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알려졌듯이 신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20여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이후 출소해 성공회대 사회과학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인물이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격동의 현대사 한복판에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행동했던 지식인으로 그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스테디셀러로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
그는 지난 수요일 삼성그룹 사장단에게 ‘사람과 삶’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삼성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이고 그 중심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모든 것을 기업과 조직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사람에게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그의 평소 생각이 전해졌을 것으로 본다.
신 교수의 ‘변방론’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는 인류문명사를 변방이 다음 시대의 중심이 되어온 역사로 보고 있다. 오리엔트 문명은 변방인 지중해의 그리스, 로마로 그 중심을 옮겨가고, 중국 역사 역시 고대의 주(周), 진(秦)에서부터 금(金), 원(元), 청(淸)에 이르기까지 변방이 차례로 중심부를 장악한 역사였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변방과 중심은 결코 공간적 의미가 아니며, 낡은 것에 대한 냉철한 각성과 그것으로부터의 과감한 결별이 변방성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변방이 창조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중심부에 대한 환상과 콤플렉스가 청산되지 않는 한 변방은 결코 새로운 창조공간이 될 수 없으며 중심부보다 더욱 완고한 아류(亞流)로 낙후될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기업에 적용해 보자. 기업 내부에서 중심은 꾸준한 이윤창출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조직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 더 빨리 팔아야 하고 더 빨리 벌어야 하며, 더 빨리 달성해야 한다. 당연히 기업 내부를 성찰하고 반성할 수 있는 새로운 생각과 시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특히 그것이 대를 이어 경영권을 물려주는 가족 기업이라면 변방의 새로운 생각을 고집스럽게 거부하거나 아예 차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인문학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이 늘어난다는 것은 매우 좋은 현상이다. 또 그 중심에 사람이 있다는 성찰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우려되는 건 남들이 하니깐, 상대 기업이 인문학 시험을 도입하니깐 하는 경쟁 중심의 사고다. 모든 학문이 그렇겠지만 인문학은 오랜 성찰과 고민,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흉내나 겉핥기는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일거리만 안겨줄 뿐이다. 기업 내에서 인문학이 유행처럼 왔다가 사라지지 않으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채용부터 충분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게 취업 과목 하나 더 늘어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지름길이고, 사람이 중심이 되는 변방에서 중심을 넘어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