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디자인을 입다]꼭꼭 숨겨라… 007 방불케 하는 ‘디자인 철통보안’

입력 2013-10-1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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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위장막으로 가리고… 휴대폰, 더미박스에 감추고…

디자인, 특히 산업디자인은 기업의 향방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요소로 성장했다.

단순히 보기에 좋은 디자인은 예술품이다. 그러나 이런 예술적 디자인을 시작으로 기능성과 내구성 그리고 이를 사용하는 고객의 감성까지 영향력을 넓힌 것이 산업디자인이다. 좋은 디자인은 기업이 만든 소비재의 성패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열쇠로 발전했다.

자동차와 휴대폰은 산업디자인 가운데 가장 경쟁이 치열한 분야다. 자동차 디자인은 멋스러움과 기능성, 나아가 안전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합체다. 휴대폰 역시 사람의 몸에 직접 맞닿고 디자인에 따라 판매가 좌우되는 만큼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산업디자인은 기업이 개발한 소비재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열쇠 가운데 하나다. 자동차의 경우 신차 출시를 앞두고 갖가지 위장술로 디자인을 감추는 등 디자인 보안에 나선다. 위장 래핑(Wrapping)으로 겉모습을 감춘 현대차 i20 WRC 랠리카가 테스트에 나서고 있다. (사진제공 뉴스프레스)

◇땀냄새 진동하는 내구성 실험차= “이 차량은 자사의 연구개발을 목적으로 운행 중입니다. 이를 촬영 후 인터넷 등에 유포할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거리에서 종종 보게 되는 연구개발 차량에 붙어 있는 문구다. 자동차 디자인의 지적재산권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값어치를 지닌다. 때문에 자동차 회사는 철저한 보안 속에 디자인을 감추고 또 감춘다.

5년 안팎의 개발 기간이 소요되는 자동차는 개발 중간단계에서 실험용 차를 직접 제작한다. 양산을 앞두고 실제 차량을 제작해 운행하면서 보완점을 찾는 게 주목적이다. 실험실에서 몰랐던 부분을 실제 도로를 달리면서 발견하고 보완하기도 한다.

이런 실험용 차량을 ‘파일럿카(Pilot Car)’라고 부른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이때부터 P1, P2, PP단계의 실험차가 순차적으로 나온다. 파일럿1과 파일럿2, 마지막으로 양산 직전단계인 ‘프리 프로덕트’실험차라는 뜻이다. 위장막을 쓴 차량은 마지막 단계인 프리 프로덕트다. 디자인과 옵션, 편의장비 등이 대부분 양산차에 상당히 접근한 상태이기 때문에 보안이 더 철저하다.

때문에 이 과정에서 디자인 유출을 막는 게 관건이다. 이를 위해 가죽 등으로 만든 가림막으로 차의 중요한 디자인을 철저하게 가린다.

개발 막바지에 보안이 철저해지는 이유는 경쟁사의 디자인 모방과 출시 때 신차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자동차 디자이너의 경우 ‘퇴근 이후에 함부로 자동차 그림을 그려서도 안 된다’는 서약을 받는다. 한마디로 어린 조카에게 자동차 그림을 그려 주는 것도 규정 위반이다.

하물며 이런 실험차를 일반인이 접하기는 매우 힘들다. 다만 자동차 전문기자의 경우 종종 기사를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위장막 속 신차를 경험하기도 한다. 대부분 연구소 실험 트랙에서 이뤄지는 매우 짧은 시승이다.

언뜻 단단하게 고정돼 있을 듯한 위장막은 고속 주행 때 바람이 들이치면서 미친 듯이 펄럭이기도 한다. 이를 막기 위해 위장막 끝부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두꺼운 플라스틱을 덧대는 등 무게를 추가한다.

특이한 실험차도 있다. 내구성을 점검하기 위해 논스톱으로 5만km를 달린 경우다. 시동 한 번 끄지 않고 연구원들이 교대로 운전하며 내구성을 점검한 차다. 차 안에서는 땀냄새가 진동한다. 자동차 회사 연구원들의 이런 땀방울 하나하나가 모여 좀더 안전하고 편안한 그리고 멋진 디자인의 자동차가 세상에 나오는 셈이다.

▲스마트폰 디자인을 감추기 위한 더미 박스는 화면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평범한 케이스로 감싸고 있다. 디자인 유출을 막기 위한 방법이다. 사진은 더미 박스로 감싼 모토로라 스마트폰의 모습. (사진=더 버지)

◇휴대폰 연구원 “혹시 ‘도시락통’을 아세요?”= 휴대폰 디자인 역시 극도의 보안 속에 탄생한다.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만큼 디자인의 작은 변화 하나가 내구성과 기능성을 좌우한다. 여기에 손에 직접 맞닿는 제품이다 보니 감성 품질도 중요하다. 철통 같은 디자인 보안은 필수다.

휴대폰 연구원들은 개발 중인 휴대폰의 외형을 가린 이른바 ‘도시락통(또는 도시락 보드)’으로 불리는 제품으로 개발을 진행한다. 디스플레이와 프로세서, 기타 부품은 동일하지만 전체적인 모양새와 디자인은 단순한 네모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더미(Dummy) 박스 또는 더미 보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구원들은 최종 디자인이 선정되기 전까지 개발 중인 휴대폰을 이런 더미 박스에 감추고 테스트를 진행한다. 다시 말해 연구원들도 디자인 부서가 아니면 제품의 모양이나 재질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사전 유출을 원천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새 제품의 최종 디자인(렌더링)이 나오면 이때부터는 이른바 목-업(Mock-up) 제품을 만든다. 이름 그대로 양산품과 거의 흡사한 상태로 이를 통해 최종 디자인을 점검한다. 크기와 무게는 물론 손으로 느끼는 질감까지 양산품과 똑같다.

이렇게 개발 중인 목업 휴대폰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디자인적 요소를 점검하기 위해 제작한 제품을 ‘더미 목업’이라 부른다. 실제로 버튼을 누르고 기능적인 면을 실험하는 제품은 ‘워킹 목업’이라고 부른다.

이렇듯 독창적인 디자인은 기업이 소유한 지적재산권 가운데 하나다. 디자인을 다른 기업에 넘기고 일정 수준의 로열티를 받는 것도 모두 재산권 행사다. 사람의 머리에서 짜낸 아이디어지만 제대로 건진 디자인 하나는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철저한 보안 속에서 디자인을 짜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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