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곤의 企와 經]삼성가의 사도세자?

입력 2012-05-1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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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곤 산업부 팀장

조선시대 왕권을 둘러싼 암투는 여전히 소설과 사극의 주요 소재다. 음모와 반전이 거듭되는 스토리 전개는 보는 이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범인들은 감히 근접조차 할 수 없는 궁궐 내 그들 만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것 또한 빠뜨릴 수 없는 재미다.

왕조 시대가 과거의 역사가 돼버린 지금은 재벌가의 후계구도가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종종 조선왕조의 그것과 너무도 유사하다는 데에 놀란다.

특히 장자가 아닌 3남이 경영권을 이어받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세종의 등극에 곧잘 비유된다. 이건희 회장을 세종, 즉 충녕대군에 비유했다면 장자였던 이맹희씨는 당연히 태종의 장자였던 양녕대군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동안 재계에서는 ‘이맹희=양녕대군’이라는 등식이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 출간된 이용우 전 중앙일보 영남총국장의 논픽션 ‘삼성가의 사도세자 이맹희’는 이같은 등식을 뒤집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맹희씨를 양녕대군이 아니라 사도세자에 비유한 것이다.

양녕대군과 사도세자의 차이는 극명하다.

10세 때 세자로 책봉된 양녕대군은 자유분방한 성품으로 유교적 교육과 엄격한 궁중생활, 그리고 왕세자로서의 예의법도에 적응하지 못해 태종의 눈밖에 났고, 결국 폐세자되어 일생을 풍류객으로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반면 사도세자는 붕당 싸움에 희생된 대표적인 왕세자다. 10세 때 이미 정치에 대한 안목이 생겨 집권 세력인 노론이 주도한 신임사화를 비판하기도 했다. 성장하면서 줄곧 노론과 갈등을 빚었던 사도세자는 김한구, 홍계희 등 노론의 이간질에 영조의 분노를 샀고 결국 뒤주에 갇혀 죽고 말았다.

양녕대군이 개인 성품에 문제가 있어 왕위계승권을 물려받지 못한 반면 사도세자는 권력을 장악한 반대파에 의해 제거당한 것이다.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은퇴 선언 이후 7년 간 경영 전면에 나섰던 이맹희씨의 경우는 과연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이용우씨는 “이맹희씨를 정신병자로 몰아 격리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며 사도세자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이맹희씨가 창업공신이나 경륜 많은 임원들에게 쓴소리를 자주 하면서 불만이 쌓인 그들이 이병철 회장에게 왜곡된 사실을 전달했고, 이로 인해 부자 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또 그 이면에는 장자 승계 원칙을 깨고 막내 건희를 옹립하려는 홍진기 당시 중앙일보 회장 등 가신그룹의 음모 때문이라는 설도 나돌았다고 이용우씨는 전했다.

알려진 것처럼 이맹희씨가 무능해 그룹 경영권을 승계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던 고위 임원들과 이건희 회장 옹립그룹에 의해 희생된 비운의 후계자였다는 것이다.

이맹희씨의 퇴출이 양녕대군과 사도세자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 지, 진실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다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들 형제 간 상속 소송의 뿌리가 이맹희씨에 대한 엇갈린 평가와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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