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현장을 가다]청계산 자락에 위치한 석유 저장탱크…시작부터 고행길

입력 2013-12-2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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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에너지 서울물류센터·동방주유소…철저한 품질 검사로 신뢰 잡아

▲산업부 김유진 기자가 지난 12일 경기 과천시 주암동 SK에너지 서울물류센터에서 탱크로리에 기름을 싣는 로딩작업을 체험하고 있다(왼쪽 큰 사진). 이날 일일체험에서 완제품 샘플 검사, 송유관 육안검사, 수화 관리 자동화 시스템 작동(오른쪽 위부터) 등을 진행하고 있다. 방인권 기자 bink7119@

빠듯한 약속 시간 때문에 청계산 끝자락을 뛰어오른 탓인지 ‘쿵쾅쿵쾅’ 하며 심장의 두근거림이 거세졌다. 이어 눈앞에 SK에너지 서울물류센터가 모습을 나타냈다. 이곳은 ‘검은 혈액’인 석유 제품을 각 현장에 공급하는 ‘산업계의 심장’이다.

지난 12일 경기도 과천시 주암동에 위치한 SK에너지 서울물류센터를 방문했다. SK에너지 서울물류센터는 면적 14만3800㎡(4만3456평)로, 일일 6만 배럴 가량의 석유제품을 처리한다. 석유 제품을 최상의 품질로 각 주유소로 공급하고 혹여 불순물이 발견된 제품은 다시 정제시설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한다. 마치 심장이 깨끗한 피를 온몸에 흐르게 하는 동시에 노폐물을 실은 혈액을 폐로 순환시켜 다시 산소를 받아들이는 역할을 하듯이.

◇품질 최우선, 합격 제품만 각 처로 공급= “안전에는 관용이 없습니다.” 제품 특성상 한 번의 사고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는 탓에 석유 제품의 전 운송 과정을 체험하기에 앞서 철저한 안전교육을 받은 뒤 ‘일일사원’으로 작업에 투입됐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완제품 샘플 채취 작업이다. 제품 수하 관리는 모두 자동화돼 있지만 완제품의 품질을 채취, 검사하는 일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제품 표본 채취를 위해 저장탱크가 있는 곳까지 이동하는 길은 꽤나 가팔랐다. 청계산 자락에 위치한 시설이라 등산로를 오르듯 10분쯤 걸어야만 저장탱크 지역에 도착할 수 있다. SK에너지 서울물류센터는 전국 물류센터 중 유일하게 산악지역에 위치해 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기자에게 한동조 수하 반장(선임대리)은 “5분 내로 도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농담으로 여기는 기자를 향해 한 반장은 “지금은 아니지만 실제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탱크 시설까지 5분 내 도착은 필수”라고 말했다.

곧 암벽으로 둘러싸인 요새 같은 저장탱크 지역이 눈에 들어왔다. 휘발유, 경유 등이 담긴 7개의 거대한 탱크가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었다. 최대 10만 배럴의 제품을 저장한 탱크는 높이가 족히 수십 미터는 돼 보였다.

“샘플을 채취해 실험실에 품질을 의뢰, 합격을 받아야 제품 출하가 가능해요. 지금 저장탱크에 올라갈 겁니다.”

저장탱크에 오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철제 계단에 의지해 높은 곳을 올라가 아래를 보니 아찔했다. 탱크에 오르기 전 몸속 정전기를 땅으로 흘려보내도록 철제봉을 잡으라는 주의사항을 들었다. 봉을 잡지 않고 올라가 샘플을 채취하다가는 자칫 불이 붙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왠지 등골이 서늘해 다시 한번 봉을 꽉 잡았다.

저장탱크 꼭대기에 올라 문을 여니 마치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샘플 채취는 단지 위에 기름만 살짝 떠내는 것이 아니라 시료 채취 용기를 탱크의 밑바닥까지 내린 다음 끌어올려 전 층의 기름을 담는다.

채취한 샘플은 물류센터 내 ‘품질 서비스센터’로 이동해 총 6명의 품질 매니저로부터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 휘발유, 경유 등 제품에 따라 검사 기기에 달리 넣으면 품질 결과가 자동으로 나오는 방식이다. 이 시험을 통과한 제품만 출하된다.

특히 품질 서비스센터에서는 주유소에서 판매된 제품 중 가짜 기름을 분별하기 위해 표본을 가져와 검사하는 업무도 한다. 정승옥 SHE 담당(선임대리)은 “고품질의 제품을 공급해도 중간에 가짜와 섞이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이라고 말했다.

▲산업부 김유진 기자가 서울 강서구 등촌동 동방주유소에서 탱크로리의 기름을 주유소 내 저장소에 입고하는 하하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SK이노베이션

◇운송주유 관리까지 철저…‘가짜 석유’ 근절= “로딩암(Loading Arm)을 깊숙이 넣으세요.”

합격 통보를 받은 제품을 탱크로리(수송차량)에 넣고 주유소로 운송하는 작업에 나섰다. 2만ℓ 용량 탱크로리 위에 올라가 유창을 열고 로딩암을 집어넣은 뒤 버튼을 누르자 기름이 자동으로 콸콸 쏟아져 나왔다. 세차게 흔들리는 로딩암을 붙잡고 고정하고 있자니 기름 냄새에 코가 찡하게 아렸다. 연신 코를 찡긋대는 기자를 향해 정순석 탱크로리 기사가 말을 건넸다. “기름 냄새가 심하죠? 20년 넘게 작업해도 기름 냄새는 적응이 잘 안 된다니까요.”

작업을 완료하고 탱크로리에 동승했다. 목적지는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위치한 동방주유소. 탱크로리에 올라타자 이상하게 생긴 기계가 눈에 띈다. 운전석에 올라탄 정 기사는 “그건 위성항법장치(GPS)다”고 설명했다.

SK에너지는 업계 최초로 ‘전자봉인시스템(e-TOMS)’을 도입하면서 각 탱크로리에 GPS를 장착했다. 전자봉인시스템은 탱크로리의 밸브에 센서를 부착, GPS를 통해 출하부터 입고 단계까지 운송의 모든 과정을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제품 운송 차량의 위치와 제품의 공급 상황, 밸브 개폐 등이 차량관제시스템으로 전송돼 절취, 가짜석유 혼합 등의 비정상적 행위가 실시간으로 파악된다.

정 기사는 물류센터를 나가기 전 카드를 찍어 전표를 받았다. 그는 “들어올 때는 지문 인식으로 신원을 증명하고, 기름을 싣고 나갈 때 카드를 찍어 어떤 기름을 어디로 가져가는지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탱크로리 기사로 차량의 움직임이 추적되고 있다는 점이 불편하진 않을까. 정 기사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답했다. 그는 “과거에는 기름을 빼돌리거나 가짜 석유를 섞었다는 오해를 받을까 불편한 점이 있었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에는 지문 확인이 없어 사정이 생길 경우 다른 사람한테 운전을 맡기곤 했으나 지금은 철저한 본인 확인과 운송 관리가 있으니 고객들은 신뢰가 더 갈 것”이라며 “다만 불편한 점은 기름을 실은 채 중간에 정차하면 바로 기록되기 때문에 밥을 먹기가 힘들다는 것”이라며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보여줬다.

등촌동 부근에 오자 해당 주유소를 잘 찾아보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 ‘동방’이라는 두 글자를 찾았다.

탱크로리가 도착하자 주유소 직원이 부리나케 뛰어온다. 하하(荷下) 작업의 시작이다. 주유소 직원은 전표를 통해 유종과 물량을 확인했다. 이후 봉인시스템을 해제한 후 탱크 내 밸브를 개폐하고 저장소에 입고를 시작했다. 이 작업은 로딩작업보다 3배 이상 긴 시간이 소요됐다.

주유소 직원이 건넨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차량 주유에도 도전했다. 주유구에 주유기를 꼽고 금액을 입력, 시작 버튼을 누르자 기름이 들어간다. 특히 이곳은 투명 주유기를 적용해 주유를 하는 동안 어떤 기름이 들어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동방주유소 직원은 “투명 주유기로 인한 직접적 매출 상승 효과는 없지만 기름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신뢰가 간다고 말하는 손님들도 많다”며 “고객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20여 분이 지난 뒤 하하작업이 마무리됐다. 탱크로리는 다음 운송을 위해 다시 물류센터로 향했다.

“냉철한 두뇌와 뜨거운 심장을 지녀야 한다”고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이 말했던가. SK에너지 석유제품 공정의 ‘심장’ 물류센터는 뜨겁기보다 차가웠다. ‘냉정한’ 고객의 신뢰를 얻기 위해 ‘냉철한’ 석유 품질 검사와 운송을 택했다. 함박눈 사이로 사라지는 탱크로리의 ‘차가운 심장’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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