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들의 흥망] 묵묵히 일하고…욕심도 부리고…‘차남’들의 인생사

입력 2012-03-12 10:21 수정 2012-03-1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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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세대의 2인자 ‘아우’들의 빛과 그림자

▲고 정세영 회장은 1987년 고 정주영 회장이 16년간 누려온 현대그룹 및 현대자동차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1인자의 기쁨도 잠시. 1988년 그룹의 경영권은 조카인 정몽구 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에게 넘어갔다. 사진은 포니를 타고 있는 고 정세영 회장.
1965년 로버트 몬다비는 자신의 이름을 따 미국 최대 와인회사를 창업했다. 와인 양조를 담당하며 회사를 함께 꾸려나갔던 동생 피터는 항상 ‘2인자’라는 불만에 가득했다. 이러한 불만은 결국 형제 간의 법정 싸움으로 번졌고, 소송에서 이긴 로버트는 결국 2인자인 피터가 아닌 자식에게 경영권을 승계했다.

첫째는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 만으로 권력을 가지는 반면 둘째는 ‘차남의 비애’를 안고 살아간다. 급기야 아우보다는 자식이 우선시되며 조카에게 권력을 빼앗긴다.

이는 남아 선호사상과 장남을 최고로 여기는 동양의 가족문화와 상당히 유사하다.

재벌가 역시 예외는 아니다. 국내 재벌가의 창업 세대 아우들도 2인자로 형의 그늘에 가려 회사 발전의 밑거름 역할을 하는 데 그쳤다. 상당수 차남들은 시작부터가 형과 다르다. 이들은 부회장 또는 계열사 사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2인자’로 출발한다. 묵묵히 회사 발전을 위해 형의 오른팔 역할을 수행하지만 최후는 대부분 ‘퇴출’이다. 그나마 계열사라도 챙기면 다행이며 가끔 운이 좋은 경우 경영권을 승계받지만 극히 소수다.

▲조중건 한진그룹 전 부회장
◇ 제때 물러날 줄 아는 진정한 ‘2인자’= 기업에서 2인자로서 인정을 받는 경우는 1인자를 최대한 보필·보호하는 역할을 제대로 이행하다 적절한 시기에 물러나는 것인 지도 모른다.

창업 초기 2인자 자리에서 진정한 ‘왕의 남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절제된 삶을 산 아우가 있다. 바로 한진그룹 조중건 전 부회장이다. 조 전 부회장은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의 동생이자 사업 동반자, 그리고 유능한 참모였다.

고 조중훈 회장은 1945년 화물운송업체인 한진상사를 설립했다. 조 전 부회장은 미국에서 수송학을 전공한 뒤 1959년 귀국하자마자 한진상사에 합류했다.

조 전 부회장의 본격적인 활약은 베트남 전쟁 시점에서부터 발휘됐다. 1965년 당시 조 회장은 베트남을 둘러본 후 아우에게 먹거리를 주문했다. 조 전 부회장은 1966년 미군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 베트남에 파병된 미군과 790만 달러 규모의 하역 및 수송계약을 따냈다. 계약 체결 이후 한진은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조 전 부회장은 위기 상황에서 전면에 나서 형인 조 회장을 보호하면서도 기민한 사업 수완을 발휘했다.

그는 지난 2005년 자서전 ‘창공에 꿈을 싣고’를 통해 “항상 2인자라는 생각으로 해결사 역할을 자처했다”며 “성공 확률은 50% 이하지만 1인자가 꾸는 꿈에 덩달아 춤을 추며 열정을 다해 일하는 존재였다”고 서술했다.

실제로 조 전 부회장은 조 브라더스(중훈·중건 형제)를 ‘조 회장이 선장이라면 나는 일등 항해사’라고 표현했다.

조 전 부회장은 조카의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쿨’하게 떠났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각종 분쟁에 휘말린 다른 2인자들의 말년과는 상반되는 행보를 보였다. 그는 1996년 조카들에게 경영권 승계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무렵 미련 없이 일선에서 물러났다. 일부 계열사도 사양했다.

그는 “조카들의 앞길을 막지 않고 형님과 기분 좋게 헤어지고 싶었다”며 “2인자의 삶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신준호 롯데그룹 전 회장.
◇ “2인자로 만족 못해”…분쟁에 휘말린 비참한 최후 = 형제 간의 우애보다는 분쟁으로 인해 2인자로서의 명예를 실추한 사례도 있다. 이들은 2인자인 것도 모자라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다 일선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지난 1996년 롯데가에서 형제간 법정 분쟁이 발생했다. 당시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과 동생 신준호 부회장 간에 서울 양평동 롯데제과 공장부지 소유권을 둘러싼 법적공방이 벌어진 것이다.

2인자로서 불만을 품은 신 부회장이 요구한 양평동 땅을 신 회장이 받아들이지 않아 일어난 사건이다. 신 회장은 롯데후지, 롯데햄 우유, 롯데캐논 등의 경영권과 현금 300억원을 제안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1차 공판 후 화해 국면으로 접어들어 신 부회장은 롯데햄, 우유 대표이사직 해임 위기를 모면했지만 신 회장이 승리하면서 그룹 요직인 부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신 부회장은 1967년부터 1996년까지 20여 년 가량 그룹의 부회장직으로 재직했지만 양평동 부지 사건 이후 롯데우유 지분 45%를 받으면서 경영영역이 축소됐다.

재벌가 창업 세대에서 형은 회장, 동생은 부회장을 맡아 경영하는 모습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아우들이 2인자라는 자리에 불만을 가지고 욕심을 부리다 보면 잿밥에 관심이 많아지게 된다. 가신 대신 가족을 2인자에 두는 것은 신뢰감이 높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그만큼 분쟁의 소지도 높다.

코오롱 고 이원천 사장은 2인자로서 경영권 분쟁에 휘말려 일선에서 아예 물러난 경우다. 장자승계를 고수해 온 코오롱에서 이 사장이 설 자리는 없었다. 창업주인 이원만 회장의 둘째 동생인 이원천 사장은 이 회장 장남인 이동찬 회장과의 경영권 다툼에서 패했고 결국 조카에게 밀렸다. 이 사장은 분쟁 사건 이후 일선에서 아예 물러났다. 장자 승계 원칙이 자리 잡은 코오롱은 이동찬 명예회장에 이어 장남인 이웅렬 회장이 수장 역할을 하고 있으며 외아들인 이규호씨가 현재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고 최종현 SK그룹 전 회장.
◇ 일부 아우들 이례적으로 경영승계 = 고 최종현 SK 회장과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재계 창업세대 2인자인 아우 임에도 경영권을 물려받은 케이스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공한 경우다. 이들은 1인자 자리를 넘겨받은 뒤 그룹 총수로서 손색없는 경영 능력을 보여줬다.

최종건 SK그룹(구 선경) 창업주는 6.25 발발 당시 근무하던 선경직물 공장이 폐허가 되자 정부로부터 그 공장을 매수해 1953년 재건을 성공시켰다.

회사 설립 20년 만인 1973년 최 회장은 폐암으로 향년 4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맏형 최 회장이 별세하자 최종현 회장은 곧바로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1998년까지 회장직을 맡은 그는 1980년 SK그룹보다 ‘덩치’가 더 큰 공기업 유공(현 SK)을 인수해 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는 고 최종건 회장의 숙원을 10년 만에 실현한 것이었다. 게다가 1994년에는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사들이는 등 기업 토대를 마련해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막노동으로 시작해 한국 최대 재벌이 된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 역시 16년 간 누려온 그룹 및 현대자동차 회장직을 1987년 동생인 정세영 사장에게 물려줬다.

고 정세영 회장은 1957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뒤 형을 보좌하며 1967년 현대자동차 설립과 함께 사장을 맡았다. 1974년에는 최초의 국산 모델 포니 생산을 주도했고 1976년 국내 최초로 에콰도르에 포니를 수출하면서 전 세계에 한국 자동차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이때부터 포니 정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포니 정을 빼고는 한국 자동차 역사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한 시대를 장식했다.

하지만 1인자의 기쁨도 잠시, 그룹의 경영권은 조카인 정몽구 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 에게 넘어갔다. 1998년 어느 날 큰 형님인 정주영 회장이 정세영 회장을 집무실로 호출했다. 정몽구 회장 간에 경영권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몽구가 장자(長子)인데, 몽구에게 자동차 회사를 넘겨주는 게 잘못됐어?”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고 한다. 자동차 경영권에서 완전히 손 떼라는 의미였다.

정세영 회장이 32년간 몸담았던 현대자동차 계동 사옥을 떠나기까지는 정주영 회장의 말 한 마디 이후 사흘 밖에 걸리지 않았다.

수십년 간 단 한번도 현대자동차를 떼어놓고 생각해 본 일이 없었던 정세영 회장은 결국 2인자에 불과했다. 그는 당시 심경을 자서전을 통해 “사실 나는 ‘오너의 허울을 쓴 전문 경영인’이었던 모양”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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