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고 했지?"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국 뉴욕증시가 역대급 폭등 장세를 보였습니다. 상호관세 발표로 세계를 뒤흔들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교역국에 상호관세를 유예한다'고 발표하면서 3대 주가지수 그래프가 수직으로 치솟은 겁니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힌트'를 던졌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미국 동부시간) 오전 뉴욕증시에서 장이 다시 하락세로 출발한 지 3분여 만에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렸는데요. 그는 이 글에서 "진정해라. 모든 것이 잘 해결될 것"이라며 "미국은 지금보다 더 크고, 더 나아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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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어진 게시글에선 "지금은 매수하기 딱 좋은 시점(THIS IS A GREAT TIME TO BUY)"이라고 강조했는데요. 그리고 오후에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한 상호관세 유예를 전격 발표했습니다. 일종의 '트럼프 풋'(증시 하락을 막는 지원책)이 나온 셈입니다.
시장에서도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뉴욕증시 3대 지수는 모두 상승 마감했고요. 월가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 지수(VIX)는 전장 대비 25%가량 뚝 떨어졌죠.
그러나 트럼프의 입에 일희일비하며 급등락하는 변동성은 더욱 확대될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일각에서는 미국 금융시장의 신뢰도에도 악영향이 가고 있다는 날 선 지적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는 국가별 상호 관세를 90일간 유예하고 10%의 기본 관세만 부과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가별 상호관세가 시작된 지 13시간여 만의 발표였는데요. 반면 중국에 대한 관세율은 104%에서 21%포인트(p) 더 높인 125%로 올리겠다고 했죠.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70여 개국은 대(對)미국 관세·비관세 장벽 해소를 위한 협상에 나선 만큼, 한시적이지만 관세율을 전격적으로 낮춘 건데요. 미국에 정면으로 대응한 중국에 대해서는 더 높은 관세율을 부과하면서 '찍어 누르기'(?)에 나선 겁니다.
앞서 트럼프 정부가 애초 부과한 34%의 상호 관세에 중국이 상응하는 보복 관세(34%)를 내놓자, 트럼프 행정부는 84%로 관세를 올렸습니다. 이에 중국도 10일부터 84%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125%까지 끌어올리면서 으름장을 놓은 겁니다. '보복에 재보복'이라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죠. 중국은 미국 여행 자제령을 내리고 미국 유학을 재고하라고 경고하는 등 미국의 조치에 대해 물러서지 않고 전면적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유예에 증시는 환호로 답했습니다.
이날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962.86p(7.87%) 오른 4만608.45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474.13p(9.52%) 급등한 5456.90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857.06p(12.16%) 폭등한 1만7124.97에 마감했습니다.
CNBC 방송이 인용한 시장조사업체 팩트셋 시장자료(2차 세계대전 이후 통계 기준)에 따르면 이날 S&P 500 지수의 상승 폭은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인 2008년 10월 13일(11.58%)과 같은 달 28일(10.79%) 이후 세 번째로 컸습니다.
나스닥 지수 상승 폭은 기술주 거품이 꺼진 뒤 약세장 시기인 2001년 1월 3일(14.17%) 이후 두 번째로 컸고요. 다우 지수는 역대 6번째로 상승 폭이 컸죠.
이날 뉴욕증시 거래량은 약 300억 주로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컸다고 합니다.
대형 기술주 주가들을 살펴보면 애플은 15.33% 상승하며 다시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되찾았고요. 테슬라는 전 거래일 대비 22.6% 올랐으며, 엔비디아(18.59%)를 비롯해 메타(14.55%), 아마존(11.98%) 등 시총 상위권의 주요 빅테크들은 두 자릿수대 일간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이번 상호관세 유예 조치는 무역전쟁 격화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시장이 연일 흔들리는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으로 눈길을 끕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유예 결정에 금융시장의 우려가 한몫했다고 시사했는데요. 그는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채 시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젯밤, 사람들이 좀 불안해하는 게 보였다"고 말했죠.
2일 상호관세 발표 이후 주식시장이 폭락한 가운데 안전자산으로 통하는 미국 국채 투매 현상 등 최근 금융시장 패닉이 심화하자 심각성을 인지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일례로 2022년 리즈 트러스 당시 영국 총리는 대규모 감세(減稅)과 대규모 정부 차입을 함께 추진했다가 영국 채권 시장의 붕괴를 맞고 사임하는 굴욕을 맛본 바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한 발짝 물러선 셈으로 해석할 수 있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 타임스(FT), BBC 등은 90일 관세 유예 결정에 대해 "결국 트럼프는 혼돈에 빠진 채권 시장에 굴복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번 관세 유예 소식은 시장을 장악했던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도 일부 덜어냈습니다. 미국 대형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관세 유예 발표 직전엔 12개월 후 미국의 침체 확률을 65%, 성장률을 1%로 조정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 대한 상호관세를 90일간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하자, 침체 확률을 45%로 낮췄고 성장률 전망치는 0.5%로 수정했죠.
JP모건체이스도 "이번 주에 우리의 전망치를 재검토할 예정"이라며 "무역 정책의 영향은 이전보다 다소 줄어들 가능성이 있고, 따라서 경기침체 전망은 '클로스 콜'(close call·아슬아슬한 위기 모면)"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월가에선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상호관세 유예 방침이 시장에 일단 안도감을 준 건 맞지만, 불확실성을 해소하진 못했다는 지적이죠.
JP모건 자산운용의 최고투자책임자 봅 미셸은 "채권 시장에 '큰 변화'는 없었다"며 "여전히 불확실성이 너무 많다. 채권시장은 인플레이션이 (연방준비제도) 목표를 훨씬 웃도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연준은 금리를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고 짚었습니다.
WSJ도 "국채 금리 상승과 주식 반등에 힘입어 달러화가 오르지 않는 것은 상호관세 유예만으로는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전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경기침체나 미국 경제의 장기 생산성 하락에 대한 두려움 탓에 미국 주식을 매도하는 게 아니라, 더 안전한 자산도 던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는데요. WSJ은 약 8000억 달러의 미 국채를 보유한 중국 정부와 같은 큰손들이 관세 보복 조치 차원에서 안전자산을 던질 가능성은 여전히 낮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안전자산 처분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그러면서 "9일의 반전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멈출 힘이 있다는 시장의 자신감을 강화했지만, 지속적인 반등을 위해선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월가 일각에서는 미국 시장이 이제 선진국이 아니라 신흥국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신흥국에서는 정부 정책이 급변하고, 그 여파로 환율부터 국채, 주식 등 모든 자산이 크게 요동치는데요. 최근 미국 역시 이와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는 거죠.
범유럽 증권거래소 운영사인 유로넥스트의 스테판 부이나 최고경영자(CEO)는 8일 프랑스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우리가 알던 지배적인 국가와는 다른 모습으로, 이제는 신흥 시장을 닮아가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 결정이 투자자의 불안감을 높이며, 불확실성이 시스템 전반에 퍼져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죠.
무역장벽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상존합니다. 이번 증시 반등에 근거한 지나친 낙관론도 경계할 필요가 있죠. 세계 경제가 출렁일지, 잠잠할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한 마디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당분간 월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SNS 알림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