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현장을 가다]영창뮤직 인천 공장… 피아노 줄 하나에 ‘쩔쩔’

입력 2013-12-1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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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의 오차도 허용 않는 장인 틈새에 ‘식은 땀’

▲산업부 서지희 기자가 지난 3일 인천 서구 가좌동 영창뮤직 피아노 제조공장에서 일일사원으로 작업하고 있다. ?피아노 현은 튜닝핀에 꿴 후 왼손에 튜닝해머를 잡고 튜닝핀을 시계방향으로 돌려 고정시킨다. ?영창뮤직 한 직원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최종 점검을 하고 있다. ?피아노 건반 높이 작업을 위해 건반 아래에 종이펀칭을 끼워 간극을 조절한다. 노진환 기자 myfixer@

“허허허~ 생각보다 힘드시죠?”

튜닝핀에 피아노 현을 힘들게 꿰고 있는 기자에게 곁에서 지켜보던 백명승(50) 차장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피아노 제작 공정을 체험하기 위해 목장갑을 자신 있게 낀 지 20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지난 3일 오후 인천 가좌동 목재단지에 위치한 영창뮤직 공장을 찾았다. 이곳은 국내에 마지막으로 남은 피아노 제조시설이다. ‘맑은 소리 고운 소리, 영창피아노 영창’, 어릴 적 따라 불렀던 TV광고 로고송도 흥얼거렸다.

그러나 공장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설렘은 긴장감으로 바뀌었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수천개 부품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귀를 기울이는 숙련공들의 모습에서 ‘장인’의 모습을 엿봤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맞먹는 8000여개의 부품, 약 17톤을 버틸 수 있는 240개의 현을 능숙하게 다루는 장인들 틈새에서 기자는 아랫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서지희 기자(오른쪽)가 영창뮤직 직원들과 함께 융폴리셔 기계를 사용해 그랜드 피아노의 도장작업을 하고 있다. 노진환 기자 myfixer@

◇‘0.08㎜·0.7㎜·2㎜…’ 작은 차이가 소리 좌우해= 피아노 제작은 ‘밀리미터(㎜)’ 단위와의 싸움이다. 0.01㎜의 차이가 소리의 높낮이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튜닝핀에 피아노 현을 꿰는 첫 번째 체험을 겨우 마치고 허리를 펴는 순간 백 차장이 어디선가 얇고 긴 나무판을 가져왔다. “어디에 쓰는 물건이에요?”라는 기자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선공정을 마친 피아노 건반들 위로 기다란 나무판이 올려졌다.

0.01㎜와의 전쟁인 ‘건반 깊이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건반 깊이 작업은 연주자가 건반을 누를 때 최고의 터치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말 그대로 건반의 높이를 조절하는 과정이다.

공식적 피아노 건반 깊이는 10.2㎜. 백 차장은 기자에게 핀셋을 건네고 옛 버스 토큰처럼 생긴 ‘종이펀칭’을 준비했다. 작업은 간단했다. 나무판과 피아노 건반 사이의 폭을 일정하게 해 건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흔들거리는 의자 다리 밑에 신문지를 접어 받치듯 종이펀칭을 건반 밑에 끼우면 되는 작업이다.

‘피아노 현을 감을 때보다 힘을 쓰지 않으니 조금은 수월하겠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핀셋으로 종이펀칭을 고르려는 순간 멈칫했다. 0.08㎜, 0.18㎜, 0.7㎜…. 종이펀칭들이 0.01㎜ 단위로 세분화돼 있었기 때문이다. 육안으로는 종이펀칭들의 두께 차이를 전혀 구분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건반에 어떤 두께를 끼워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당황한 모습을 엿봤는지 백 차장은 “걱정 마세요. 나중에 우리가 다시 작업을 할 겁니다”고 말했다. 뒷수습(?)을 하겠다는 33년차 베테랑 백 차장의 응원을 뒤로하고 그나마 가장 두꺼운 0.7㎜짜리 종이펀칭을 핀셋으로 집은 후 건반 아래에 끼웠다.

백 차장은 “건반이 조금 높아졌죠? 건반이 깊으면 어두운 소리가 나고, 얕으면 밝은 소리가 나요”라고 설명했지만 그 차이는 일반인이 포착할 수 있는 차이가 아니었다. 힘을 쓰지 않아 쉬운 작업이란 생각은 어리석었다.

집중력과 세밀함이 필요한 작업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해머 접근, 해머 스톱 작업도 ‘밀리미터’와의 전쟁이었다. 우선 건반과 연결된 ‘백체크’를 앞뒤로 당기면서 높이를 조절한다. 앞으로 당기면 해머와 현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반대로 밀면 멀어진다. 해머 접근은 연주자가 건반을 느리게 눌렀을 때 해머가 현에 접촉하기 직전 거리를 말한다. 해머와 현의 간격은 저음 2.5㎜, 중음 2㎜, 고음 1.5㎜를 각각 유지해야 한다. 해머 스톱 거리는 건반을 눌렸을 때 해머가 현에서 접촉한 후 이탈해 정지되는 폭이다. 저음은 14㎜, 고음과 중음은 각각 13㎜다.

‘도레미파솔라시도’. 0.1㎜ 차이를 간파해야 하는 피아노 작업. 두 시간 만에 기자의 눈은 충혈됐다.

◇기술자 평균 연령 40대…“후배 양성해야 하는데…”= “악기산업이 꾸준히 성장했다면 후배들도 키우는데, 시장이 침체되다 보니 그럴 여력이 안 돼 안타까울 뿐이죠.”

도장작업 체험을 준비하고 있는 기자에게 이날 함께 묵묵히 동행했던 남상원(49) 설계담당 부장이 이같이 말했다. 이곳 피아노 공장 근로자들의 평균 연령대는 40대. 그러고 보니 이날 기자에게 기술을 가르쳐준 장인들의 경력은 모두 25년을 훌쩍 넘었다. 내장작업을 맡은 백명승 차장 33년, 도장작업 박일수(45) 엔지니어 28년, 제품 최종 검사를 맡은 유광호(49) 차장 27년, 남상원 부장도 영창뮤직에서 27년의 세월을 보냈다.

피아노에 광을 내기 위해 융폴리셔 기계를 힘껏 들며 시범을 보인 박일수 엔지니어도 후배 양성에 대한 안타까움을 털어놨다. “요새 젊은층이 기술을 안 배우려고 하죠. 어려우니깐….”

과거 피아노산업이 활황기였을 때 영창뮤직은 월 1만 대의 피아노를 생산했다. 그러나 지금은 월 200~300대 수준으로 생산량이 감소했다. 20여년 전 5500명에 달했던 직원 수도 현재는 1100명 남짓에 불과하다.

그중 영창뮤직 피아노 공장은 30명의 장인이 지키고 있다. 피아노에 대한 자부심이 영창뮤직 피아노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출고 전 최종 검사에서 억원대 그랜드 피아노에 색연필로 과감히 불량을 표시했던 유광호 차장은 피아노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피아노는 목재로 만들기 때문에 자동차보다 제작하기 힘듭니다. 8000여개의 부품으로 이뤄지는 점은 비슷하지만 피아노는 시간이 경과하면서 변형율이 높고 그에 따라 소리도 바뀌기 때문이죠. 피아노가 사양산업이라 힘들다고들 말하지만 영창뮤직 피아노가 명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현장체험을 마치고 나오며 공장을 뒤돌아봤다. 올곧게 뻗은 피아노의 현처럼,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에 대한 그들의 고집이 계속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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