사이좋게 대비 노릇을 했다. 여기서 ‘사이좋게’가 중요한 반전이다. 그것은 제안대군을 지켜내는 방법이었다. 왕위 계승에서 밀린 ‘대군’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인데, 그 위험으로부터 아들을 지켜낸 것이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조선 초기 후궁에서 세자빈이 되는 길이 열려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처첩 구분은 민감한 문제였고 또 경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현덕왕후가 세자빈으로 올라간 것은 딸을 낳았다는 것 외에 시아버지 세종으로부터 남다른 신뢰를 확보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남편 사후에는 아들이 즉위해 태후로서 최고의 지위를 누렸다.
명의왕태후는 고려 전기 왕실 여성 중 가장 평탄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던 여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거기에는 그녀의 아내 및 어머니로서의 덕성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1140년(인종 18) 정화(貞和), 1253년(고종 40) 광숙(匡肅)이라는 시호를 추가하였다.
사숙태후는 고려의 문벌귀족 정치가 성하던 시절 대표 문벌가문의 딸로서 섭정을 하며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여성이라 할 수 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부녀의 맡은 일에 능숙하여 모든 사람들이 흠모하였고, 현숙한 행실은 고대의 유명한 현부(賢婦)에 못지않았다”고 하여 그녀의 품성을 보여준다. 인예태후는 자손의 번성과 함께 훌륭한 아내와 어머니로서 인주 이씨의 번성, 나아가서는 고려 문벌귀족의 시대를 연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선정왕후의 삶은 고려시대의 재혼, 가계 계승에 대해 여러 가지 점을 시사한다. 그녀는 모계혈통이 중시되던 고려시대에 남편에게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개인적인 삶은 그다지 행복했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효녀 지은(知恩)은 신라 51대 왕 진성여왕(재위 887∼897) 대의 여성이다. 효녀 지은에 관한 이야기는 ‘삼국사기’ 열전과 ‘삼국유사’ 효선편에 실려 있다. 나이와 품팔이를 한 삯 등의 세부적인 사실은 다르나 이야기의 중심인물과 구성은 동일하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효녀 지은은 한기부의 백성 연권(連權)의 딸이었는데,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생계를...
설씨녀는 용모가 단정하고, 뜻과 행실이 바른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주변 사람들이 설씨녀의 고운 외모를 흠모하였으나 감히 가까이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설씨녀의 아버지가 국방을 지키는 의무인 수자리를 설 차례가 되었다. 아버지인 설씨는 병으로 쇠약해져서 멀리 가서 수자리를 설 수 없었고, 설씨녀는 여성의 몸이기에 아버지 대신 국방의 의무를 질 수도...
그런데 ‘금제사리봉안기’가 발굴되면서 무왕의 비이자 미륵사 창건에 기여한 인물이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적덕의 딸인 사택왕후였음이 밝혀졌다.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佐平) 사택적덕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曠劫]에 선인(善因)을 심어 금생에 뛰어난 과보[勝報]를 받아 삼라만상을 어루만져 기르시고 불교[三寶]의 동량(棟梁)이 되셨기에 능히 정재...
선화공주에 대한 소문을 백제의 서동이 들었는데, 그는 가난하지만 도량이 큰 인물이었다고 한다. 마를 캐다 팔아서 생계를 꾸렸으므로 ‘서동(薯童)’이라 하였다. 서동은 그가 가진 유일한 자산인 마를 아이들에게 먹이고, 마음을 샀다. 그런 다음에 그가 지은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 노래가 ‘서동요’이다.
선화공주님은
남 모르게 사귀어 두고...
이후 온달은 아단성에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장사를 행하려는데, 상여가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가 관을 어루만지며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돌아갑시다”라고 하니 그제야 상여가 움직였다. 평강공주는 신분의 벽을 넘어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책임을 진 여성이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여성이 주도한 현대판 계약결혼이었던 셈이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밤낮으로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이 가고 아니 오누나!
황진이가 지은 이 시를 읊다 보면 인생사를 꿰뚫어보는 한 인간을 만나게 된다. 이 시구처럼 황진이는 세월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도 달게 받아들였다. 40세 미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