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자원公, 물인프라 부문 계약 협의…韓기업 '동반진출' 의미도

이달 10일 필리핀 콘래드마닐라 3층. 외벽 통유리 너머 푸른 마닐라만 위에 떠 있는(?) 잿빛 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필리핀 정부와 현지 최대 부동산 개발기업 SM프라임홀딩스가 추진하는 초대형 첨단복합도시 '파사이360'(SM스마트시티) 부지다. '360'이라는 숫자가 나타내듯 규모는 360헥타르(ha), 여의도의 약 1.2배 크기다. 필리핀 매립허가청 등 당국의 주요 인허가를 거쳐 최근 사업부지 매립이 마무리됐다. 2028년 준공을 목표로 지반 보강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일반인 출입이 통제돼 인근의 호텔, 쇼핑몰에서나 볼 수 있는 파사이360 부지는 현재 굴착·토사 운반 장비 정도만 있을 뿐 허허벌판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곳은 2030년대 필리핀의 핵심 비즈니스 허브로 급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필리핀은 파사이360을 최첨단 상업·주거·교육·의료·마이스(MICE, 기업회의·관광·컨벤션·전시) 기능을 집적한 스마트 복합 미래신도시로 키울 계획이다. 부지 매립 공사에만 1조원 이상 들어갔다. 이곳에 세계적 규모의 쇼핑몰, 오피스·컨벤션, 호텔, 의료·교육시설을 지을 예정이다. 조만간 도로·상하수도·전력망 등 주요 인프라를 구축한 뒤 구역별 개발은 합작투자(JV)·부지분양 방식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이러한 필리핀 내 초대형 개발프로젝트에 한국수자원공사의 참여 가능성이 높아진 점은 주목할 만하다. 수자원공사는 SM프라임홀딩스와 총사업비 2000억원 규모의 파사이360 물 인프라 조성사업 참여를 위한 세부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계약이 성사되면 '필리핀 미래도시'의 상하수도 등 물 인프라 전반을 한국 공기업이 장기간 도맡게 된다.
수자원공사는 세계적으로도 기술력이 입증된 스마트관망관리(SWNM)를 파사이360에 적용한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SWNM은 수돗물 공급 전 과정에 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를 접목해 누수 지점을 실시간 진단·감시하는 기술로 올해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테크포굿'을 수상한 혁신기술이다. 국내 공공부문 최초 기관 단독 수상이다.
특히 마닐라만 일대는 지반 침하, 해수면 상승, 연례 태풍 침수, 액상화 위험 등이 중첩된 지역이다. 이제 막 첫발을 뗀 파사이360 프로젝트의 성공 가늠자로 '물 인프라'가 거론되는 이유다. 수자원공사가 파사이360에 우수한 'K-물관리' 기술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다면 필리핀의 주요 물 프로젝트 참여를 넘어 동남아 시장에서 한층 강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계약이 성사되면 국내 기업의 '동반 성장'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해외 메가프로젝트에 자력 참여가 어려운 국내 중견·중소기업이 수공과 함께 현지에서 기술력을 선보일 수 있어서다. 무엇보다 대규모 복합개발이 이뤄질 파사이360의 경우 물기업뿐 아니라 설계·조달·시공(EPC)·기자재 업체 등이 다수 참여할 수도 있다.
이승용 수자원공사 필리핀센터 차장은 "해외에 나간 공기업이 수익을 내는 것도 좋지만 주요사업에 먼저 진입해 다른 한국 기업도 같이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가치"며 "이번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수자원공사는 필리핀에서 다양한 물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623억원)을 기록한 앙갓댐 수력발전 사업을 비롯해 불라칸 광역상수도 사업, 필리핀 뉴클락시티 상하수도 사업, 마닐라 해수담수화 사업 등이다.
이서우 필리핀센터장은 "이 나라의 주된 고민은 깨끗한 물을 어떻게 늘 공급받느냐는 것"이라며 "계약이 체결돼 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다른 사업으로 확장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공한 사업모델을 만들면 비슷한 개도국 첨단도시 개발 과정에서 사업자로 참여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며 "앙갓댐 사업과 우리의 실적을 설명하면 현지에서 보는 눈이 달라진다. '글로벌파트너로서 믿고 갈 수 있다'는 신뢰가 생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