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에서 서기 610년 고구려 승려인 담징(579~631)이 국사로 일본으로 건너가 종이와 채색화, 맷돌을 처음 보급했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7세기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어려웠어요. 제 전공인 언론의 역사는 커뮤니케이션 역사의 일부입니다. 자연스럽게 종이의 역사에 관심이 쏠렸죠. 종이는 한지가 최고예요. 1000년 가는 책은 한지로 만들어진...
고구려 고승 담징 스님이 바로 나의 동거인이었다. 나는 그이와 함께 불경을 읽기도 하고 참선도 하고 바닷가를 걷기도 하며 3년을 보내고, 드디어 장편소설 ‘담징’을 냈다. 소설꾼도 절필하는 나이에 소설을 썼고 그 소설이 5쇄를 했다는 사실은 뿌듯한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떼돈을 벌고 바람을 피운다는 운세를 체현하기 위해 나는 지금 두 번째 소설을 쓰고 있다....
고구려는 남하정책을 펼쳐 낙랑군을 313년에, 314년에는 대방군을 정복하고 영토로 삼았다. 그리고 장수왕은 427년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다. 두 번째 한랭기가 오지만 유럽은 그 중심 국가가 스페인과 포르투갈, 영국 등 해양성 기후 국가여서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원나라가 명나라로 왕조가 교체된다. 한반도에서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선다.
이...
학계의 엄밀한 고증이 필요한 주장이기는 하지만, 작가는 “정도전이 살아 있어서 조선군을 북상시켰다면 고구려의 기강 회복이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안타까워한다. 당시 명나라는 제위(帝位)를 놓고 죽고 죽이는 내전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조의 보기 드문 씩씩함을 알게 해 준 책이다.
한성백제의 수도였을 뿐 아니라 고구려, 신라의 유적도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는 남경이 설치됐고, 조선 개국 이후 지금까지 줄곧 수도의 지위를 지키고 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서울은 여러 시대에 걸친 다양한 문화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다만 서울의 문화유산은 그 깊이와 넓이만큼 온전한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많은...
전등사는 고구려 때 창건된 유서깊은 사찰이다. 전등사 대웅보전과 약사전 등 주요 건물들을 비롯해 범종과 목조석가여래삼불화상 등이 모두 보물이다. 정수사는 마니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소박한 사찰이다. 절 마당에서는 서해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정수사 입구의 함허동천 계곡은 취사장과 놀이마당 등을 갖춘 야영장 시설이 마련돼 있다.
석모도 보문사는 남해...
이런 정도의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면 수용할 수도 있겠지만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의 변방 국가였다거나 광개토대왕이 중국 진(晉)나라 때의 왕이었다고 하는 주장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북으로 통하여 중국으로 연결되는 길이 열리려 하는 지금 우리는 중국에 대해 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혼례를 치른 후 신랑은 처갓집인 장인·장모의 집(丈家)에 들어가 첫아이를 낳은 뒤에야 아내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던 고구려의 옛 결혼 풍습에서 유래했다. 장인·장모의 집에 들어간다는 뜻의 ‘장가들다’가 ‘장가가다’보다 더 많이 쓰인다. 아들 둔 입장에선 ‘장가보내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 장가가다, 장가들다, 장가보내다는 모두 한 단어이므로 붙여 써야 한다....
고구려 때 현무암으로 쌓아 올린 당포성 위에 오르면 임진강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인근 임진강 주상절리 조망지에 가면 높이 25m, 길이 2㎞에 이르는 주상절리 절벽을 볼 수 있다. 이 절벽은 한탄강을 따라 흐르던 용암 일부가 임진강 쪽으로 거슬러 올라오면서 형성됐다. 포천에서는 대교천 현무암 협곡, 화적연, 멍우리 협곡, 비둘기낭폭포 등 지질 명소가 있다. 특히...
이날 개막식에 인면조는 고구려 시대 옷차림의 무용수들과 함께 등장해 춤을 추며 눈길을 끌었다. 무표정한 얼굴과 구부정한 모습, 듬성듬성한 깃털 등이 눈에 띄었다.
송승환(61)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인면조는) 고구려 벽화 고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라며 “여러 동물이 평화를 다 같이 즐기는 한국의 고대 모습을 표현하고...
송승환 총감독은 "고구려 벽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왔다"고 설명했다.
송승환 총감독은 10일 평창메인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일일 브리핑을 통해 “고구려부터 시작하려 했다. 고구려 고분변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 과정에서 인면조가 등장했는데 평화를 다같이 즐기는 한국의 고대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개막식의 ‘인면조...
고구려, 백제, 신라 시대의 토기가 바로 이런 그릇이다.
그릇은 내용물을 담기 위한 형식이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도 중요하다. 음식을 먹는 일은 실질적인 내용이고 상을 차리는 일은 형식적인 예절이다. 식탁예절이 없이 차려진 음식은 사료에 불과하다. 형식이라는 이름의 그릇, 잘 다뤄야 한다. 그 형식이 다름 아닌 문화이기 때문이다.
인근 가볼만한 곳 - 금산, 남해대교, 충렬사, 상주은모래비치, 이충무공 유적, 지족해협 죽방렴
인천 강화군 강화 적석사
적석사는 1600여 년 전 고구려 때 창건된 전통사찰입니다. 절 뒤쪽으로 올라가서 있는 적석사 낙조대는 우리나라 3대 낙조 전망대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강화 10경’ 중의 하나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인근 가볼만한 곳 - 전등사, 보문사...
이날 접견에서 문 대통령은 “터키는 고대시대 고구려와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6·25전쟁 때 2만여 명의 군사를 파견해 한국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함께 피를 흘린 혈맹국이다”며 “6·25 전쟁에 함께해 주신 터키의 참전용사들과 터키 국민께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인사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양국은 지난 60년 동안 정치·경제·문화 등 다방면에서...
김춘추는 김유신과 함께 백제에 대한 원한을 갚을 것을 결의하고 647년에 고구려에 청병(請兵)을 하였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김춘추는 당태종에게 군사를 요청하여 신라와 당 사이에 군사연합이 이루어졌다. 후에 김유신이 백제와의 전쟁에서 크게 이기고는 사로잡은 백제 장군 8명과, 품석과 고타소랑의 뼈를 맞교환하였다.
고타소랑의 죽음은 신라 30대 문무왕...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으며, 취재진을 피해 식장 안으로 이동했는지 불참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편 조인성은 현재 강원도 고성에 머물며 영화 '안시성'을 촬영 중이다. 조인성은 극중 고구려 시대 안시성을 지키는 성주 '양만춘' 역을 맡았다. 조인성의 사극 출연은 영화 '쌍화점' 이후 9년 만으로, 조인성은 '쌍화점'을 통해 송중기와 인연을 맺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사경이 전해진 것은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372년께로, 17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문화예술이다.
허락 작가는 우연한 기회에 통도사가 소장하고 있는 보물 제757호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 제46권을 본 후 금사경에 대한 복원을 발원했다. 이후 오랜 연구 끝에 순금분과 접착제의 황금비율을 터득해 본격적으로 사경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매일 1800...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한반도의 패권을 치열하게 다투던 시기였다. 삼국은 특히 한강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접전을 벌였는데, 남한강 유역인 오늘날의 충주지역은 처음에는 백제가 차지했으나 고구려로 넘어갔다가 다시 신라로 주인이 바뀌는 등 격전지였다.
이 충주지역에서 12.4㎝ 크기의 광배(光背)가 있는 불상이 발견되었다. 원래는 세 명의 부처님이 있는...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김유신은 당과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신라를 승리로 이끈 주역이었다. 김춘추와 김유신의 연합이 공고할 수 있었던 것은 혼인동맹으로 맺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김춘추는 진골귀족임에도 불구하고 왕위에 오른 신라 중대의 첫 왕이다. 김춘추와 김유신은 이제 귀족 대 귀족이 아닌 왕실과 귀족으로서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고...
이들의 연대는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 당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결국 승리를 거머쥐게 되는 강력한 동력이었다. 그리고 김춘추는 진골귀족으로서 처음으로 왕위에 올랐다. 문희 역시 가야계 귀족으로서 처음으로 왕비가 되었다. 문희는 신라 중대의 첫 번째 왕후이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