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황 사이클 변동성 대응 구조적 한계
AI 인프라 구축서 국산 기술 활용 확대
메모리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는 한국 반도체 산업이 장기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설계와 소프트웨어까지 연결된 산업 구조로 확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산 경쟁력만으로는 업황 사이클에 따른 변동성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최기영 제9대 반도체공학회장(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최근 서울 강남구 반도체공학회 집무실에서 진행된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메모리 호황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누구도 단정하기 어렵다”며 “생산 역량만으로 경쟁력을 지속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설계와 소프트웨어까지 연결된 산업 생태계를 갖춰야 메모리 기술을 시스템 경쟁력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메모리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 상위권을 유지하며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부품 공급자로 자리 잡았지만 시스템 반도체와 설계 생태계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메모리 중심 산업 구조에서는 시장 수요 변화에 따른 실적 변동성이 불가피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플랫폼·서비스 영역으로의 확장에도 제약이 따른다. 국내에서도 일부 공동 개발과 협력 프로그램이 확대되고 있지만 산업 전반을 견인할 수준의 생태계로 확장되지는 못했다.
최 회장은 “시스템 반도체는 반도체 기술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애플리케이션까지 포함된 전체 생태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면서 “시스템 반도체 산업은 단일 기업의 투자만으로 성장하기 어렵고 팹리스·파운드리·설계자산(IP)·소프트웨어·수요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협력 구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설계 기업이 실제 제품으로 구현되는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면서 “대만은 TSMC가 설계 기업들과 협업을 많이 하면서 생태계를 잘 구축했다”며 “국내 역시 기업 간 협력 구조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 회장은 이러한 산업 구조 전환의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고 봤다. 그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도 있고 경쟁력을 잃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산업 확산으로 반도체 수요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는 것도 이러한 판단의 배경이다. 데이터센터 중심의 AI 반도체 시장이 온디바이스·엣지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설계와 소프트웨어 역량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차세대 메모리 기술 역시 생태계와 직결된 과제로 꼽았다. 메모리 내부에서 연산을 수행하는 구조(PIM) 등 새로운 기술은 하드웨어뿐 아니라 이를 활용할 소프트웨어와 개발 환경이 함께 갖춰져야 성능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 국산 기술 활용을 확대할 필요성도 언급했다. 최 회장은 국가대표 AI를 뽑는 독자 AI 모델 사업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그 장비가 올라가는 서버와 데이터센터 인프라가 대부분 해외 제품 중심으로 구성된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에도 관련 장비와 칩을 개발하는 기업이 있는 만큼 일부라도 국내 기업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초기에는 성능 보완이 필요할 수 있지만 실제 적용 경험이 축적돼야 기술 경쟁력과 산업 생태계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취지다.
국내 인프라 측면에서 수도권 집중 구조의 현실적 한계도 지적했다. 전력 수급과 재생에너지 활용 여건을 고려할 때 향후 추가 생산 거점은 남부 지역 등 다양한 입지를 함께 검토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그는 “용인 전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많은 반도체 공장이 다 돌아갈 수 없다”며 “거기에 지을 만큼은 짓되 나머지는 다른 지역으로 분산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 회장은 미국을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 재편 움직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메모리 경쟁력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가진 기술과 시장 지위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최 회장은 반도체공학회 차원에서도 산업 전환기에 필요한 방향성을 제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반도체 산업은 투자 규모가 크고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른 만큼 중장기 로드맵이 중요하다”며 “반도체공학회가 산·학·연 협력과 연구 성과의 산업 이전을 연결하는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 최기영 반도체공학회장
1955년생.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반도체 소자 분야 연구와 인재 양성에 참여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냈으며 2026년 1월부터 반도체공학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