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물가 상승이 계속되며 외식 물가도 함께 올랐습니다. 소주·맥줏값도 이 당시 5000원을 넘어 강남 일부 상권에서는 6000원, 7000원까지 치솟았죠.
한번 올라간 제품의 가격은 내리지 않는다는 속설은 굉장히 널리 퍼진 얘기입니다. 실제 어떤 이유로든 소비자 가격이 한번 오른 제품들은 이후에 이전 가격으로 다시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하지만 술집에서 파는 소주·맥주 가격만큼은 예외인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불경기가 지속되며 대학가를 중심으로 소주와 맥주를 1000원에서 2000원대에 파는 술집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요.
한국의 경제 상황이 갑자기 급반전해 물가가 잡히고, 기대 성장률이 상승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술집들이 이러한 저가 공략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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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3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1% 상승했습니다. 반면 외식용 소주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3%, 외식용 맥주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0.7%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죠. 특히 소주는 지난해 9월부터 계속 하락해왔어요.
소주·맥주 제조 회사가 가격을 낮춘 것이 아님에도 이들의 물가지수가 떨어진 것은 자영업자들이 판매 가격을 낮춘 것이 원인입니다. 최근 술집에서는 2000원 수준의 가격에 소주와 맥주를 판매하는 곳이 늘어났죠. 서울에서 소주와 맥주의 최종 도매가가 1500원대임을 고려하면 마진이 크게 줄어든 거예요.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외식 물가가 단기간 빠르게 상승한다며 아우성입니다. 그런데 음식 가격은 식당들이 폭리를 취하기 위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식자재 가격, 가스비, 전기료, 인건비 등이 계속 오르며 어쩔 수 올라간 측면이 크죠.
이러다 보니 술값이 내리는 것 자체는 손님들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죠. 음식, 안주 가격이 오르는 와중에 이전보다 싼 가격에 술을 마시면 지출에 대한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술값이 내리는 것은 자영업 시장이 벼랑 끝까지 몰렸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자영업자들이 벼랑 끝까지 몰려 ‘눈물의 할인’을 나선 것은 결국 불경기와 물가상승의 영향으로 손님들의 방문이 줄고 장사가 안되는 상황이 길어졌기 때문이에요. 여기에 줄어든 손님을 잡기 위해 너도나도 고객 유치 경쟁을 펼치다 보니 술값을 낮추는 상황까지 온 거죠. 지난해 12월 있었던 계엄 사태는 기름을 부은 격이 됐어요.
주류 판매는 판매를 위한 준비 시간, 인건비, 재료 등이 필요 없어 음식 대비 마진율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가격을 줄일 여지가 있는 주류 판매가를 이전보다 줄여서라도 일단 손님들을 끌어들여 ‘박리다매’라도 하자는 절박함이 지금의 주류 저가 마케팅 기조가 형성된 원인이에요.
술을 싸게 파는 곳들이 늘어나며 이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아 저가형 포장마차를 콘셉트로 한 주점들의 숫자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2023년 말부터 영업을 시작한 한 프랜차이즈 포차는 맥주 한 잔에 1900원, 닭 날개 튀김 한 조각을 900원에 파는 마케팅으로 손님들을 끌어모으며 전국적으로 매장 수가 180개 이상으로 빠르게 확대됐어요.
이에 따라 영세한 자영업자들의 한숨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손님 유치를 위해 마진율 감소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렴한 술값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놓은 대기업 프랜차이즈들과의 경쟁에서도 이겨야 하기 때문이죠.
유통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물가 상승에 대한 소비자들의 부담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앞으로는 품질도 중요하지만, 가성비 요소가 이전보다 소비자에게 더욱 중요한 요소로 다가올 것”이라고 전망했어요. 지금의 저가 경쟁 상황이 장기화할 것으로 본 것이죠. 과연 언제쯤 자영업자들이 웃을 수 있을까요. 불황이 끝나고 자영업자들이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그날'이 빨리 찾아오길 기대하게 되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