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시간제 일자리 '숫자놀음'- 한지운 산업부장

입력 2013-12-0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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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감을 안고 갔지만 실망만 안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계약직이나 알바(아르바이트)와 뭐가 다른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얼마 전 만난 지인은 최근 10여개 주요 그룹이 참가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 박람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부인은 출산과 함께 직장을 떠난 지 15년이 지났다. 자녀들이 이제 충분히 성장한 만큼 사회 재취업을 희망했고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큰 기대를 걸었다고 한다. 마트 캐셔나 단순 보조사무직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충분히 살리며 사회에 재진출할 수 있는 큰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 그러나 박람회장을 찾은 그녀는 ‘그럼 그렇지’하는 씁쓸한 혼잣말과 함께 1시간여 후 박람회 문을 나섰다.

고용률 70%는 이번 정부의 중점 추진 사항이다. 좀처럼 60%대 초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내 고용률을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통해 일시에 해소하겠다는 생각이다. 특히 4대보험이나 복리후생 등 정규직과 대우가 동일한 것도 장점이다. 정부는 2017년까지 시간선택제 일자리 93만개를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지난달 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시간선택제 채용 박람회는 국내 주요 그룹이 참가한 행사임에도 1만여개 일자리 대부분이 과거 계약직과 다를 바 없었다. 업무도 단순 사무보조나 현장 판매사원 등을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상당수 기업은 2년 계약 후 연장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는 2년 채용 후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현행 비 정규직법을 피하기 위한 방책이다.

그렇다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 것을 기업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사실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전형적인 정부 주도의 일자리 창출 방안이다. 각 기업들은 허겁지겁 안을 만들기에 바빴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도입을 위한 종합적인 인력·업무 수요 파악, 생산성 증가 타당성 검토, 기존 정규직과의 노노 갈등 등 다양한 사안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각 사업부별로 어떤 일거리를 만들 수 있는지 파악한 뒤 인원수를 정해 서둘러 발표한 게 현실이다.

이는 개인에게는 노동의 질, 기업에게는 생산성 증가와 같은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몰고 올 파생효과에 대한 고심보다는 ‘○○그룹은 몇명, △△그룹은 몇명’ 식의 규모 맞추기에 정부의 관심이 집중된 탓이다.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이름만 달라진 계약직’ 또는 ‘4대보험 되는 알바’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정부의 시각을 바꿔야 한다. 국내 고용의 80% 이상은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중견기업들이 맡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을 통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의 효과는 ‘보여주기’ 외에는 실제 체감할 정도의 고용창출 효과가 크지 않다. 특히 대기업의 인력채용 확대는 상당 부분 한계가 있다. 대기업의 주력사업은 지난 20년간 급격히 성장했고 주력사업에 대한 인적·시설투자를 이미 끝냈다. 게다가 글로벌 경기가 아직도 불확실한 만큼 폭발적인 시장 확대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고용의 대다수를 책임지고 있는 중소·중견기업에서 고용창출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창조경제’라는 똑 부러지게 정의되지 않는 어젠다에 매몰되기보다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분야의 육성과 창업을 적극 지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용을 자연스럽게 늘리는 방안에 집중해야 한다.

온라인 게임 같은 분야가 바로 고용창출을 책임질 수 있는 대표적인 신성장동력이다. 온라인 게임은 올해 10조7183억원 규모로 성장해 처음 10조원대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게임산업의 수출 규모는 26억 달러로, 한류 확산의 주역인 K팝보다 12배나 많다. 그러나 정부는 독려가 아니라 끝없는 규제를 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는 해외로 본사를 옮기는 ‘엑소더스’까지 거론되는 실정이다. 만들어져 있는 판도 부순다면 고용창출은 어디서 일어날 수 있을지 자문할 때다.

고용창출 대상에 대한 시각 전환이 일어난다면 고용의 질도 자연스럽게 올라오게 된다. 급조된 ‘정부 주도형 알바’를 더 이상 양산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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