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특허전쟁] ’국제 특허괴물’무차별 공세…기업은 명운 건 벼랑 끝 싸움

입력 2012-01-06 09:27 수정 2012-01-0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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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11년 소송전 승리…졌다면 벌금만 13조원 ’아찔’

‘찌르려는 자와 막는 자’

특허전쟁은 창과 방패의 대결로 비유할 수 있다. 소송을 당한 기업은 논리를 뒤집을 만한 단단한 방패를 준비해야 한다. 창을 가다듬어서 역공에 나서기도 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기업들은 창과 방패를 하나씩 들고 공격과 방어를 거듭한다. 특허전쟁에서 패배할 경우 해당 기업의 미래가 불투명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방패는 없이 창으로 공격만 일삼는 특허괴물(Patent Troll)이라는 존재가 부각되고 있다. 이들이 날카로운 창끝으로 공격해오면 해당기업은 전문가들을 총동원해서 방어에 총력을 기울인다.

잘못 해서 창에 찔리기라도 하면 장사해서 번 돈의 대부분을 특허괴물에게 내놓아야 한다. 심각한 경우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제품의 판매가 중지되면서 사업의 존폐가 흔들릴 수도 있다.

■방패, 단단하게 막는다= “드디어 이겼다!”

지난해 11월 17일. 하이닉스 특허그룹 직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11년 간 이어진 특허괴물 램버스와의 소송전에서 힘겹게 승리했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고 이끌어 낸 대역전극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 컸다. 특허전을 이끌어 왔던 민경현 특허라이센싱팀장의 머리 속에는 그동안의 힘겨웠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민경현 팀장은 “2009년에 큰 패소를 하며 수세에 몰리다가 역전을 한 극적인 승리”라며 감격했다.

“이기고 지는 건 소송의 불확실성을 봤을 때 언제든 일어날 수 있지만 대외적으로 특허팀의 위상이 많이 하락했고 사내에서도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번 소송을 위해서 특허그룹 임직원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민 팀장은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모든 경영진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했다"며 "결국 특허그룹이 제안한 내용을 최종 승인했고 이는 승리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소송에서 패하면 13조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어야 하는, 하이닉스의 명운이 걸린 소송이었다.

하이닉스와 미국 측 대리인인 OMM법률사무소의 공조도 승리에 일조했다.

지난 10년간 하이닉스의 여러 소송을 맡아온 OMM은 50~60명의 하이닉스 특허그룹 직원들과 함께 각 분야의 전략을 치밀하게 짰다. 협상을 맡은 특허라이센싱팀은 상대특허에 대해 비침해를 주장했다. 특허기술팀은 선행기술로 공세에 나섰고 특허개발팀은 특허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이들은 10년간 함께 땀방울을 흘렸다.

민경현 팀장은 “미국에서 주로 소송이 이뤄지다 보니 한국과 미국을 셔틀버스로 오가는 것 처럼 잦은 이동을 했다”며 “일주일에 5일은 미국에 있다가 한국에 와서 주말 이틀 동안 회의한 후 다시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어려웠던 점을 회상했다.

지난해 4월엔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에게도 낭보가 울려퍼졌다. 2004년부터 6년 넘게 이어져 온 미국 하니웰과의 LCD 기술 관련 특허침해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것.

하니웰은 2004년 10월부터 전 세계 LCD 업체를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한 이후 대부분의 업체들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는 하니웰의 부당한 소송에 대해 적극 대응해 6년이 넘는 법리공방 끝에 승리를 거두게 됐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는 또 하니웰이 특허 무효 사실을 알면서도 부당하게 소송을 제기한 것을 이유로 변호사 비용 청구 소송까지 진행 중이다. 김광준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법무팀장 전무는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는 부당한 특허료 요구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강력하게 법적 대응을 불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 날카롭게 공격한다= “특허괴물이 무서운 건 창만 있고 방패가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김성기 한국국제지적재산보호협회 회장이 밝힌 특허괴물의 특징이다.

김성기 회장은 “삼성과 애플이 특허전을 벌이면 공격과 방어를 주고 받지만, 특허괴물은 특허권 만을 갖고 있다”며 “당해도 공격할 수 없는 말그대로 괴물”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경쟁사와 전세계에서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는 애플이 미국의 특허괴물 디지튜드와 손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진흙탕 싸움으로 전락한 특허전에서 직접 발을 빼며 회사 이미지 제고를 노리는 동시에 애플에게 특허권을 양도받은 특허괴물을 이용, 삼성전자 등 경쟁사에 대한 전방위 공격을 가하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디지튜드는 삼성전자, LG전자, HTC, 노키아 등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자신의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다.

특허괴물이란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보다 다른 기업들로부터 특허권에 대한 로열티를 받거나 특허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수익의 대부분을 벌어들이는 기업들을 말한다.

미국 인텔렉추얼 벤처스(IV)와 뉴 테크놀러지 프로덕츠(NTP)등 주요 특허괴물은 막대한 특허를 보유하고도 특허 목록을 감추다가 대기업들이 제품을 개발하면 소송을 걸어 로열티를 빼앗는다. 업계에 따르면 이들은 최근 10년간 신재생에너지 등 신성장 동력기술에도 암암리에 특허를 대거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닉스와 소송을 벌였던 미국의 반도체 설계업체 램버스도 대표적인 특허괴물이다.

하이닉스-램버스 소송에서 보듯 특허괴물들은 실제로 상대 기업이 자신들의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았더라도 상대방을 압박하기 위해 특허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다. 이에 따라 자체 연구개발(R&D)을 통해 개발한 기술이 특허괴물들에 의해 특허권 침해 소송에 휘말리는 경우도 많다.

DHL국제특허법률사무소의 이두한 변리사는 “최근 특허괴물은 원천기술의 특허권은 물론 주변기술의 특허권까지 적극적으로 매입하여 상대 기업들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등 점점 더 치밀해 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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