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미래, 농촌융복합산업] 밀과노닐다, 밀 키워 술 빚고 관광객 유치 ‘융복합농업’ 꽃피워

입력 2020-12-28 05: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국내 최초 밀소주 '진맥소주'…'밀과노닐다' 3만 평 밀밭 지난해 7000명 찾아
IT기업인에서 농부·양조인으로 변신…"전문화된 치유농업 키울 것"

▲'밀과노닐다'의 박성호 대표. (사진제공=밀과노닐다)
▲'밀과노닐다'의 박성호 대표. (사진제공=밀과노닐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 맹개마을은 '육지 속 섬'이다. 낙동강이 둘러싼 맹개마을은 다리가 없어 강을 건너려면 바퀴가 큰 트랙터를 이용해야 한다. 전기가 들어온 지도 10년이 채 되지 않은 청정 오지마을이다. 맹개마을의 뜻도 '해가 잘 드는 외딴 강마을'이다.

밀과노닐다의 박성호 대표는 2007년 귀농해 이곳에서 13년째 밀과 메밀 농사를 짓고 있다. 그가 귀농을 결정했을 때 맹개마을에는 단 3가구가 살고 있었다. 그는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에 매료돼 독일 유학 후 시작해 10년을 운영하던 IT기업을 정리했다. 맹개마을의 아름다움을 두고 퇴계 이황은 맹개마을을 찾으며 '산봉우리 봉긋봉긋, 물소리 졸졸, 내 먼저 고삐 잡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라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고 한다.

약 10만㎡, 3만 평의 농지에 그가 심기로 결정한 것은 밀. 산골 마을 추운날씨를 잘 견뎌줄 거라는 생각과 하얗게 부서지는 메밀꽃의 향연을 꿈꾸며 밀 농사를 시작했다.

죽으라고 농사만 짓던 그는 생계를 고민하다 자연스레 6차산업을 시작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바로 체험과 숙박 프로그램. 2015년 체험·숙박 프로그램을 시작한 뒤 2017년 농업회사법인 '밀과노닐다'를 설립했다.

그는 "10여년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농촌이 단순히 농사만 짓는 곳이 아니라, 농촌이 갖고 있는 다양한 가치들, 휴식, 먹거리, 휴가, 치유, 체험 등의 기능에 관심이 생겼다"며 "지속가능한 농업, 농사에 부가가치를 더하기 위한 방법으로 체험과 숙박서비스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밀과노닐다를 찾은 방문객들이 트렉터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밀과노닐다)
▲밀과노닐다를 찾은 방문객들이 트렉터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밀과노닐다)

불편하기 그지없었던 환경은 스트레스에 찌든 현대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힐링 공간이 됐다. 강을 건너기 위해 타는 트랙터는 색다른 경험이 됐고, 3만 평의 메밀밭은 장관은 연출했다. 2018년에는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촬영지로도 주목을 받았다.

박 대표는 "그 흔한 슈퍼도 없고, 차를 가져올 수도 없고, 쓰레기도 가져가야 하는 곳이지만 일상과 단절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며 "5월의 청밀, 6월 황금밀, 9월 메밀꽃, 11월 단풍이 방문객들을 다시 찾게 한다"고 말했다.

'온전한 휴식'을 할 수 있다는 체험 관광이 입소문을 타면서 고작 3가구가 사는 맹개마을은 지난해 안동시 관광안내지도에도 올랐고, 무려 7000명이 찾았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사람들이 발길이 줄었지만 청정지역이란 이미지로 사람들의 방문은 끊이지 않고 있다.

밀 재배와 체험 농장을 운영하던 박 대표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농촌의 부가가치를 더욱 키우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특히 값싼 수입 밀가루에 밀려난 우리밀을 활용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때 떠오른 아이디어가 바로 술이다.

박 대표는 "평소 술에 관심이 많아 농산물로 와인도 만들고 브랜디도 만들었다"며 "세계적으로도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술을 만들었고, 전 세계 술시장 관점에서 볼 때 밀은 쌀 이상으로 훌륭한 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접한 옛문헌 '수운잡방'에서 밀소조의 기록을 찾으면서 확신을 가졌다. 밀과노닐다의 우리밀 소주 '진맥소주'는 이렇게 탄생했다. 진맥은 밀의 옛말로 여기서 이름을 붙였다. 유통이 불리한 지역에 소주로 유명한 안동, 두 가지 이유로 그는 소주를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박 대표는 "서양 위스키처럼 장기숙성해서 고품질의 증류주를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기존 안동소주의 품격을 한층 높이는 프리미엄 소주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의 말처럼 실제로 진맥소주에서는 위스키 향이 묻어난다. 도수가 40도, 53도로 높지만 바닐라, 레몬향이 있다. 바로 우리 재료인 밀에서 우러나는 꽃, 과일향이다.

진맥소주는 만드는 데만 최소 2년이 걸린다. 10월에 심은 밀을 이듬해 6월에 수확해 가을에 술을 담근다. 증류를 하고 1년을 숙성시켜야 진맥소주가 만들어진다.

▲밀과노닐다의 유기농 우리밀 소주 '진맥소주' (사진제공=밀과노닐다)
▲밀과노닐다의 유기농 우리밀 소주 '진맥소주' (사진제공=밀과노닐다)

그는 "진맥소주 한 병을 만드는데 5㎡의 밀밭, 농부의 땀 한 말이 더해진다"며 "오랫동안 직접 밀을 키우다보니 양조용 밀, 빵을 만드는 밀, 누룩을 만드는 밀을 따로 심을 정도로 밀 박사가 됐고, 원료를 사다가 술을 빚는 양조인은 짐작도 할 수 없는 노하우를 가지게 됐다"고 언급했다.

이렇게 직접 키운 유기농 우리밀로 만들어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진맥소주는 현대백화점 프리미엄 식품 브랜드인 '명인명촌'에 입점했다. 이곳에 입점한 술 가운데 식품명인 지정을 받지 않은 술은 진맥소주가 유일하다.

이제 밀과노닐다는 지역과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주변 유휴농지에 밀 재배를 확장하고, 지역의 농산물을 사용한 소주 개발에도 나섰다. 안동의 대표 과일인 사과를 이용한 소주도 곧 세상에 선보일 예정이다.

도산서원과 안동호, 수목원 등 주변 관광자원과도 체험을 연계할 계획이다. 특히 지난해 경북도의 치유농장육성사업자에도 선정돼 치유센터도 건립 중이다.

박 대표는 "농촌이 가지고 있는 기능 중 최고는 치유"라며 "유학했던 독일의 경우 의료보험으로 농장에 가서 쉴 수 있는 바우처를 지급하며 농촌의 치유 기능을 인정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밀과노닐다의 테마 체험 프로그램과 치유 전문 프로그램은 늦어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될 예정"이라며 "전문화된 시설과 인력을 갖춘 농촌에서도 얼마든지 요양을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다…'국힙원탑' 민희진의 기자회견, 그 후 [해시태그]
  • [유하영의 금융TMI]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 된 ‘정책금융’…부동산PF에도 통할까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번엔 독일행…글로벌 경영 박차
  • ‘이재명 입’에 달렸다...성공보다 실패 많았던 영수회담
  • ‘기후동행카드’ 청년 할인 대상 ‘만 19~39세’로 확대
  • "고구마에도 선이 있다"…'눈물의 여왕' 시청자들 분노 폭발
  • 투자자들, 전 세계 중앙은행 금리 인하 연기에 베팅
  • 잠자던 '구하라법', 숨통 트이나…유류분 제도 47년 만에 일부 '위헌' [이슈크래커]
  • 오늘의 상승종목

  • 04.26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0,488,000
    • -0.75%
    • 이더리움
    • 4,716,000
    • +0.81%
    • 비트코인 캐시
    • 678,500
    • -0.66%
    • 리플
    • 736
    • -1.34%
    • 솔라나
    • 199,200
    • -1.63%
    • 에이다
    • 665
    • -0.75%
    • 이오스
    • 1,146
    • -1.38%
    • 트론
    • 174
    • +0.58%
    • 스텔라루멘
    • 162
    • -1.82%
    • 비트코인에스브이
    • 94,850
    • -1.09%
    • 체인링크
    • 19,870
    • -2.69%
    • 샌드박스
    • 648
    • -1.37%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