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용 칼럼] ‘실용’ 내세운 이재명표 공약의 한계

입력 2025-04-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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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前 한국경제연구원장

李 후보, 공약에 이념과 철학 부재
주 52시간제 등 시장 원리 벗어나
인간에 대한 이해 갖춘 리더 필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치러지는 6월 3일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입후보자들이 저마다의 공약을 밝히며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현재 여론 조사에서 제일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약을 살펴본다.

이재명 전 대표의 공약은 그가 ‘먹사니즘’이나 ‘잘사니즘’으로 표현하는 실용주의다. 물론 먹사니즘이나 잘사니즘이 품위 있는 말은 아니지만, 본인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다.

문제는 실용주의에는 이를 떠받치는 이념이 없다는 것이다. 즉 인간 사회가 어떤 가치를 기반으로 어떻게 형성되고 운행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 이념은 자연 현상이나 인간 세상을 인식하는 사고 체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사는 것과 잘사는 방법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없다. 이념 논쟁이 케케묵은 색깔론이 아닌 이유다.

실용주의를 이념에 매달려 탁상공론만 하지 말고 민생을 챙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새길 수도 있다. 물론 사람들의 물적 토대를 튼튼하게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물적 토대 없이는 정신적 번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용주의를 그렇게 해석하더라도, 실용주의는 어떤 방법으로 물적 토대를 튼튼히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일관된 방법을 제시할 수 없다. 인간 세상을 인식하는 이념과 철학이 분명해야 그에 걸맞은 방법을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전 대표가 제시하는 정책에는 인간 세상의 형성과 운행 이치와는 맞지 않은 것들이 많다. 주 52시간이나 4.5일 근무제, 기본소득, 100조 원의 인공지능(AI) 산업 투자, 상법개정안,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 등이 대표적이다.

근로 시간은 자본 축적과 노동 절약적 기술 발전에 따른 노동에 대한 수요 감소와, 임금 수준 상승에 의한 소득 증가에 따라 감소하는 노동 공급이 서로 조정되면서 점점 짧아졌다. 이러한 시장 여건에 어긋나게 근로 시간을 법으로 강제하면 노동시장은 질식한다. 또 기본소득은 사람들의 근로 의욕을 꺾어 성장을 저해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해쳐 비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내 삶은 내가 책임진다는 건전한 정신을 타락시킨다.

AI 산업의 기술 발전은 분명히 사람들의 미래를 한결 윤택하게 할 것이다. 그런데 어디에 얼마를 어떻게 투자할 것인지는 그에 따른 이윤과 손실을 따져보는 기업이 가장 잘 알 수 있다. 정부는 기업이 그런 일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제반 걸림돌을 없애주면 된다. 설령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더라도 그 운용은 기업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 명문화, 대규모 상장회사의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포함한 상법개정안은 주식회사의 태동과 운행 원리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또 자사주는 황금주(golden share)나 포이즌 필(poison pill) 등의 장치가 없는 한국의 현실에서 지배주주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이의 자동 소각 법제화는 지배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자사주 소각으로 주당 가치는 올라가지만, 회사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또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이 파업으로 회사에 끼친 손해의 배상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므로, 파업을 조장하여 회사의 손실을 크게 하는 법이다. 이런 정책으로 코스피 5000은 어림없다.

바람직한 정책도 있다. 증세로 주택 가격을 잡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 또한 맞는 지식은 아니다. 세금으로는 주택 가격을 안 잡는 것이 아니라 못 잡기 때문이다. 주택 보유세를 올리면 주택 가격이 단기적으로는 내려가지만, 장기적으로는 올라간다. 주택 가격은 거주자가 그 주택의 수명 때까지 누리는 이득의 흐름을 현재 가치로 계산한 것이다. 그런데 매년 300만 원(연간 이자율 3% 가정)의 보유세를 정부가 가져가면 주택 가격은 약 1억 원(연 300만 원 이득 흐름의 현재 가치) 내려간다. 가격이 내려가 장기적으로 새 주택이 덜 지어지고 주택 수가 줄어들어 주택 수요에 변화가 없더라도 가격은 다시 올라간다. 또 상속·증여세는 폐지 또는 공제액 인상과 세율 인하가 바람직하다. 상속·증여세를 매기면 저축이 줄고 자본 축적을 억제하여 경제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전 대표의 실용주의 노선에는 의도와는 달리 ‘굶사니즘’이나 ‘못사니즘’을 초래하는 정책이 많다. 나침반 없는 실용주의가 빠질 수 있는 치명적 함정이다. 지금 한국이 필요로 하는 대통령은 인간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에 바탕을 둔 확실한 자유 이념의 소유자다. 이는 물론 모든 후보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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