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는 열리지만… ‘K-산업’ 손익계산서 급변 [미·이란 종전]

입력 2026-06-1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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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에도 안심 못한다…공급망 리스크는 현재진행형
희망봉 우회·원자재 불안에 재계 공급망 전략 전면 재점검

▲이란 반다르아바스 인근 호르무즈 해협에 11일(현지시간) 화물선들이 정박해 있다. 반다르아바스(이란)/AP연합뉴스
▲이란 반다르아바스 인근 호르무즈 해협에 11일(현지시간) 화물선들이 정박해 있다. 반다르아바스(이란)/AP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이 종전 합의에 도달하면서 글로벌 시장은 일단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게 됐다.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도 다시 열리면서 국제유가와 물류 시장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전쟁은 끝났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급망 리스크가 비용 문제가 아닌 생존 문제라는 사실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제조기업들은 미국·이란 충돌이 격화됐던 기간 원자재 조달과 물류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며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했다. 실제 생산 차질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한국 제조업이 중동발 리스크에 얼마나 깊이 연결돼 있는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글로비스, 대한항공, HMM 등 주요 기업들이 전쟁 기간 공급망 점검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블룸버그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선박을 기존 경로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시켰다"며 "이에 따라 조달 기간이 크게 늘어났다"고 밝혔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희망봉 우회 시 조달 기간은 10~14일 늘어나고 항차당 100만달러(약 15억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이번 전쟁은 한국 제조업의 높은 중동 의존도를 그대로 드러냈다. 한국무역협회는 이번 사태를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를 넘어 나프타, 헬륨, 브롬, 암모니아 등 산업 원료와 소재로 충격이 확산되는 '공정 중단형 공급망 리스크'로 규정했다. 특히 한국의 나프타 수입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 인근 중동 주요국 비중은 2023~2024년 기준 평균 34.4%에 달한다. 원유와 나프타, 헬륨은 공급 차질 발생 시 단기간 내 생산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공정 유지 우선 관리' 품목으로 분류된다. 정유·석유화학은 물론 타이어, 자동차, 항공, 물류 산업까지 연쇄 충격이 불가피한 구조다.

종전이 이뤄졌다고 해서 상황이 곧바로 정상화되는 것도 아니다. 산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전쟁 자체보다 공급망 훼손의 후유증이다. 에너지 시설 복구 지연과 비축 경쟁, 우회 운송 비용 확대가 이어질 경우 전쟁 이전보다 높은 비용 구조가 상당 기간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의 취약성을 드러냈다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원자재 리스크를, 이번 중동 위기는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확인시켰다는 분석이다.

흥국증권은 미국·이란 종전 합의가 전쟁 이전 질서에 가까운 수준에서 타결됐지만 생산 차질과 재고 감소 영향으로 유가가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석유 재고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는 데다 각국의 에너지 안보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역시 전쟁 초기 당시 조기 종전이 이뤄지더라도 유가는 전쟁 이전보다 43%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본 바 있다.

물류 시장도 마찬가지다. NH투자증권은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재개되더라도 화주들의 관망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오히려 묶여 있던 선박이 한꺼번에 시장에 복귀하면서 단기적으로 운임 하방 압력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재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은 다시 열렸지만 기업들이 얻은 교훈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다음 위기는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 홍해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만큼 공급망 다변화와 재고 확보, 에너지 안보 강화는 앞으로도 기업 경영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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