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촛불잔치를 벌여보자

입력 2016-11-2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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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과 그 일당이 벌인 국정농단의 진상들이 속속들이 밝혀지면서, 이들을 향한 수많은 비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따라서 본인은 권력의 정점에서 국정농단과 불법을 자행한 이들에 대한 추가 비판 대신, 이와 같은 일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참으로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지 않았던, 주변인이었던 ‘우리’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지식과 정보의 독점이 곧 권력이었던 시기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종말을 맞게 된다. 지식 정보화 시대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붕괴하면서 ‘만년객체’이자 수동적 소비자였던 대중이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한 사회의 선진성과 발전 수준은 그 사회에서 발휘되는 대중의 영향력에 비례한다. 즉, 사회의 선진적 발전이란 결국 대중이 수동적인 객체가 아닌 주인이 되는 현상이자, 소비자가 공급과 소비의 주체인 프로슈머로 거듭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혁명적 변화의 주체가 대중임을 재확인하는 움직임이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보전달 프로세스의 마지막 끝자락에서 늘 수동적으로 소비만 했기에 ‘우둔한’이란 표현이 낯설지 않았던 ‘대중’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집단 창조자이자 창출자로 화려하게 등장하고 있다. 소외된 객체였던 대중은 심장박동처럼 힘차게 뛰며 자신의 가치를, 존재를, 그리고 국가의 주인 됨을 입증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기득권의 거대 헤게모니를 해체하는 것에도, 그 힘의 비롯됨이 대중이었음을 교훈하는 것에도, 궁극적으로는 무너진 주인의 가치를 회복하며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것에도 거창한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았다. 권위로, 억압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서로를 비추는 작은 촛불 하나면 우리가 누군지를 밝히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200만 명의 ‘우리’가 광화문 광장에서, 서울 시내 곳곳의 골목에서, 저 멀리 지방의 또 다른 광장에서 하나가 된다. 거창한 도구도, 무기도 아닌 때론 열정적일 만큼 빨간, 때론 희망적일 만큼 노란, 혹은 어둠을 능히 물리칠 만큼 밝은 작은 촛불 하나를 들고 말이다. 이는 마치 종의 신분을 망각한 채 주인 행세를 하던 오만하고 사악한 무리에게 고하는 징벌과도 같다. 그들에겐 이 촛불이 날카롭고 아픈 칼날이 되어 온몸의 곳곳과 폐부 깊숙한 곳까지 찔러대는 치명적 아픔일 것이다. 하지만 국가와 사회를 가로지르는 역사의 종단적 관점에선 이는 서로를 밝혀 우리를 드러내는 하나 됨의 과정이다. 또한, 뜨거운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새로운 혈액이 거미줄 같이 뻗어 있는 혈관을 따라 생명을 실어 나르듯,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된 ‘우리 됨’은 온 시내와 골목, 나라 전체로 뻗어나가며 죽어가는 나라와 사회를 살리는 생명 에너지다.

1986년 가수 이재성은 ‘촛불잔치’란 노래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그 노래 가사는 마치 오늘의 촛불 집회를 묘사하는 것만 같다. “바람에 별이 떨어지고 어둠만이 밀려오면 / 보슬보슬 비마저 내리면/ 하얗게 지새우는 밤 나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그를 위해 날 태우리라 / 나의 작은 손에 초 하나 있어 이 밤 불 밝힐 수 있다면. 나의 작은 마음에 초 하나 있어 이 밤 불 밝힐 수 있다면. 촛불잔치를 벌여보자, 촛불잔치야.”

촛불집회의 의미는 무엇인가? 작은 손에 들린 촛불. 하얗게 지새우는 밤. 나를 태워 사회를 밝히는 희생. 이는 단순 모임도, 집회도, 문화행사도 아니다. 오히려 이는 주인 됨의 선포이자 생명이 살아나는 감동이다. 나를 태워 우리를 밝히기에 단순 희생이 아닌 생명의 탄생이 있는 거룩한 잔치이다.

뜨거운 생명의 촛불이 광화문을 나와 전국을 휘돌아 퍼져간다. 죽어가는 나라가 살아나고 매였던 대중들이 주인으로 회복된다. 모두의 마당인 광장으로 모여 우리가 곧 진리임을 선포하는 행위, 그것이 바로 촛불집회이다. 촛불은 계속 켜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손님도 주인도 우리 모두인, 우리 모두를 위한 잔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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