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한국은행을 홀로 서게 하라

입력 2013-04-16 10:35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전 청와대 정책실장

▲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전 청와대 정책실장
참여정부 시절, 정부는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중히 여겼다. 물론 완벽하게 지켜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독립성에 대해서는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관계설정 또한 대체로 그렇게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대통령부터 수시로 환율이나 금리문제를 언급했다. 때로 그 결정권이 정부에 있나 착각을 할 정도였다. 그러더니 기획재정부 차관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 참석하게 하였고, 나중에는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인사를 한국은행 총재로 임명하기도 했다. 독립성이 살아날 여지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주 눈에 띄는 일이 일어났다. 새 정부 출범 이후의 첫 금통위가 정부의 금리인하 기대를 외면한 채 금리동결을 결정한 것이다. 결정에 앞서 한국은행 총재는 외부의 압박은 변수가 될 수 없다는 등, 그 독립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를 지켜보는 기분이 좀 그렇다. 우선 이 한 건을 두고 마치 독립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 온 것처럼 행세하는 게 보기 안쓰럽다. 그리고 또 하나, 이게 얼마나 갈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한국은행의 독립성은 대통령의 의지에 달려 있다. 총재와 금통위원에 대한 임명권부터 대통령이 가지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아직 청와대나 내각이 이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 금리동결에 대한 불만만 전해지고 있다. 한국은행으로서는 몸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결정을 한 후 바로 한국은행 스스로 정부와의 정책 공조를 강조하고 나섰다. 뭐가 그리 달라지겠나?

한국은행의 독립성이 중요한 것은 물가관리라는 교과서적 기능 때문만이 아니다. 5년 단임의 정부로서는 환율과 금리를 활용하고 싶은 유혹이 크다. 미시 산업정책이나 사회정책이 효과를 나타내는 데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데 비해, 환율과 금리 등은 바로 시장이 움직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도하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 이를 경계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만 해도 그렇다. 수출 확대를 통한 단기적 성장을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자연히 고환율을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삼았고 한국은행은 이를 받쳐주었다. 그 결과 수출 기업들은 덕을 봤다. 하지만 이들이 얻은 이익은 사회 전체로 퍼지지 않았고, 내수확대나 고용창출로 연결되지도 않았다. 산업구조를 미래형으로 바꾼 것은 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수입물가의 상승으로 서민생활이 어려워지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화되는 등, 지속성장의 기반이 훼손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모두 다 같이 힘들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물가관리라는 고유기능에 더 충실했더라면, 그래서 환율에 대해 보다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소 어려운 환율 구조 속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구조 속에서 대기업들은 기술혁신에 더 매진하고, 한계기업은 새로운 사업을 찾아 나서고, 노조 역시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립하는 쪽으로 움직이지 않았을까? 정부 또한 이런 노력들을 지원하기 위해 미시 산업정책과 사회정책 등에 더 큰 신경을 쓰게 되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그렇다. 금리동결에 대한 불만 속에는 몇 가지 전통적인 정책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엿보인다. 재정정책을 통해 돈을 풀고, 금리를 내리고, 그리고 부동산 시장을 살리고…

그러나 성장이 되어도 고용이 늘지 않는 세상이다. 경기가 활성화되어도 그 열기가 밑으로 잘 내려가지 않는다. 시장변화에 대한 기업과 투자자의 불안 역시 여전히 크다. 이런 상황에 늘 써 오던 이런 정책들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내어 놓은 부동산 대책만 해도 특정지역의 재개발 수요 등 제한된 부분에만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금리인하라 하여 교과서적으로 작동한다는 보장이 있을까?

이번 기회에 고민을 더 하라. 그리고 보다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라. 남이 가진 정책수단을 내 것처럼 쓰겠다는 생각도 버려라. 앞서 가는 모든 국가들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이다. 누를 수 있다고 함부로 내리 누르지 마라.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민희진 "음반 밀어내기 권유 사실…하이브에 화해 제안했다"
  • "제발 재입고 좀 해주세요"…이 갈고 컴백한 에스파, '머글'까지 홀린 비결 [솔드아웃]
  • 부산 마트 부탄가스 연쇄 폭발…불기둥·검은 연기 치솟은 현장 모습
  • "'딸깍' 한 번에 노래가 만들어진다"…AI 이용하면 나도 스타 싱어송라이터? [Z탐사대]
  • BBQ, 치킨 가격 인상 또 5일 늦춰…정부 요청에 순응
  • 트럼프 형사재판 배심원단, 34개 혐의 유죄 평결...美 전직 최초
  • “이게 제대로 된 정부냐, 군부독재 방불케 해”…의협 촛불집회 열어 [가보니]
  • 비트코인, '마운트곡스發' 카운트다운 압력 이겨내며 일시 반등…매크로 국면 돌입 [Bit코인]
  • 오늘의 상승종목

  • 05.31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4,799,000
    • +0.5%
    • 이더리움
    • 5,338,000
    • +1.62%
    • 비트코인 캐시
    • 648,000
    • +1.73%
    • 리플
    • 726
    • +0.14%
    • 솔라나
    • 232,500
    • +0.22%
    • 에이다
    • 631
    • +0.8%
    • 이오스
    • 1,135
    • -0.18%
    • 트론
    • 158
    • +1.28%
    • 스텔라루멘
    • 149
    • +0%
    • 비트코인에스브이
    • 85,250
    • -0.99%
    • 체인링크
    • 25,730
    • -0.31%
    • 샌드박스
    • 613
    • +1.32%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