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잼'이라던 북중미 월드컵, 이 맛에 봅니다 [이슈크래커]

입력 2026-06-1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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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페인과 카보베르데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에서 라민 야말이 경기에 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페인과 카보베르데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에서 라민 야말이 경기에 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을 향한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개막 전까지만 해도 이번 대회를 두고 우려 섞인 전망이 적지 않았는데요. 일각에서는 이번 월드컵 흥행 여부를 두고 회의적인 전망까지 내놓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이 열리니 사뭇 다른 분위기가 흐릅니다. 특히 예상을 벗어난 경기 결과가 이어지면서 '각본 없는 드라마'가 힘을 발휘하고 있는데요. 강팀이 반드시 이기는 것도, 약팀이 쉽게 무너지는 것도 아닙니다. 전력 차와 이름값을 뛰어넘는 장면이 누적되기 시작하면서 "역시 공은 둥글다"는 말이 또 한 번 회자되고 있죠.

▲11일(현지시간) 멕시코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1차전 한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손흥민과 이강인이 골문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멕시코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1차전 한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손흥민과 이강인이 골문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월드컵, 개막 전부터 우려 나온 이유

2026 북중미 월드컵을 향한 시선이 처음부터 뜨거웠던 건 아닙니다. 오히려 개막 전에는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죠.

우선 대회 규모 변화와 관련해서 우려가 나왔습니다. 이번 월드컵부터 본선 참가국은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늘었고, 전체 경기 수도 64경기에서 104경기로 대폭 확대됐습니다.

출전국 확대는 더 많은 나라에 월드컵 무대를 열어준다는 의미가 있지만, 표면적인 이유에 그친다는 지적과 우려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경기 질 저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는데요. 유럽과 남미로 재편되고 있는 전 세계 축구계에서 이들 대륙과 다른 대륙 간 기량 차는 여전히 크다는 현실이 놓여 있었죠. 경기 수가 크게 늘어난 만큼 팬들이 모든 경기에 몰입하기 어려워지고 대회 전체의 밀도도 옅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이어졌습니다.

개최 환경도 변수로 꼽혔습니다. 이번 대회는 미국·캐나다·멕시코 3개국에서 열립니다. 개최 도시 간 거리가 멀어 선수단과 팬 모두 장거리 이동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6~7월 북미 지역의 폭염까지 겹치면서 선수들의 경기력 저하, 경기 흐름 중단, 관중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습니다.

티켓 가격을 둘러싼 논란도 흥행 불안 요소였습니다. 일부 경기에서 빈 좌석이 눈에 띄면서 비싼 티켓 가격이 팬들의 직관 접근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나온 건데요. 월드컵이 전 세계 축구 팬의 축제라기보다 지나치게 상업화된 이벤트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이와 맞물렸죠.

국내에서는 여기에 축구협회를 둘러싼 시원찮은 시선까지 더해졌습니다. 2023년 아시안컵 부진과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 선임 및 경질 과정, 홍명보 감독 선임 논란 등을 거치면서 축구협회는 팬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한 바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4선 연임 과정에서는 대표팀 감독 선임 절차의 공정성 논란까지 불거졌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와 중징계 요구, 이에 따른 법정 공방까지 이어지면서 축구 팬들의 한숨을 자아냈죠.

피로와 불신은 곧 냉담한 시선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동안 국가대표팀 경기는 높은 관심을 보장하는 콘텐츠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흐름이 달랐는데요. 지난해 10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파라과이전에는 관중이 2만2206명에 그쳤습니다. 6만 석이 넘는 상암 경기장 곳곳에 빈자리가 드러나며 충격을 안겼는데요. 같은 해 11월 가나전에서도 관중은 3만3256명에 그쳤죠. 이를 두고 흥행 참사라는 평가까지 나왔습니다.

이에 더해 북중미와 한국의 시차 탓에 주요 경기가 오전 시간대 열리는 점도 국내 흥행을 비관하게 만든 이유였습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페인과 카보 베르데의 2026 북중미 월드컵 H조 1차전에서 보지냐가 관중에 화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페인과 카보 베르데의 2026 북중미 월드컵 H조 1차전에서 보지냐가 관중에 화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공은 둥글다…이변·반전의 연속

하지만 대회가 시작되자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경기 질 저하와 일방적인 승부를 걱정했던 예상과 달리, 조별리그 초반부터 강팀들이 예상 밖 고전을 이어가는 등 스포츠 특유의 변수에서 오는 재미가 치솟고 있는 겁니다.

대표적인 경기는 15일(현지시간) 스페인과 카보베르데의 조별리그 H조 1차전이었습니다. 스페인은 월드컵과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우승 경험을 지닌 '무적함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FIFA 랭킹 2위인 데다가 '신성' 라민 야말(바르셀로나), 마르크 쿠쿠레야(첼시), 로드리(맨체스터 시티) 등 내로라하는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하죠. 반면 인구 53만의 작은 나라, 카보베르데는 이번 대회를 통해 처음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는데요. 라인업도 무명 선수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랭킹도 67위로 이번 대회에 나서는 48개국 중 가나(73위), 퀴라소(82위), 아이티(83위), 뉴질랜드(85위) 정도만을 아래에 두고 있죠. 객관적인 전력만 놓고 보면 스페인의 우세를 예상하는 시선이 압도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0-0 무승부였습니다. 스페인은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경기를 주도하고 여러 차례 골문을 두드렸지만, 끝내 카보베르데의 수비를 뚫지 못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카보베르데의 골키퍼 보지냐(샤베스)의 맹활약이 있었는데요. 5만 명에 불과했던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경기 이후 57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시간당 수십만 명씩 팔로워가 늘어나는 중이죠.

같은 조에서 사우디아라비아도 우루과이와 1-1로 비기는 이변을 펼쳤습니다. 우루과이는 전통적인 남미 강호로 꼽히는 팀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가 쉽게 물러서지 않으면서 H조는 첫 경기부터 혼전 양상을 띠게 됐는데요. 무승부로 귀중한 승점 1을 따낸 사우디아라비아는 우루과이와 승점이 같지만 옐로카드 1개를 받아 페어플레이 점수에서 밀려 H조 2위에 올랐고요. 카보베르데(승점 1)와 득점 없이 비긴 스페인(승점 1)이 'FIFA 랭킹 우위'로 3위가 됐습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가 비기면서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아시아축구연맹(AFC) 가맹국들의 무패 행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전 세계 축구 팬들의 도파민도 치솟았죠.

한국 국가대표팀과 체코의 경기도 국내 팬들의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선제골을 내줬지만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의 도움을 받은 황인범의 동점골과 후반 35분 터진 오현규(베식타시)의 역전골로 값진 승점 3을 챙긴 겁니다.

오현규의 골은 단순한 결승골 이상의 의미도 있었습니다. 오현규는 지난해 독일 분데스리가 이적이 무산됐는데요. 10여 년 전 당한 십자인대 부상 탓에 메디컬 테스트에서 고배를 마신 겁니다. 그러나 오현규는 올해 초 튀르키예행을 선택, 맹활약을 펼치면서 골잡이로 거듭났죠. 또 4년 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손흥민의 대체 선수로 등 번호도 없이 경기를 지켜봐야 했지만, 이번 체코전에서는 손흥민을 포함한 대표팀 동료들의 격한 축하를 받았습니다. 드라마보다 드라마 같은 서사엔 수많은 축구 팬들이 열광했죠.

이처럼 이변과 반전은 월드컵을 월드컵답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2002 한일 월드컵 개막전에서 세네갈이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를 꺾거나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격파한 '카잔의 기적',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가 이끌던 아르헨티나를 2-1로 잡은 일은 지금도 축구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곤 합니다.

전력 차가 분명한 경기에서도 결과가 늘 예상대로 흐르지는 않는다는 점, 이름값보다 그날의 전술과 집중력, 분위기가 승부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축구의 매력입니다. 이번 대회 초반에도 강팀이 흔들리고 약팀이 버티는 장면, 마지막 순간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골이 이어지면서 "역시 공은 둥글다"는 말이 다시 힘을 얻고 있죠.

▲11일(현지시간) 멕시코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1차전 한국과 체코의 경기가 열린 가운데 선수들이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시간 때 물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멕시코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1차전 한국과 체코의 경기가 열린 가운데 선수들이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시간 때 물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흥행도 떼놓은 당상?

초반 지표도 청신호를 켰습니다. 한국-체코전은 평일 오전 시간대 열린 경기였지만 KBS와 JTBC를 통해 약 280만 명이 시청했고, 네이버 스트리밍 플랫폼 치지직에서는 최고 동시 접속자 482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KBS 중계는 평균 시청률 8.5%(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분당 최고 시청률은 14.5%까지 올랐는데요. 개막 전 우려와 달리 대표팀 경기와 주요 이변이 맞물리면서 화제성을 키우고 있죠.

다만 이 같은 분위기가 완전한 흥행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상존하는 논란도 있는데요. 대표적인 게 상업주의가 지나치다는 지적입니다.

이번 대회는 참가국과 경기 수가 크게 늘어난 만큼 FIFA의 수익 확대와 맞물려 해석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여기에 티켓 가격 논란까지 겹쳤는데요. 일부 경기에서는 공식 관중 수와 별개로 경기장 곳곳의 빈 좌석이 눈에 띄면서, 비싼 티켓 가격이 일반 팬들의 접근성을 떨어뜨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현지 교통과 이동 문제도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월드컵은 3개국에서 열리는 만큼 선수단과 팬 모두 장거리 이동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미국 일부 경기장 주변에서는 대중교통 수요와 비용, 경기 후 귀가 문제 등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경기장 안의 흥행과 별개로, 팬들이 경기장까지 오가며 체감하는 불편과 바쁜 일정이 대회 이미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목입니다.

폭염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된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도 흥행 저해 요소로 거론됩니다. FIFA는 미국·캐나다·멕시코의 무더운 날씨 속 선수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이번 대회부터 모든 경기에서 전·후반 각각 한 차례씩 3분간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를 운영하는 중인데요. 기온과 관계없이 모든 경기에서 적용됩니다.

선수 보호를 위한 장치라는 명분은 분명하지만, 전·후반 중간마다 경기가 멈추면서 흐름이 끊긴다는 불만이 나옵니다. 일부 팬들은 이 시간이 방송 광고와 맞물리며 축구 특유의 연속성을 해친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14일 골닷컴에 따르면 위르겐 클롭 전 리버풀 감독도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를 비판하며 "축구가 상업적 이익에 의해 인질로 잡혔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죠.

국내 팬들에게는 인종차별 논란도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데요. 한국-체코전 현장에서 한국인 여성 인플루언서를 향해 한 멕시코 남성이 이른바 '눈 찢기' 제스처를 한 사실이 알려지며 비판이 확산했습니다. 해당 남성이 현지 단체장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월드컵처럼 전 세계 팬들이 모이는 무대에서 차별 문제에 대한 대응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티켓 가격과 상업주의, 이동·폭염 문제, 경기장 안팎의 차별 논란 등은 여전히 대회의 걱정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조별리그 초반부터 예상을 뒤집는 결과와 뜻밖의 주인공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북중미 월드컵은 ‘노잼’ 우려를 빠르게 지워가고 있는데요. 이번 월드컵에서 축구사에 기록될 또 다른 명장면이 나올지도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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