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에 빠진 한국사회

입력 2013-01-1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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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서 시작… 영화 흥행 행진 "작품성 통했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
법 앞에서 죄인일지는 몰라도 신 앞에선 떳떳했던 남자. 죄인에서 성인으로 숭고하게 생을 마감한 장발장의 이야기를 다룬 ‘레미제라블’이 문화계를 강타하고 있다. 뮤지컬, 연극, 영화에서의 흥행 열풍은 도서, OST 시장 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히‘레미제라블 신드롬’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하순부터 뜨거워지기 시작한 레미제라블 신드롬은 2013년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일반적으로 서울 수도권에 비해 공연 좌석 점유율이 떨어진다는 지방 공연에서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이례적으로 흥행 호조를 보이고 있다. 뮤지컬 영화라는 낯선 장르도 ‘영화 레미제라블’의 흥행가도에 장애 요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하루에만 전국에서 평일 평균 7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고, 4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연극 레미제라블’ 역시 최근 막을 내린 서울 공연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50대 배우들로 구성된, 화려함과는 동떨어진 캐스팅이었지만 600여석 규모의 아르코예술극장(서울 종로구 소재)이 평균 75%에 달하는 점유율을 보였다는 게 기획사 측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레미제라블 신드롬을 대한민국의 사회상과 연결짓기도 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레미제라블’의 내용이 사회의 양극화, 경제 민주화를 외치는 사회상과 소재적인 부분에서 맞닿아 있다. 무조건적인 시대상의 반영으로 해석할 수는 없지만 이에 공감하는 관객 혹은 독자들이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 역시 비슷한 의견이다. “‘레미제라블’을 통해 개인적으로 힐링 효과를 본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같은 설명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단순히 대선 결과와 레미제라블 신드롬을 연계시키려는 일부 정치권에서의 해석에는 부정적이라고 덧붙였다. “‘레미제라블’의 이 같은 기능을 확대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흥행 성공의 기본적인 배경은 우선적으로 뛰어난 작품성에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연극 ‘레미제라블’은 서울 공연을 끝내고 장소를 바꿔 충북 청주 예술의 전당에서 2월 23일 다시 막이 오른다. 뮤지컬은 현재 대구 공연이 진행 중이고, 2월 부산 공연 뒤 4월에 서울에서 다시 막을 올린다. 영화는 현재 전국에서 상영 중이다. 대중문화를 소비하거나 수용, 혹은 해석하는 방식은 저마다 차이가 있다. 획일적인 의견이나 의미해독 강요는 대중문화 텍스트와 레미제라블 신드롬의 본질을 놓칠 수 있게 한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
◇뮤지컬 레미제라블

‘레미제라블 신드롬’의 선두주자는 바로 뮤지컬이다. 정성화와 조정은 주연의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지난해 11월 3일 경기 용인 포은아트홀에서 막을 올렸다. 영화가 지난 12월 18일 개봉됐고 하루 뒤에 연극이 막을 올리며 비슷한 시기에 팬들 앞으로 다가온 반면 뮤지컬이 팬들에게 공개된 것은 조금 빨랐다. 뮤지컬이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레미제라블 초반 열풍의 진원지였던 셈이다. 주인공 정성화를 비롯한 배우들의 호연과 200억원의 제작비가 들었다는 큰 스케일도 화제를 모았다. 포은아트홀 공연 당시 관객 점유율은 90%를 넘어설 정도로 레미제라블을 사회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연기자 정성화는 뛰어난 연기력과 가창력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이미 ‘맨오브라만차’, ‘영웅’ 등을 통해 주요 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던 그였기에 레미제라블의 주연으로도 부족함이나 불안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정성화 역시 “개그맨 출신이라도 뮤지컬 배우로 좋은 공연을 보여줄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연극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
◇연극 레미제라블

연극‘레미제라블’의 흥행 성공은 의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스타 캐스팅이 일반화한 최근 공연계에서 스타에 의존하지 않은 50대 배우들로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다. 서울 아르코예술극장에서의 공연 당시 제작·감독을 맡았던 반진수 프로듀서 역시 “영화와 뮤지컬을 접한 관객들이 제2, 제3의 레미제라블에 대한 관심을 갖던 차에 자연스럽게 극장으로도 발길이 이어진 것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반 프로듀서는 하지만 ‘연극 레미제라블’ 흥행 성공의 첫 번째 요인을 사회상의 반영보다는 ‘레미제라블’만이 갖는 문학성과 작품성으로 분석했다. “연극 시장이 상대적으로 침체됐고, 그에 따라 희곡작가 또한 줄어 마땅히 무대에 올릴 창작극이 없었다. 나이든 배우들을 중심으로 본연의 연극다운 연극을 하자는 열망은 높았지만 작품 선정에 한계가 있었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높은 작품성을 가진 극으로 눈을 돌렸다”라고 ‘레미제라블’의 선택 배경을 밝혔다. 이미 2011년에도 무대에 올렸던 ‘레미제라블’이지만 완성도를 높여 지난 연말 다시 한번 무대에 올린 것이 주효했다는 스스로의 평가다.

◇영화 레미제라블

다양한 장르에 걸쳐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레미제라블 신드롬’의 진원지는 영화다. 개봉 3주 만에 400만명을 돌파했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 분석도 다양하다.

영화 자체의 높은 완성도가 흥행의 원인 중 하나다. 정명호(34)씨는 “거대한 스케일(규모)의 뮤지컬을 본 것 같다”며 압도적인 웅장함을 영화의 장점으로 꼽았다. 이어 “배우들의 노래 실력과 공연장에서 맛볼 수 있는 현장감을 생생하게 느낄수 있는 것도 좋았다”고 말했다. 작품 완성도 면에서 뛰어났고 뮤지컬 영화답게 음악적 완성도에 충실했다는 지적이다.

2012년을 선도했던 키워드 ‘힐링’의 측면에서 볼 수도 있다. ‘레미제라블’의 마케팅을 담당한 레몬트리의 박주석 실장은 “힐링 메시지와 관련해 문의를 자주 받지만, 의도한 바는 아니다”며 뜻하지 않은 반응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어 “현실 세태에 대한 처지에 대해 동일시하는 등 마음의 정화를 느꼈다는 적지 않은 분들의 이야기가 들려오긴 한다”고 답했다.

150년 전에 사회를 비탄에 잠기게 했던 인간성에 대한 결핍과 빈곤, 불의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현실에 답이 있다. 그 시대의 어려운 이웃과 절망에 빠진 청년들의 상황을 현실의 독자들이 동일시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작품 자체가 재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관객 황수정(19)양은 “원래 뮤지컬을 좋아했었다. 뮤지컬 영화라는 점에서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의 노래 실력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홍희수(19)양은 “대세라는 소문을 듣고 봤는데 재밌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도서 레미제라블

소설 ‘레미제라블(정기수 역·민음사)’은 지난해 11월 3일 뮤지컬 ‘레미제라블’ 개막과 같은 날 출간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두 달 만에 10만 부라는 판매량이 이를 잘 말해준다. 원작 소설 ‘레미제라블’이 가진 독보적인 매력은 무엇일까. 영화·뮤지컬·연극은 시·공간적 제약을 숙명처럼 지녔다. 영화나 뮤지컬을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원작 소설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또 감동의 여운을 계속 이어가고자 하는 욕구도 솟구친다.

민음사 홍보기획팀장 김수진씨는 “영화에서 전달하지 못한 방대한 메시지를 알기 위해 자연스럽게 소설을 찾게 된다”고 2차 소비 현상을 설명했다.

역자 정기수 교수는 “뮤지컬이나 영화를 보고 감동했다고 해서 ‘레미제라블’을 온전히 이해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나의 재미있는 옛날이야기에 불과하며 원작을 읽지 않고서는 완벽한 서사 구조를 파악하거나 작가의 숨은 뜻과 작품 곳곳에 배치된 상징들을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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