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설립돼 142년 역사를 자랑하고 한때 혁신의 상징으로 칭송받았던 도시바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도쿄증시 상장폐지가 현실로 다가오는 가운데 회사 스스로도 지속 생존에 자신감이 없음을 인정했다.
11일(현지시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시바는 이날 지난해 4~12월, 9개월간의 실적을 발표했다. 이미 두 차례나 실적 발표를 연기한 도시바는 세 번째 연기는 최악의 사태를 피했다. 도시바가 이날 발표한 4~12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 감소한 3조8468억 엔(약 40조 원)이었고, 손손실은 5325억 엔이었다. 전년 동기 4794억 엔 적자에서 상황이 더욱 악화한 것이다. 도시바는 또한 사상 처음으로 2256억 엔의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도시바는 지난달 마감한 2016 회계연도 전체 실적 전망은 공개하지 못했다. 미국 원자력발전 자회사 웨스팅하우스(WH)에 대한 파산보호 신청 영향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 전문가들은 도시바가 지난 회계연도에 1조 엔에 달하는 순손실에, 자본잠식 규모는 6000억 엔 이상일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도시바의 이날 실적 발표는 ‘눈 가리고 아웅하기’식이었다는 평가다. 일본 제조업 대기업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감사법인의 적정 의견을 받지 못하고 실적 보고서를 낸 것. 감사법인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WH가 지난해 말 막대한 손실이 났다고 밝혔지만, 사실 그 이전에 이런 상황을 미리 파악하고 은폐한 것은 아닌지, 또 손실 규모를 축소하라는 경영진의 압력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감사의견은 기업의 상장 여부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다. ‘부적정’이나 ‘의견 불표명’ 등이 나오면 도쿄증권거래소의 상장 폐지 기준에 해당된다. 도시바는 이미 지난 2015년 분식회계가 발각돼 도쿄증권거래소의 ‘주의 대상’에 올라와 있는 상태다.
아울러 이번 실적 보고서에서 도시바는 사상 처음으로 “계속기업의 전제에 중대한 의구심이 든다”는 주석을 첨부했다. 이는 기업 생존 불확실 리스크가 커질 때 투자자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회사가 밝히는 것이다.
19세기 일본에 백열등 시대를 연 도시바는 1985년엔 세계 최초로 노트북 컴퓨터를 선보이는 등 혁신을 주도했다. 오늘날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각종 기기에 쓰이는 낸드플래시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것도 도시바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도시바가 산업 트렌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안이한 의사결정, 방만하고 구태의연한 조직관리 등으로 몰락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미국 금융전문매체 배런스는 도시바의 변화의 속도는 빙하처럼 느렸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