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이건희 회장이 가르쳐준 ‘극일의 길’

입력 2025-05-28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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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日 유학때 전자제품 밤새 분해조립
배우되 베끼지 않고 독자개발 '승부'
자만심 경계하고 ‘質경영’에 매달려

어떤 식으로 계산했는지는 몰라도 삼성의 고(故) 이건희 회장은 조선 말기의 우리 국력이 경작지 기준으로 1000억 원이 채 안됐다고 했다. 제로에 가까운 국력에 정치는 썩어 있으니 이완용이 없었어도 김완용, 박완용이 나와 나라를 팔아먹었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언제까지 일본에 욕만 해대고 뭉개고 살 거냐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또 다른 이완용이 나오는 걸 자신은 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일본을 파고들었다.

이 회장의 고교(서울사대부고) 은사 한 분이 대한럭비협회 임원 자격으로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참관했다. 당시 서울사대부고는 고교럭비의 최강이었다. 그 선생님은 올림픽이 끝나고 이 회장의 배려로 이 회장의 집에 머무르며 도쿄 구경을 며칠 더 할 수 있었다.

그때 이 회장은 와세다대학 재학 중이었다. 어느 날 늦은 밤에 불이 켜져 있는 이 회장의 방에 올라가 보니 각종 전자기기와 부품들이 가득했다. 그 방에서 이 회장은 당시 세계 최첨단의 일제 전자제품들을 분해하고 조립하고 또 분해하며 밤을 새웠다. 그의 생전에 삼성이 소니, 도시바 등 일본 상위 전자업체 3~4개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낸 것은 그가 뭉개지 않고 일본을 파고든 덕분이다. 일본의 힘이 세계 1위로 아주 강할 때 그는 도전했고 성공했다.

이건희 회장의 극일 정신은 아버지 이병철 회장을 빼다 박았다. 이병철 회장은 해마다 신년을 도쿄에서 맞이했다. 오쿠라호텔 505호실에 기거하며 도쿄 시내의 신간 서적상을 뒤지고 다녔다. 일본 TV에 나오는 전문가들의 해설을 들으며 어떤 공장을 지을지를 결정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1970년대 삼성전자가 수원에 공장을 지을 때는 공장부지를 43만 평으로 하라고 했다. 부지가 너무 크다고 반대하는 사장들에게 이병철 회장은 “일본 히타치 공장이 40만 평이니 우리가 그것보다는 커야 일본 기업을 언제고 이길 수 있다”라며 고집했다. 그는 일본과의 경쟁을 사업의 승부처라 여기고 집요하게 일본을 파고들었다.

이병철 회장은 일본은 배우기는 하되 베끼지는 않았다. 1987년 가을 우리나라 반도체는 전부 일본을 베꼈다는 보도가 나오자 투병 중에도 수원공장으로 달려갔다. “기껏 남의 것 베끼려고 반도체에 내 평생을 걸었냐”라며 분노했다. 그의 분노는 옆에 있던 진대제 박사(전 정보통신부 장관)가 16MD램부터는 독자 개발하겠노라고 비장하게 다짐하자 가라앉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이병철 회장은 세상을 떠났고 삼성의 연구진은 연구를 거듭해 이병철 회장과의 마지막 약속을 지켜냈다.

이건희 회장이 파고든 또 하나의 분야는 정보, 특히 일본 기업들의 정보력을 부러워했다. 그가 미국 유학 중 한국비료 사건이 터져 빨리 귀국하라는 연락이 왔다. 한밤중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가운데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하니 트랩 아래에 일본 미쓰이(三井)물산에서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자기가 온다는 걸 알고 나왔는지 수수께끼라면서 기업의 정보 수집력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최고경영자는 회계나 관리보다는 법무, 홍보, 정보와 같은 기능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다. 지금보다 벌써 50년이나 전에 그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일본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건희 회장의 질(質) 경영은 그의 경영 철학을 상징하는 대표적 아이콘의 하나다. 그는 여기서도 일본 기업과 비교했다. 그는 삼성의 VTR은 부품이 800개가 안되고 컬러 TV는 500~600개 정도인데 6%나 불량률이 나온다고 했다.

반면 혼다나 도요타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은 2만 개로 차원이 다른데 불량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며 이대로면 삼성은 문을 닫는 게 낫다고도 했다. 일본인 기술자를 영입할 때 급여를 삼성전자 사장보다 3배나 주면서 데려온 것은 앞을 내다본 그의 치밀한 계획이었다. 그래서 그는 1989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도 일본한테라면 뭐든지 지고 싶지 않아요”라며 “상품은 물론이고 레슬링, 탁구 뭐든지… 일본만 이기면 즐거워요”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는 교만을 경계했다. 삼성의 고도성장은 삼성의 힘만으로 된 것은 아니다. 반도체, 컴퓨터 같은 산업이 때마침 출현했고 생산대국 일본에 인접한 지리적 이점이 있었다고 했다. 우리 국민이 소 팔고 논 팔아 교육을 시킨 결과까지 모아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삼성은 제 잘난 덕으로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건희 회장은 우리가 이완용을 다시 보지 않으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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