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이 꼭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각 당 대선 후보들은 지지자 결집을 위해 막판 유세에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아직 표심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은 고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사표(死票)’와 ‘생표(生票)’ 사이에서 기로에 놓인 것이지요. 마음 같아선 같은 진영이라도 소신 투표를 하고 싶지만, 자칫하면 소중한 한 표가 ‘사표’가 될 수 있으니까요.
‘사표’는 들어봤어도 ‘생표’란 표현은 좀 생소하지요. 이 말은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먼저 꺼냈습니다. 심 후보는 지난달 28일 강원도 강릉시 중앙시장 유세에서 “심상정에게 표를 주는 것은 ‘생표’”라며 “그 어떤 표보다 살아 움직여 대한민국의 퇴행을 막고 청년의 미래를 열고 비정규직의 권리를 강화하고 세입자의 눈물을 닦는 한 표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선 막판 예상되는 ‘사표론’ 공세에 맞서 지지를 호소한 것입니다.
이번 대선 후보 면면을 보면 이재명(더불어민주당), 윤석열(국민의힘), 심상정(정의당), 안철수(국민의당) 등 빅4 중 이재명과 심상정이 진보 진영, 윤석열은 보수 진영, 안철수는 자칭 중도를 표방합니다. 이 가운데 윤석열 후보는 안철수 후보와의 야권 단일화를 추진하려다 좌초된 상황이고요. 이재명 후보는 심상정 후보와 안철수 후보에 계속해서 구애 제스처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심 후보와 안 후보 모두 완주 의사를 굳힌 상태이지요.
이외에 오준호(기본소득당), 허경영(국가혁명당), 이백윤(노동당), 옥은호(새누리당), 김동연(새로운물결), 김경재(신자유민주연합), 조원진(우리공화당), 김재연(진보당), 이경의(통일한국당), 김민찬(한류연합당) 등 군소 정당 후보들도 완주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새로운물결의 김동연 후보는 2일 후보직에서 중도 사퇴하고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사실상 단일화가 이뤄진 것이지요.
현재 지지율에서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회사 리얼미터가 뉴시스 의뢰로 지난달 28일, 이달 1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번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 중 누구에게 투표하겠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6.3%가 윤석열 후보를, 43.1%가 이재명 후보를 꼽았습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6.7%,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1.9%였습니다.
윤석열·이재명 후보 간 지지율 격차는 3.2%포인트(p)로 오차범위(±3.1%p) 안입니다. 약 4주 전인 지난달 3~4일 실시된 같은 조사와 비교해 윤 후보는 3.0%p, 이 후보는 1.3%p 올랐습니다. 야권 단일화가 윤 후보로 이어질 경우 가상 다자대결에서는 윤 후보가 48.4%로 이 후보(43.5%)에게 오차범위 내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심 후보는 2.8%였습니다. 안 후보를 야권 단일 후보로 가정한 다자대결에서는 안 후보의 지지율이 29.7%로 이 후보(38.4%)에게 오차범위 밖 열세를 보였습니다. 심 후보는 3.9%였습니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였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권 교체’를 열망하는 야권 지지자 중 중도·부동층은 윤석열과 안철수 사이에서 갈등이 클 것으로 보입니다. 소신껏 안 후보를 찍자니 사표가 될 것이 뻔하고, 정권 교체도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 후보를 지지하던 일부 원로들이 지지를 철회하고, 윤 후보 지지로 돌아선 것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최근 들어 안철수 후보가 “윤석열 뽑으면 1년 후 손 자르고 싶어질 거다” “전문가 뽑을 머리도 없다”는 등 윤석열 후보를 집중 공격하고 있는데요. 이 발언 때문에 부동층에선 1년 후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진보 진영 지지자도 고민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소수 진보 정당이다 보니 매 선거 때마다 사표론의 중심에 서왔습니다. 양당제 특성상 대선일이 다가올수록 민주당 지지층과 보수 진영의 결집이 선명해지니까요. 심 후보는 지난달 28일 유세에서 “작은 당을 갖고 어떻게 국정을 운영하냐는 걱정으로 35년 동안 양당에 표를 몰아줬다”며 “투표해 권력을 줬는데 잘하면 또 찍어주고 잘못하면 심판하는 것이 선거가 아니냐”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부동층과 지지층에 대한 사표론을 차단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입니다.
그런데도 ‘통합정부·정치교체’를 내세우며 정의당과의 단일화 희망을 접지 않는 이재명 후보에 대해선 ‘단순한 표를 얻기 위한 전략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넘칩니다. 진정한 통합정부를 추진하는 거라면 제1야당인 국민의힘부터 참여시켜야 그 취지가 사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심상정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국민통합 정치개혁안’에 대해 “환영한다. 진작에 그랬어야 했다”면서도 “다당제를 하려면 국민이 (선거로) 결정하면 된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표는 없다. 기득권이 아닌 다른 정당과 다른 후보에게 표를 줘야 다당제가 되고 연립정부가 가능한 것 아니냐”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대선은 안철수·심상정 지지자들이 실제 투표에서 누구를 찍느냐가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발표된 여론조사들이 들쭉날쭉했다는 점에서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은 숨은 표들에 대한 관심도 큽니다. 이번 대선은 ‘역대 가장 역겨운’ 선거로 일컬어지는 만큼 유권자들끼리도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대놓고 밝히기는 쉽지 않지요. 이른바 ‘샤이 이재명’과 ‘샤이 윤석열’입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자칭타칭 전과 4범에, 대장동 의혹과 형수에 대한 막말 녹음파일, 공금 유용 혐의 등 의혹이 차고 넘칩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정치 신인이라는 점, 특히 부인 김건희 씨의 주가 조작 의혹으로 여당의 공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콘크리트 지지층이 아닌 이상, 두 유력 후보 모두 대통령으로 뽑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느냐’는 물음에 ‘야권에 의한 정권 교체’가 52.9%, ‘집권 여당의 정권 재창출’이 41.8%로 조사됐습니다. 야권에 의한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응답률이 52.9%인데도, 야권 후보의 지지율이 이에 크게 못 미치는 것입니다. ‘샤이 유권자’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샤이 유권자에 대해선 전문가들도 입장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어쨌든 결과는 숨은 표심보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이 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현재 지지하는 후보를 3월9일 대선일까지 계속 지지할 생각이냐’는 질문에는 88.7%가 ‘계속 지지할 생각’이라고 답했는데, ‘바뀔 가능성도 있다’는 응답은 9.6%, ‘잘 모름’은 1.7%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