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문며들다

입력 2021-07-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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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부장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다. 100명에 가슴 철렁하던 확진자는 이제 1000명이 익숙하다. 자고 나니 아파트값 1억 원 올랐다는 뉴스는 지겨울 지경이다. 세금 폭탄 공포도 진부하다. 주식에, 가상화폐에 온 가족 투전판은 일상이 된 듯하다.

우리가 알던 대한민국이 아니다. 성별이 다르다고 조롱하고, 젊은이와 늙은이가 서로 삿대질해도 이젠 보는 이조차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다. 반대하면 배신이고 다르면 혐오한다. 모든 일은 네 탓이며 나는 늘 이유가 있다. 내 편의 성폭력은 호소인의 주장일 뿐이며, 네 성폭력은 관용 없는 정의구현 대상이다.

육두문자가 날아들었을 일들이 당연해졌고, 고개를 들지 못했을 행태가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우길 일인 세상이 됐다.

내가 곧 대한민국인 양 나라 곳간까지 걱정하던 애국심은 분별없는 오지랖이니 접어두기로 했다. ‘나랏돈을 저렇게 마구 뿌려대도 되나’ 싶던 걱정거리는 ‘나는 얼마나 받나’ 기대하는 대상이 됐다.

우리 일상은 ‘문며들었다(문재인 정부에 스며들다는 뜻)’. 조금씩, 하나씩 달라지고 몇 년씩 이어지니 이제 삼가야 할 일이 무엇인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가 원했던 큰 그림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문 대통령이 집권한 뒤 종이에 먹이 스며들 듯 우리가 서서히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상식적이지 않던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부끄러워하던 일을 더는 꺼리지 않는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섣부른 판단, 경솔한 언사, 어설픈 고집이 끝없이 반복돼도 그저 ‘문 대통령이 문 대통령 했다’는 탄식뿐 화낼 힘조차 쇠한 듯하다.

문 대통령은 여전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진자 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거리두기 4단계가 발표되는 자리에 문 대통령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K-배터리’의 세계 정복을 기원하는 잔칫집에 참석했다. 국가적 위기가 코앞에 다가오면 엉뚱하게 축배를 들던 익숙한 모습이다.

앞날이 더 걱정이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 주변에는 사람이 없다. 민정이니 정무니 정치판 수 싸움 전문가들이야 그들만의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니 알 바 아니라 치자. 당장 코로나의 기세를 꺾어야 할 방역 사령탑들이 신뢰를 잃고 있다.

4월 문 대통령이 방역사령탑에 임명한 국립암센터 교수 출신 기모란 박사는 4차 대유행의 장본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실제로 그가 청와대 방역기획관에 기용한 뒤 방역당국의 기조는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쪽으로 무게추가 급격히 기울어져 왔다. 경제와 방역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당위성이 앞세워졌다. 문 대통령도 “무너져 내리는 민생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힘을 실었다. “코로나와의 전쟁에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경솔함도 물론 빠지지 않았다.

기 방역기획관의 정치 편향성 논란은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니 뒤로 미뤄 두자. 본질은 그의 능력이다. 전문가들은 “기 기획관은 방역전문가도 아니며, 거리두기를 완화할 때가 아니다”며 일찌감치 위기를 경고했다. 기 기획관은 백신 조기 확보도 필요 없다고 했던 장본인이다.

문 대통령이 ‘영웅’ 칭호를 부여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못 믿을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정 청장은 4단계 거리두기가 발표된 9일 “현 수준이 유지되는 경우에는 1400명 정도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고 현 상황이 악화될 경우에는 2000여 명이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최대 4000명”이라며 정 청장의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비판한다.

문 대통령이 즐겨 쓰는 문구 중에 “세계도 인정하는 K-OO”이라는 것이 있다. 자신과 정부가 이뤄놓은 성과에 대한 자부심이 담겼을 것이다. 그런데 가끔 국내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부당하다는 항변처럼 들릴 때가 있다. 억울할 필요 없을 것 같다. 세계가 인정해도 자국민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문 대통령은 유엔(UN) 사무총장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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