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놀이터] 소리가 색깔로 들린다고?

입력 2022-04-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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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과학칼럼니스트

나무에 갈색 톤의 빈 가지들만 이리저리 뻗어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오늘은 잔가지 사이사이까지 다 초록으로 가득하다. 재미있는 건 어제와 오늘의 초록이 다르다. 막 움트기 시작한 새싹일 때만 해도 나뭇잎은 ‘연약함’을 담은 얇고 가벼운 느낌의 연한 초록빛을 띠지만,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살랑거릴 정도로 자라면 햇살을 제법 가려줄 수 있을 정도의 진한 초록빛을 낸다. 그리고 내일이 되면 삶의 무게를 당당히 견디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더 진하고 깊은 초록으로 변해 있을 거다. 이처럼 같은 색이라도 밝고 어두움에 따라 그 느낌이 확연히 달라지니 사방에서 여러 색이 넘실대는 봄·가을에 사람들의 감정이 널뛰는 건 당연하다 싶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물체의 색은 본연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는 거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물체 표면에서 반사된 색을 물체의 색으로 여긴다. 그래서 ‘색’이 무엇이고 그걸 본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보면, 대답이 쉽지 않다. 실제로도 사람들이 색채를 인식하는 과정은 대단히 복잡하다.

그 출발점은 앞서 말한 바처럼 사물의 겉면에서 반사되는 가시광선이다. 눈으로 들어온 이 빛은 각막을 지나 눈의 가장 뒷부분인 망막에 이른다. 티브이 화면과 같은 역할을 망막에는 빛을 감지하는 시세포, 즉 색을 감지하는 원추세포(cone cell)와 명암을 인지하는 막대세포(rod cell)가 있다. 원추세포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빛의 자극에 대한 민감도에 따라 세포 이름 앞에 적, 녹 그리고 청이 추가로 붙는다. 이들 세포가 감지하는 정보는 시신경을 통해 전기적 신호의 형태로 대뇌에 전달되고, 여기서 다시 한번 매우 복잡한 정보처리 활동이 이루어진 후에야 색이 인식된다. 결국 물체가 어떤 색을 갖고 있는지는 뇌가 알려준다고 할 수 있다.

뇌에서 시각정보가 처리되는 곳은 후두엽에 있는 시각피질(visual cortex)이고, 이곳에 색을 처리하는 ‘색채 영역(human V4; hV4)이 있다. 그런데 이 영역은 ‘눈’으로 볼 때 외에 듣거나 만지는 등의 행위를 통해서도 활성화된다. 구체적인 예로 소리를 들으면 색상을 느끼는 색청(色聽; Colored hearing)이 있다. 이는 음파가 귀를 자극하면 본래의 청각을 느낄 뿐 아니라, 특정의 색채감각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와 같이 한 가지 유형의 감각 자극이 다른 감각에 지각을 일으키는 걸 공감각(共感覺, synesthesia)이라 한다.

사람들이 자주 경험하게 되는 공감각 중 하나는 단어가 특정 색으로 인식되는 색-낱글자(color-grapheme) 공감각이다. 혹시 자신도 이런 능력을 갖고 있는지 궁금할 이들을 위해 간단한 테스트 하나를 소개한다. 숫자 분별 검사로 내용은 이렇다. 숫자 ‘5’의 무리 안에 5를 거울에 반사해 놓은 듯한 형태로 쓰인 ‘2’가 삼각형 형태로 한 구석에 배열되어 있다. 모두 검은색으로 표기돼 있는 이 이미지 안에서 ‘2’를 찾아내면 된다. 비공감각자들에게는 숫자가 모두 검정으로 쓰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5와 2의 구별이 쉽지 않다. 하지만 공감각자의 경우 이 두 숫자가 다른 색깔을 가진 걸로 보인다. 때문에 순식간에 ‘5’의 무리 안에서 ‘2’를 골라낼 수 있다.

공감각이 왜 그리고 어떻게 발현되는지에 대해선 아직까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이 능력의 활성화에 영향을 미치는 특정의 변이 유전자가 있다는 연구보고가 있고, 또한 공감각의 소유자들은 시각이나 청각 등의 감각 관련 신경세포가 일반인에 비해 더욱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추정도 있다. 한발 더 나아가 공감각자들은 이 능력을 갖지 않은 일반인들과 달리 이들 감각신호를 처리하는 뇌영역 간에 보이지 않은 연결통로를 갖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발생 이유가 무엇이든 신기하고 또 제법 쓸모가 있어 보이는 능력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상에서 이 능력을 어떻게 키울 건지, 그리고 이걸 어디에 활용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홍보성 글을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일련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지 학습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공감각 능력을 가진 이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란 실험 결과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은 넘치는 상상력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 자연을 구부리는 건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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