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문제 정치화는 대결 악화할 뿐
정치지도자 ‘평화구축’ 인식이 중요

새 정부 출발 한 달여를 남겨놓은 지금, 대선을 향한 후보들은 각자 자기 나름의 공약 제시에 열중이다. 하지만 통일 및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언급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기존의 적대적 남북 관계가 더는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이를 바꿀 수 있는 준비도 필요하지 않을까?
1년 반 전부터 북한이 설정해 놓은 남북한 ‘적대적 두 국가 관계’에 대해 어떤 형태로의 정책적 대응이 요구되는 것도 사실이다.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은 “2040년까지 ‘U’자형 한반도 에너지 고속도로를 건설해 경제성장과 기후 대응의 대동맥을 잇겠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의 실현은 새로운 남북관계 형성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새 정부의 통일·북한 정책은 어떤 목표를 지향해야 할 것인가? 남북관계의 전환이 현재 한국이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는 없을까? 필자는 이의 출발점이 다름 아닌 정책추진을 책임지는 지도자의 인식에 있다고 확신한다. 북한과 통일에 대한 지도자의 인식이 어디를 지향하고 있느냐에 따라 남북관계는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음 몇 가지 점을 새 정부를 맡을 정책 최고 지도자가 꼭 인식해 주기를 당부하고 싶다. 첫째, 남북한 사이의 통일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 통일의 개념을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는 점이다. 주지하듯 지금까지 통일은 그것을 어떻게 이루냐는 것이 아니라 통일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가 더 중요했다.
이에 따라 통일문제는 과도할 정도로 정치화했다. 남한이 지금까지 견지해 온 헌법 제3조(영토조항)와 제4조(통일조항)에 의한 1국가, 1체제로의 통일은 다른 한쪽을 흡수하는 통일을 의미한다. 다르게 이야기한다면 북한은 없어지거나 사라지게 해야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남북이 상호 긍정적 관계를 논의하고 ‘통일’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북한이 남한을 두려운 존재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남는 것은 대결뿐이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이와 같은 결과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바꿀 수 있는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둘째, 남북한 주민이 함께 평화롭게 잘 사는 환경을 만드는 과정을 먼저 만드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북한이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평화롭게 잘 살며, 남북 간 생산요소의 왕래가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누구든지 방문할 수 있고 관광이 가능한 상태를 먼저 만드는 것이 통일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정치·제도적인 통일은 그런 바탕 위에서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대상, 달리 말해 ‘요식행위’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남북 양 지역 사이에 교류와 협력의 긴 화학적 통합 과정이 없이 통일은 꿈꿀 수 없다.
이런 과정이 적실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서 인정하는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이는 남북한 사이의 적대적 관계의 해소는 물론, 남북한 사이에 신뢰 관계 형성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한국만이 정통정부이고 북한은 중앙정부에 도전하고 있는 집단이라는 시각은 수정되어야만 한다.
셋째,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제도적 장치의 구축이다. 평화 정착은 선언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남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안보에 대한 보장을 국제적으로 얻어내는 일이 동반되어야 한다. 국제적으로 보장된 평화 체제 속에서 남북한 주민은 수준 높은 교류와 협력을 해나갈 수 있다.
남북한 간에는 이미 불가침협정, 남북한 기본합의서 등과 같이 평화 정착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대결적 상황의 지속은 물론, 전쟁의 위협까지도 존재하고 있는 것은 평화구축 장치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실질적인 조치가 꼭 필요하다.
이상과 같은 남북한 관계나 대외적 노력 이외에도 남한 사회 내부의 변화·발전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통일교육의 재검토, 보안법과 반공법 등 대북 관계법의 정비, 주민의 정책 결정 과정 참여 확대와 지자체 단위의 대북 교류·협력 추진 등 중앙정부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완화하는 방안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즉흥적이고 강·온의 극단을 오가는 대북 정책의 난맥상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는 정권의 바뀜과 관계없이 일관성 있는 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새 정부의 결단과 조치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