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자사주 1% 공시’, ‘자사주 마법’ 종말 고할까

입력 2026-01-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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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본시장에서 자사주는 오랫동안 ‘양날의 검’이었다. 이론적으로 자사주 매입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유통 주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을 높이고, 시장에 ‘우리 주가는 저평가돼 있다’는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적 지배구조 아래서 자사주는 종종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용 ‘방패’나 편법 승계의 ‘지렛대’로 변질돼 왔다. 인적분할 과정에서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상징적 단면이었다.

변화의 물결은 올해부터 시행될 ‘자사주 보유 현황 및 활용 계획 공시 의무화’에서 시작된다. 상장사가 발행주식 총수의 1% 이상 자사주를 보유할 경우, 그 목적과 향후 계획을 상세히 밝히도록 한 이 제도는 현재 시장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과거에는 자사주를 사들인 뒤 ‘금고주’로 쌓아두며 언제든 경영권 방어에 쓸 수 있는 ‘비밀 병기’로 취급했지만, 이제는 그 민낯을 매 분기 투자자 앞에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사례를 보면 자사주를 대하는 기업들의 태도 변화가 극명하게 갈린다.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는 곳으로 메리츠금융지주가 있다. 메리츠는 ‘주주환원율 50%’라는 파격적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하며 ‘자사주 매입=소각’이라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국내 시장에 안착시켰다. 현대차가 2027년까지 3년간 4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과 소각 방침을 밝힌 것도, 투명한 공시 환경 속에서 ‘보유’만으로는 더 이상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반면, 자사주가 여전히 경영권 분쟁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그림자도 짙다. 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ㆍ영풍 간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나타난 자사주 매입 공방은 자사주의 본질적인 역할을 다시금 묻게 했다. 회사의 자금으로 자사주를 비싼 가격에 매입해 소각하거나 우호 지분(백기사)에 넘기는 행위가 진정으로 전체 주주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현 경영진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비용인지에 대한 논란이 쏟아졌다.

그동안 많은 기업이 자사주를 일단 사들인 뒤, 이를 소각하지 않고 창고에 쌓아두는 방식을 택해 왔다. 우호 세력과의 지분 맞교환이나 인적분할 시 지배력 확대라는 ‘뒷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제 구체적인 소각 계획 없이 수년째 ‘보유’만을 고집하는 기업은 시장으로부터 곧장 ‘불투명한 지배구조’라는 낙인이 찍힌다. 밸류업 지수 편입 제외는 물론, 행동주의 펀드들의 집중 타깃이 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물론 공시 의무화가 만능열쇠는 아니다. 공시를 통해 계획을 밝힌다 한들, 강제성이 없는 ‘계획’은 언제든 경영 환경 변화를 핑계로 번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 역시 “과도한 공시 의무가 경영권 방어를 어렵게 해 해외 자본의 공격에 노출시킨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투명성은 규제가 아니라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다. 자사주 1% 공시는 단순히 숫자 하나를 더 적어내는 서류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기업의 자산이 누구의 것인지, 그리고 그 자산이 누구를 위해 쓰여야 하는지를 묻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코스피 5000시대를 향한 열망이 뜨겁다. 그 숫자가 허수가 되지 않으려면 ‘자사주의 마법’과 같은 불투명한 유산들과 확실히 작별해야 한다. 자사주 공시제가 마법의 종말을 고하는 서막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회피 수단을 찾는 숨바꼭질의 시작이 될지는 기업들의 진정성과 당국의 엄격한 감시 실무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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