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패밀리]코닝의 호튼家, 160년 혁신전통에 첨단의 옷을 입히다

입력 2011-04-15 11:11 수정 2011-04-1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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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때마다 새로운 기술개발로 부활...TV 유리제품·저손실 광섬유 등 첨단기술붐

미국의 발명산업을 주도한 160년 전통의 첨단소재 기업. 전 세계 6개 운영본부와 21개 자회사 및 20개 합작사를 거느린 글로벌 네트워크.

미국 뉴욕주 코닝에 위치한 세계적인 특수유리 및 세라믹 제조업체 코닝 이야기다.

160년이 넘는 코닝의 명맥은 전문 경영인이 아닌 창업주 호튼 가문이 이끌어오고 있다. 창업주 일가는 코닝의 오랜 전통에 첨단기술을 덧입히고,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로 나섰다.

이같은 코닝의 성공 신화는 창립자인 에모리 호튼 시니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닝의 에모리 호튼 시니어 창립자
영국계 이민자의 후손인 호튼 시니어는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무역과 부동산 등으로 부를 축적했다.

그는 1851년 매사추세츠주의 소형 유리회사 게일앤필립스 인수와 함께 유리사업에 뛰어든다. 에모리 시니어는 본사를 같은 주에 있는 코닝으로 옮기고 회사명도 지역이름을 따 코닝으로 변경, 비상을 준비했다.

하지만 1860년대부터 20년간 경쟁 과열로 신기술인 강화유리의 단가가 급락하면서 코닝의 수익성이 악화됐다. 에모리 시니어는 결국 사업을 시작한 지 18년 만에 회사를 채권단에 넘겨 주고 말았다.

채권단은 그러나 코닝을 살릴 구원투수로 호튼가의 장남인 에모리 주니어를 선택했다. 에모리 주니어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에게 전구 유리를 공급하고 히트상품을 개발해 회사를 정상화한데 이어 1872년 5월에는 모든 부채를 갚고 회사를 호튼가의 품에 안겨줬다.

회사를 정상궤도로 올려 놓은 에모리 주니어가 1909년 사망하자 그의 장남 앨런슨 호튼이 뒤를 이었다. 앨런슨은 코닝이 새로운 기술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최첨단 화학 실험실을 세워 중앙집중식 연구·개발(R&D) 시스템을 설립했고, 그의 아들 에모리는 TV 시대를 맞아 코닝의 부흥기를 열었다.

1947년 미 연방통신협회가 방송기준을 만들자 코닝 경영진은 TV용 유리제품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미래 수요를 겨냥해 신기술을 적용한 TV유리제품을 생산하던 코닝은 뜻하지 않는 복병을 만나 고전하게 된다. 당시 미국 최대 전자회사인 RCA가 자체 유리회사를 만들어 주문을 대폭 줄여버린 것이다.

▲1934년 4월 2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코닝 기사에 실린 유리공장의 모습

하지만 코닝은 과거 위기 때마다 새로운 공정을 개발해 성공을 거뒀다. 일례로 젊은 과학자 제임스 기펜은 노동력을 대폭 줄인 신공정을 개발해 경쟁 업체들을 압도했다.

1947년 20만대 수준이던 미국의 TV 보급대수는 1950년에는 1000만대로 폭증했고 코닝은 고스란히 그 수혜를 누렸다.

창립 5세대인 에모가 1957년 이사로 임명되면서 다양한 첨단 제품개발 붐이 일었다.

R&D에 대한 투자는 1970년대 아무도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여겨졌던 ‘저손실 광섬유’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당시 경쟁사들은 “광 섬유기술은 2000년에나 상용화할 수 있는 너무 이른 기술”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대박은 10년도 안돼 터졌다.

특히 1982년 미 법무부가 반독점금지법에 따라 AT&T에 내린 분할 결정은 하늘이 준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2위 장거리통신 업체인 MCI는 AT&T의 분할을 계기로 그동안 보류해왔던 마이크로웨이브를 광섬유로 바꾸기로 하고 코닝에 대규모 물량을 발주했다.

▲코닝이 1950년 미국 뉴욕주 코닝에 설립한 코닝유리박물관은 유리의 역사, 예술, 과학 등을 주제로 4만5000여점이 넘는 유리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코닝의 재도약과 동시에 경영권도 에모의 동생 제임스에게 넘어왔다. 제임스는 1962년 하버드 MBA를 나온 이후 계속 코닝의 재무·경영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온 만큼 누구보다 회사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광학 분야에서의 비약적 성장으로 코닝은 1990년대 들어 강력한 재무구조를 갖추기 시작한다. 1990년 코닝의 연간 매출은 30억달러, 주당 자기자본이익율은 16.3%로 1983년의 두 배에 달했다.

1996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던 제임스는 2001년 또 다시 코닝의 부름을 받는다. 1990년대 말 미국 닷컴버블 붕괴로 통신산업이 악화하면서 코닝의 순익이 고꾸라져 강력한 구조조정의 칼자루를 쥘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강력한 추진력으로 안팎의 두터운 신임을 받을 만한 인물로 제임스가 단연 최고였다는 것이 당시 이사회의 평가다.

제임스는 은퇴 후에도 코닝 지역사회에 끈끈한 연결고리를 유지했으며 경영복귀 요청을 받았을 때 주저없이 받아들였다.

복귀하자마자 그는 살을 도려내는 듯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기존 경영진들을 대부분 물갈이하고 전 직원의 절반인 2만5000명을 내보냈다. 또 전 세계 12개 공장을 폐쇄했다. 회사는 점차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월가도 그에게는 남다른 신뢰를 보였다.

코닝의 폴 로고스키 국제담당 홍보총괄 이사는 “제임스 호튼 회장이 임직원들과 투자자들에게 쌓아놓았던 신뢰가 없었더라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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