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배 칼럼] 야구에 경제학이 있다

입력 2016-09-2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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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국내와 해외에서 야구 정규 시즌이 끝나거나 막바지에 이르러 포스트 시즌 진출을 위한 자리 다툼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 프로야구와 미국ㆍ일본의 프로야구는 공통점도 많고, 다른 점도 많다. 경기 방식이 거의 동일한 이 3개국 프로 리그 모두에서 선수생활을 경험한 선수들도 있다. 그렇지만, 막상 3개국의 야구 경기를 관전하면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필자의 경우 미국 야구장에 가면 일단 내야수들의 수비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타자들이 친 빠른 땅볼을 가볍게 병살 처리하는 모습은 가히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멋진 수비를 볼 수 있는 이유는 야구장 잔디가 훌륭하고, 타자들이 잘 쳐서 빠른 땅볼이 많이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라인 드라이브로 홈런을 가볍게 치는 것을 보면 같은 야구인데 정말 다르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일본 야구장에 가면 또 다른 묘미가 있다. 이승엽 선수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맹활약하던 시절에 도쿄 돔에 간 적이 있다. 일본 야구의 섬세함과 잘 만들어진 야구장에서 미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잔잔한 감동이 일었다.

국내 야구장에 가면 시설이 외국보다 못하고 선수들의 능력도 부족한 것 같지만, 흥이 더 많이 나고 경기 결과에 몰입해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친 적이 훨씬 많다. 또한,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따라할 수도 없는 한국 특유의 단체 응원전의 묘미도 크다. 그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필자는 국내에서 성장하면서 야구 팬이 되었고, 좋아하는 팀과 선수 모두 국내 리그에 소속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국내 리그와 우리 선수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문화적 정체성(cultural identity)이 국내 야구로부터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도 개인의 독자성이나 사회 내 정체성이 개인의 경제 행위에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조지 애컬로프(George A. Akerlof) 버클리대학 교수가 레이첼 크랜튼(Rachel Kranton) 듀크대학 교수와 2000년에 같이 저술한 논문에서 이를 강조하고 있다(Akerlof, George A., and Kranton, Rachel E. ‘Economics and Identity.’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15, no. 3(2000): p. 715~53).

이 논문에서는 개인의 정체성(identity)이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점이며, 이 정체성 혹은 독자성이 개인의 경제적인 행동 및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연구는 심리학이나 사회학 등 다른 사회과학에서 강조되어왔던 정체성을 경제 행위 모형에 최초로 도입했다는 점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다.

개인은 자기의 정체성에 따라 간단히 보면 자기에게 불리하게 보이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이 자아를 찾아가는 행동이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라면, 경제학적으로 합리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정체성은 사회 내에서 형성되는 것이므로, 외부성이 존재한다. 야구의 경우 뉴욕 지하철을 타면 양키스 야구 모자를 쓴 사람이나, 선수들의 상의 유니폼을 입고 양키스 경기를 보러 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뉴욕 사람(New Yorker)이라는 정체성에서 서로 동질감을 느끼면서 야구 관람의 효용이 더 커지는 것이다.

미국 야구 선수들의 연봉은 매우 높고, 특히 슈퍼스타 선수들의 연봉은 천문학적이다. 이에 대한 경제학적 설명도 있다. 지금은 작고한 시카고 대학 셔윈 로젠(Sherwin Rosen) 교수의 ‘슈퍼스타에 대한 경제학’이라는 시선을 끄는 제목의 논문이 있다(Rosen, Sherwin. ‘The Economics of Superstars.’ American Economic Review 71, no. 5 (1981): p. 845~58). 1981년에 출간된 꽤 오래된 논문이지만, 이 논문이 가지고 있는 현안과 통찰력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논문에서는 슈퍼스타 현상은 소수의 개인이 자신들의 분야에서 엄청난 소득을 받고 그 분야를 압도하는 경우를 뜻한다. 예를 들어 클래식 음악 시장이 크고 연주자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솔리스트로 왕성하게 행동하고 있는 연주자는 극소수이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근거 중 하나는 시장에서 재능(talent)이 돋보이면 그에 따른 부가가치로 인한 수입이 더욱 증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재능의 약간의 차이가 소득의 큰 차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 외과의사가 다른 의사들에 비해 수술을 통해 생명을 구할 확률이 10% 많다면, 그 의사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은 10%보다 더 클 것이라는 것이 로젠 교수의 요점이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메이저 리그 중계를 국내에서 실시간으로 보고 관심을 갖는 것처럼 미국 야구 시장의 규모는 방대하고, 이에 따라 재능 있는 야구 선수의 몸값이 폭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슈퍼스타 현상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회사의 최고 경영자 보수에 대한 연구도 많다. 최근 영향력이 큰 연구(Gabaix, Xavier and Augustin Landier, ‘Why Has CEO Pay Increased So Much?’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vol. 123(1), 2008, p. 49~100)에서는 미국에서 1980~2003년 최고 경영자 보수가 6배 늘어난 것은 그 기간에 미국 대기업들의 주식시장 가치(valuations)가 6배 늘어난 것에 기인하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가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최고 경영자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했는지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이 연구가 주는 메시지는 선명하다.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최고 재능에 대한 대우가 좋아진다는 것이다.

야구 자료를 바탕으로 차별에 대한 경제학 연구도 있다(Parsons, Christopher A., Johan Sulaeman, Michael C. Yates and Daniel S. Hamermesh. 2011. ‘Strike Three: Discrimination, Incentives, and Evaluation.’ American Economic Review, 101(4): p. 1410-35). 미국 메이저리그에는 통상 한 경기당 150개 정도의 투구가 이뤄지고, 한 시즌당 대략 70만 개의 공이 던져진다. 이 연구에서는 2004~2008년의 자료를 분석하였고, 대략 350만 개 이상의 투구 자료가 이용되었다. 다시 말해, 야구 빅데이터 분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미국 메이저리그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투수와 구심(球審)이 같은 인종ㆍ민족(raceㆍethnicity)이면 투수가 상대적으로 대우를 잘 받아서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로 판명될 확률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서가 있는데, 전산화된 카메라가 사용된 구장이거나 경기 중 결정적인 순간인 경우에는 이와 같은 상대적인 차별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투수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이를 바탕으로 투구했다는 점이다. 투수가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이라면 의도적으로 스트라이크와 볼의 구별이 불분명한 스트라이크 존의 사각지역으로 던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타자는 상대적으로 더 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연구에서 보여주는 것은 인센티브(incentive)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심판들이 비용이 큰 상황에서는 차별하지 않지만, 그 비용이 낮으면 차별한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투수들도 그런 심판들의 동기를 알고 그에 맞춰 행동한다는 것이다.

야구를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고, 9회 말 투아웃부터 시작이라고도 한다. 양키스 야구 영웅인 요기 베라(Yogi Berra)의 “It ain’t over till it’s over(끝나기 전에는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단순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말이 유명한 것은 모든 사람이 인생에서 항상 희망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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