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노조 파업에 선 그은 법원…반도체 공정 특수성 첫 전면 반영

입력 2026-05-1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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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위치한 삼성전자 사옥에서 삼성전자 로고가 그려진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서울에 위치한 삼성전자 사옥에서 삼성전자 로고가 그려진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삼성전자 노동조합의 총파업을 앞두고 나온 법원의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일부 인용 결정이 첨단 제조업에서 파업의 허용 범위를 가늠하게 하는 사례로 떠올랐다. 법원이 반도체 공정의 특성을 근거로 안전보호시설과 보안작업의 범위를 이례적으로 폭넓게 인정한 만큼, 향후 유사 산업현장의 노사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수원지법 민사31부(신우정 부장판사)는 18일 삼성전자가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등 2개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대부분 받아들이며, 노조가 총파업 기간 중에도 안전보호시설과 웨이퍼 변질 방지 작업 등을 평상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노조의 총파업에 사실상 제동을 건 것이다.

이번 결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법원이 노조법상 ‘정상적 유지·운영’의 의미를 엄격하게 해석했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안전보호시설의 정상적 운영을 단순히 ‘필요 최소한의 유지·운영’ 수준이 아니라 ‘평상시와 동일한 정도의 인력·가동시간·가동규모·주의의무로써 유지·운영되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노조법이 필수유지업무에 대해서는 ‘정당한’ 유지·운영을 ‘필요 최소한의 유지·운영’ 수준으로 풀이하는 반면, 안전보호시설에 대해서는 ‘정상적’ 유지라는 다른 표현을 쓰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정상적’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 즉 평시와 같은 상태를 뜻한다는 점을 근거로, 안전보호시설의 운영 기준이 필수유지업무보다 더 높은 수준이라고 본 것이다. 결국 사고 발생 시 대규모 인명 피해나 환경 오염이 우려되는 안전보호시설에 대해서는 사실상 평상시 수준의 운영을 유지해야 한다는 해석을 내놓은 셈이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13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조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 2차 심문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13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조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 2차 심문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재판부는 또 안전보호시설이 생산 기능을 함께 수행하더라도 그 기능을 인위적으로 분리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시설 안에서 근로자를 ‘생산 담당’과 ‘안전 담당’으로 획일적으로 나눠 생산 담당의 쟁의행위만 허용한다면, 사실상 안전보호시설을 평상시처럼 유지·운영할 수 없게 돼 생명·신체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일부 기능이 생산 성격을 띠더라도 안전보호시설 요건을 충족하는 이상, 그 정상적 유지·운영을 방해하는 일체의 쟁의행위는 금지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웨이퍼 관련 작업 등도 ‘보안작업’에 해당해 쟁의행위 기간 중이라도 평상시와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웨이퍼 관리, 설비 관리, 공정 관리, AI센터 시스템 관리 등이 모두 보안작업으로 인정됐다.

이 같은 판단은 반도체 산업 특수성을 강하게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반도체 생산라인은 24시간 연속 공정으로 운영되며, 웨이퍼가 일정 시간 이상 공정에 머물 경우 산패나 화학물질 증착 등으로 제품 자체가 손상될 수 있다.

재판부는 나아가 반도체 공정의 일시적 중단만으로도 수율 저하, 설비 재가동 비용 증가, 웨이퍼 손실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생산 차질이 자동차·가전·정보통신 등 연관 산업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언급됐다.

시설 점거 금지 부분도 의미가 작지 않다. 재판부는 초기업노조와 최승호 위원장에 대해 생산라인(FAB), 연구라인, 통합운영센터(IOC), 유해성 화학물질 보관·저장 시설 등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행위와 잠금장치 설치, 근로자 출입 방해 행위를 금지하면서 “부분적·병존적 점거도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법원이 삼성전자 측 신청을 전부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노조의 파업 참여 독려 과정에서 협박성 발언을 금지해달라는 신청에 대해서는 “보호법익은 근로자 개인의 신체 안전과 의사결정 자유”라며 회사 측이 직접 청구할 권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번 결정은 반도체 산업과 같은 첨단 제조업에서는 전통적 제조업보다 파업 허용 범위가 더 좁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로 읽힌다. 특히 국가 핵심 산업과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이 법원의 판단 요소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향후 첨단산업 노사분쟁에서 중요한 선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동 전문 변호사는 “반도체 공정에서 안전보호시설과 생산시설은 필수불가결하게 연결된 부분이 많다”며 “가처분 신청은 안전보호시설을 대상으로 했지만 사실상 반도체 시설 전반에 적용되는 결과가 됐다는 점에서 사측 주장이 상당 부분 받아들여진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안전보호시설의 범위를 넓게 인정하고 부분적·병존적 점거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선례적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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