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후] 자동차와 공포 마케팅

입력 2022-11-0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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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부장대우

소비자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이른바 ‘공포(Fear) 마케팅’이 있습니다.

구매자의 절박함을 건드려 지갑을 열게 하는 상술이지요. 군사무기가 대표적입니다. 일부 제약 업계에서도 왕왕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무기를 구매하지 않으면 전쟁에서 패할 수 있다”며 엄포를 놓거나, 벼랑 끝에 몰린 시한부 환자를 상대로 “이 약을 먹으면 완치될 수 있다”라며 유혹합니다.

사정이 절박하다 보니 지갑을 쉽게 열기도 합니다. 생애 전주기를 따졌을 때 전체 의료비의 90%를 사망 직전에 쓴다는 말도 나올 정도니까요.

공포 마케팅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인데요.

혹시 모를 교통사고를 대비해 완성차 제조사가 수많은 안전장비를 옵션 표에 나열하는 것도 하나의 공포 마케팅입니다. 또 우리가 그것을 망설임 없이 하나하나 차에 채워 넣는 것도 양쪽의 타산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포 마케팅은 애프터마켓, 즉 차용품과 부품 업계에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예컨대 이 용품(또는 부품)을 사용하면 연료비가 크게 절감된다거나, 작은 용품으로 1000만 원이 넘는 큰 고장을 막을 수 있다며 강조하고는 합니다.

최근에는 디젤 엔진 곳곳에 자석을 붙이는 게 오너들 사이에서 논쟁입니다.

2000년대 초, 국내에도 고압 직분사, 이른바 커먼레일 디젤엔진이 속속 등장했는데요. 출력은 물론 소음과 진동면에서 유리해 많은 제조사가 앞다퉈 이를 도입했습니다. 날로 엄격해지는 배출가스 규제에도 대응할 수 있었지요.

그랬던 고압 직분사 디젤엔진이 이제 하나둘 내구수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커먼레일 디젤엔진에는 고압 연료 분사를 위해 ‘고압 펌프’가 달려있습니다. 문제는 이 펌프 내부에서 마찰로 인한 쇳가루가 발생한다는 점인데요. 이 쇳가루가 엔진을 망가트리기도 합니다. 쇳가루가 엔진까지 흘러가다가 정밀한 고압 분사기(인젝터)를 막아버리는 것이지요.

문제는 어마어마한 수리비입니다. 중형차를 기준으로 수입차는 수리비가 1000만 원을, 국산차 역시 500만 원 안팎의 수리비가 듭니다. 겉보기 멀쩡한 수입 디젤차들이 속속 폐차장으로 보내지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중고차 가격을 훌쩍 뛰어넘는 수리비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폐차를 결정하는 오너들이 많습니다.

이 고장을 막기 위해 갖가지 용품이 팔리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가 '자석'입니다.

판매자들은 연료탱크와 고압 펌프, 고압 연료분사기 표면에 작은 자석을 여러 개 붙이면 효과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석이 쇳가루를 붙잡고 있으니 쇳가루가 분사기까지 흘러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언뜻 이론적으로 수긍이 됩니다만 이를 앞세워 몇백 원짜리 손톱만 한 자석 하나를 1만 원이 넘는 값에 파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뜨거운 엔진 룸에서도 자성을 유지할 수 있다’며 마치 특수자석처럼 표현하기도 하지요. 여기에 ‘10만 원이면 수리비 1000만 원을 아낄 수 있다’라는 홍보문구를 덧대기도 합니다.

자석 몇 개를 붙여서 정말 커다란 고장을 예방할 수 있다면 ‘노벨상’을 줘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효과를 누구도 객관적인 연구와 정형화된 실험결과로 증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번을 양보해서 설령 효과가 있더라도, 언젠가 닥칠 고장의 조금이나마 뒤로 미루는 효과일 뿐입니다. 근본적인 대책은 못 된다는 것이 석ㆍ박사급 연구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국책연구원의 한 박사급 연구원은 손톱만 한 자석 가격을 확인하더니 화들짝 놀라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되묻습니다.

그렇게 효과가 좋으면, 이게 정말로 돈이 된다면 현대차 남양연구소의 똑똑한 연구원들이 왜 개발하지 않았을까요?

jun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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