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한은 발권력 동원과 ‘스리고’ 그리고 국민

입력 2016-06-0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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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현 자본시장2부장

정부가 8일 기업구조조정과 국책은행 자본확충 안을 발표했다. 이런저런 방안을 내놨지만 결국 골자는 한국은행으로 하여금 발권력을 동원해 10조원의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정부의 현물출자 1조원과 자산관리공사의 후순위대출 1조원이 있지만 한은 10조원에 비하면 구색맞추기식 외에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경우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한은이 수출입은행에 출자할 수 있는 여지도 열어 놨다. 이 경우 정부는 한은 출자지분을 조기에 양수하도록 노력한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받을 가능성이 없는 돈이다.

마침 이날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 안진딜로이트회계법인 등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벌어졌다. 수조원대 분식회계에 따른 부실과 경영비리, 이에 대한 은폐 의혹 등을 정조준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는 구조조정과 한은 발권력 동원을 은폐하기 위한 전형적인 물타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홍기택 전 KDB금융그룹 회장 겸 산업은행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이뤄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4조2000억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은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금융당국이 결정한 것이라고 폭로했다. 산은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우선 정부가 그동안 문제를 ‘미루고’자 했던 데 원인이 있다는 판단이다. 식견 있는 전문가들이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조언하며 경고했던 것이 벌써 수년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도 정직하지 못하다. 문제가 불거질 만하면 다른 사안으로 ‘덮고’, ‘섞고’ 보자는 식이기 때문이다. 관치금융시대의 전형인 당국의 ‘스리고’를 다시 보고 있는 셈이다.

한은 발권력 동원은 위기 때마다 반복돼 온 이슈다. 다만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지금 이 수단은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 게 맞다. 20대 총선 과정에서 여당 공약으로 불쑥 튀어나온 ‘한국형 양적완화’로 논점을 흐리더니 기재부와 한은 등 관련 당국이 참여하는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를 결성해 한은 발권력 동원을 기정사실화부터 했다. 그간의 경영과 감독 등 태만을 감춰버린 셈이다.

이성태 전 한은 총재는 4월 말 이투데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은 발권력 동원은 해당 산업은 물론 산은, 수은의 부실과정에서 그 부실이 불가피했느냐는 경영과 관리감독 등 평가문제 또한 생략되는 것”이라며 “국가운용 능력이 없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한은 발권력 동원은 한은 스스로 언급했듯 국민적 합의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 등 정당한 절차를 거친 후에나 결정돼야 한다. 10조원이면 연봉 5000만원을 받는 사람이 한 푼도 쓰지 않고 20만년을 모아야 가능한 돈이다. 그만큼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한은 발권력 동원과 그 규모와 관련한 사안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의결 사안이다. 그럼에도 구체적인 방식과 규모가 먼저 발표된 점도 문제다.

한은은 금통위원들로부터 사전에 지지(endorse)를 받았고, 금통위 의결을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세부 방안이 결정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혹여 반대했던 위원이 있었는지에 대한 물음에는 즉답을 피했다. 의결 과정이 아니어서 찬반을 논할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설령 금통위원들의 지지 과정이 있었다고 해도 의결 과정이 아니어서 찬반을 논할 것이 없었다면 지지 역시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한은은 이달 두 번째 금통위가 열리는 23일에나 이와 관련한 의결을 할 예정이다. 이 같은 해명은 청와대 서별관회의처럼 어떤 근거도 없는 밀실 행위와 다를 바 없다.

결국 정부로부터 한은이, 한은으로부터 금통위가 들러리 역할을 했다는 산은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 와중에 국민은 안중에 없는 것도 매한가지다. 이번 기업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진행돼 당국의 언급대로 산업 경쟁력이 강화되기만을 손 모아 기도할 수밖에 없게 돼버린 국민의 처지만 안쓰럽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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